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아름다운 언어와 영상으로 그려낸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감독 김대승). 2001년에 개봉되어 지금까지 아름다운 영화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가며 시공간을 초월한 남녀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그려내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월드스타’ 이병헌의 풋풋한 모습과 5년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이은주의 유작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의 가슴에 명작으로 자리 잡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뮤지컬 무대에서도 구현된다. 제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에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돼 7월 2일부터 4일까지 대구 첨단문화회관에서 그 첫 무대를 선보인다. 창작지원작 63개 중 창작뮤지컬상을 받는 단 하나의 작품은 2010년 NYNF(New York Musical Theatre Festival)에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지난해 딤프 창작뮤지컬상을 받은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이 NYNF에 진출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번에 <풀하우스> <헨젤과 그레텔> <표절의 왕> <사이드미러> <마돈나, 나의 침실로…>와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그런데 <번지점프를 하다>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데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 많을 것이다. <마이 스케어리 걸> <미녀는 괴로워> 등 성공한 무비컬(Movie와 Musical을 합성한 신조어) 대부분이 코믹적인 요소를 가진 영화를 원작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번지점프를 하다>는 한국 영화 중에서도 유독 감성지수가 높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신나는 노래와 춤이 가미된 뮤지컬로 올린다니, 거부감부터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인공 서인우 역의 뮤지컬 배우 강필석(32)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예찬론을 펼쳤다. 강필석은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나인> <갓스펠> <쓰릴 미> <씨 왓 아이 워너 씨> <나쁜 여석들> <나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브루클린> <유린타운> <김종욱 찾기> 등 많은 뮤지컬에서 주연을 도맡아온 배우. 그는 진중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기력,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에 이은 강필석과 이병헌의 두 번째 만남이다. 강필석은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총각 선생님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에서 연기한 바 있다. 이병헌의 작품과 인연이 많은 강필석과 만나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가진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습니까? “작년에 뮤지컬 <쓰릴 미>의 공연을 마치고 쉬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제주도에 갔어요. 그때 뮤지컬해븐의 관계자 한 분이 <번지점프를 하다>를 창작 팩토리(factory) 리딩(reading) 형식으로 하는 발표가 있는데 도와달라고 하기에 참여하게 되었죠. 처음엔 제주도에 더 있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힘들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 제 마음을 그분도 눈치 챘는지, <번지점프를 하다>의 노래 두 곡을 보내주면서 ‘들어보고 마음이 변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셨죠. 그런데 노래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때 들었던 노래가 영화음악이었나요? “그렇지 않아요. 뮤지컬의 삽입곡이었어요. 왈츠만 영화에서 따온 거고, 나머지 영화 노래는 뮤지컬에 없어요.” -이 작품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습니까? “무엇보다도 영화가 너무 좋잖아요. 드라마가 끌고 가는 힘이 정말 뛰어난 작품이죠. 뮤지컬 역시 훌륭한 연출자(Adrian Osmond)가 창작하고 있는데, 기존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했어요. 뮤지컬 무대에서 함축적이고 시적인 작품을 만나게 될 거예요. 말을 안 해도 굉장히 큰 감정들이 오가는 게 신기한 작품이랍니다.” -뮤지컬에 대사가 없으면 졸리울 것 같은데요? “졸립지는 않아요. 뮤지컬 안에서 움직이는 감정의 선들이 굉장히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거든요. 시처럼 조용하지만, 관객들도 제가 느낀 큰 힘을 느낄 거예요.”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죠? “외모로 변화를 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연기로 바꿔서 보여줄 수밖에요.” -딤프의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돼 곧 공연을 선보이는데요, 연습은 어느 정도 됐나요? “7주 정도 연습하고 올라가는 것으로 알아요.” -<번지점프를 하다>의 제작사이기도 한 뮤지컬해븐이 만든 <마이 스케어리 걸>이 딤프의 창작지원작으로 뽑혀 뉴욕에서도 공연되며 우수한 성적을 거뒀는데요, 이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정말인가요? 몰랐어요. 만일 된다면 꼭 가야죠.”
-강필석 씨도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배우 중 한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뉴욕에 간다면 공부하러 가고 싶어요. 먼저 뮤지컬의 액팅(Acting)과 노래를 배우고 싶고, 연출도 배우고 싶거든요. 저는 배우가 연출 공부를 확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쓰릴 미>에 이어 또 남자를 사랑하는 역할인데요, ‘나’와 ‘인우’의 다른 점은 뭔가요?
“같은 점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점은, <쓰릴 미>의 ‘나’는 희생을 하면서도 자기 것을 모두 챙기는 사람이고, 인우는 사랑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인물이에요. 사랑을 위해 사회적인 명예와 가정, 그리고 목숨까지 다 버리니까요.”
-동성애 연기에 많이 익숙하죠?
“하하. 안 그래요. 그런데 저는 <번지점프를 하다>가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단 1그램도 생각하지 않아요. <쓰릴 미>를 연습할 때는 상대 역할인 ‘그’를 보면서 순수하게 배우로만 보지 못했는데, 현빈(역의 배우)을 보면서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이 안에 있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남자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치는 거죠.”
-<쓰릴 미>처럼 남자 배우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나요?
“키스 신은 없어요.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런 장면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남성과의 육체적인 애정 신을 보여주면 작품의 흐름이 다른 쪽으로 새어버릴 테니까요. 태희와의 깊은 애정 신도 무대 위에서 볼 수 없을 겁니다.”
-인우는 첫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강필석 씨가 인우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인우와 태희는 첫사랑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운명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운명의 힘은 무섭다고 생각해요. 운명을 믿는 한 사람으로 제가 인우의 처지에 놓인다면 인우와 같은 선택을 하겠죠.”
-출연 작품 중 <내 마음의 풍금>과 <번지점프를 하다>는 공교롭게도 배우 이병헌 주연의 영화입니다. 이병헌 씨와 인연이 참 많은 것 같은데요, 연기할 때 그의 영화를 참고했나요?
“그럼요. 많이 봤죠. 두 작품 모두 이병헌 씨의 연기가 대단했어요. 저는 그 안에 있는 진실을 찾으려 했고요. ‘이 배우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연기를 했을까’하는 걸 찾으려고 많이 봤습니다. 그렇지만 형태를 따라 하진 않았어요. 형태를 따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요.”
-<번지점프를 하다>를 더 재미있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보셔도 재미있을 거예요. 제가 원래 제 공연을 보러 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이 공연은 꼭 보러 오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정말 좋은 창작이 나올 것 같다고요. 현재는 대구페스티벌에서 올릴 5회의 공연을 위해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요, 이는 공연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힘든 스케줄이지만 연습실에 오면 즐거운 이유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배우 강필석의 어떤 모습을 어필하고 싶나요?
“저보다도 작품을 어필하고 싶어요. 정말 지금껏 만나온 연출가 중 최고의 연출가를 만났다고 생각해요. 그와 함께 하나의 힘을 향해 달려가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습니까?
“지금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이렇게 드라마가 겹겹이 싸인 뮤지컬은 처음이에요. 뮤지컬은 표현이 많은 장르인데, 그러다 보니 막상 가슴에 담아가는 부분은 적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약간 절제하면 관객들이 생각하면서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게 많아지죠. 대사가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좋으니 기대해주세요.”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