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샤우트, 둥둥 샤우트” 북소리 장단이 점점 빨라지면서 샤우트라 외치는 함성 소리도 덩달아 빨라진다. 붉은 악마는 더 신이 나고, 함성 소리를 듣는 그리스 신, 아르헨티나 축구단, 아프리카 대륙의 동물들은 괴롭게 귀를 틀어먹는다. 현대자동차의 월드컵 광고 ‘샤우팅 코리아’의 광고 내용이다. 이 광고에서는 신기하게도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의 선수 또는 신·동물들만 함성 소리에 귀를 막고, 한국 축구선수들이나 심판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태평하다. 또 하나 특이한 점도 있으니, 바로 TV 시청자 중 일부도 귀를 틀어막거나 채널을 짜증스럽게 돌린다는 반응이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대대적 광고 공세를 펼치고 있는 이 현대자동차의 광고에 어떤 속사정이 있었기에 “비호감” 반응이 나오는 걸까. 현대자동차 월드컵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샤우트’라는 외침은 “승리의 함성, 하나된 한국(The Shouts of Reds, United Korea)”에서 따왔다. 월드컵 응원을 하는 국민들의 함성을 표현하기 위해 “샤우트”라는 단어를 응원구호로 택한 것이다. “소리 질러 상대 선수 마비시키는데 왜 우리 선수는 멀쩡? 동물도 싫어할 시끄러운 소리라면 시청자는 짜증스럽지 않나?” 스토리 전개 없는 단순 ‘고함 광고’에 “재미없다” 반응 많아 응원단의 외침이 상대방의 기를 꺾는다는 내용은 에피소드만 바뀌었을 뿐 콘셉트 자체는 계속 유지된다. 현대차는 외침이 등장하는 콘셉트 아래,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부밍(분위기 조성) 광고 2편, 월드컵 진행 중에 국가별 광고 3편을 제작해 방영했다. 이렇게 ‘샤우팅’이라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이유에 대해 현대자동차 측은 “지난 월드컵 마케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전략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존재감 없던 광고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현대차는 2002·2006년 월드컵 공식 스폰서였으나, 월드컵 마케팅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월드컵 공식 스폰서도 아니면서 성공을 거둔 한 통신사의 ‘매복 마케팅’에 밀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며 응원문화를 주도한 통신사 광고와 달리, 월드컵 광고에도 차를 등장시켰다. 공감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축구 발전에 관계된 일을 현대차가 많이 해왔는데 다른 기업들이 축구와 관련된 대표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이번에는 기존의 광고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며 “이번 월드컵 광고에서는 공감대를 높여보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열정·응원·승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차를 뺀 월드컵 광고를 만들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한 방향으로 광고를 제작하려 했다는 게 현대 측의 설명이다. 이런 변신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과거처럼 통신사 광고들이 선전하고 있다”며 “KT는 황선홍 밴드라는 이야기 해주기(스토리 텔링) 측면에서 성공적이었고, SK텔레콤은 김장훈·싸이라는 친근한 스타를 내세워 ‘다대송(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히트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의 광고도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외국 선수 등 시청자에게 친숙도가 떨어지는 인물이 등장해 생소하며, 구호만 외치다 보니 낯설어 보이는 효과만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한 메시지나 스토리 없이 그저 구호를 외치라는 메시지만을 전달하면서 시청자를 주변화시켰고, 그래서 친밀감을 느낄 수 없는 광고라는 지적이다. 이 광고를 보는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아이디 ‘맥가이버’인 한 블로거는 “원숭이·타조·코끼리들도 듣기 싫어하는 샤우트 소리로 상대방 선수들을 짜증 나게 한다면, 그런 소리는 시청자도 짜증 나게 한다는 걸 몰랐을까요?”라는 글을 남겼다. 블로거 ‘Happy Friday’는 “샤우팅 코리아를 외쳐서 상대편을 자멸시킨다? 국민적 함성으로 거창하게 승화시켜 좋게 해석해볼 수도 있지만, 그냥 광고를 딱 접하는 느낌은 고함이나 질러 상대방을 혼란시키게 하고 그 틈을 타서 우리나라가 득점해서 이기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한 블로거 ‘zeths’는 “그리스 신화를 무너뜨리고 그걸 원동력 삼아 그리스 전에서도 승리하자는 내용을 ‘단군신화를 무너뜨리고 그걸 원동력 삼아 한국전에서도 승리하자’는 입장으로 바꿔본다면? 외국인들이 보기엔 그리스전 광고가 어떻게 보일까?”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광고라고 해도 상대 국가의 문화유산을 고함으로 깬다는 소재는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전문가 “미국에선 다양한 재미 주는 스포츠 마케팅 활발. 우리도 물량공세 위주 벗어나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반면, 새롭다는 반응도 있다. 블로거 ‘Mr 스마일’은 “현대차 월드컵 광고가 각 상대국을 상징하는 장소를 순차적으로 배치한 게 신선하다”며 “콘셉트가 차별화돼 색다른 느낌이 확 와 닿았다”는 의견을 냈다. 아이디 ‘IT Lee’도 “현대자동차의 광고가 가장 튄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샤우팅 코리아 광고는 매 경기마다 한 편씩의 광고가 준비돼 있어 기다려진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월드컵 광고를 하면서 자동차 선전까지 한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광고 방식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을 고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는 유독 2002년 SK텔레콤의 성공담을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이 많았다. 때문에 월드컵 광고도 여느 때보다 일찍 시작됐다. 하지만 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과 별개로 이를 봐야 하는 시청자들은 이슈 피로도가 깊어졌다. 사람들의 정보 처리량은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붉은 악마’ 이미지를 이용한 비슷비슷한 월드컵 광고들이 봄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계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양정혜 교수는 “스포츠 마케팅이 잘 발달된 미국의 경우 TV 매체에 집중하지 않으면서도 마케팅 기법이 현란하다”며 “지나치게 상업화되면 사람들이 스포츠 이벤트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앞서 가는 기업이라면 월드컵 광고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어 양 교수는 “스포츠 마케팅 선진국인 미국의 기업들은 TV 같은 비싼 매체에만 몰두하기보다 광고 효과가 더 커지는 방향을 찾기 시작했고 성공을 거두었다”며 “앞으로 국내 스포츠 마케팅도 틈새전략과 함께 다양성을 주는 방향으로 가는 아이디어 싸움을 펼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차를 빼고 월드컵 응원에 집중한 현대차의 새 광고에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 월드컵 마케팅에서는 TV 광고에서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다른 부문에도 변화가 있다”며 “기존에 중점을 두지 않았던 광고 툴을 이용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에서 김연아·빅뱅이 함께 출연하는 뮤직 비디오와 드라마를 내보내고, 지하철 3호선에 월드컵 테마의 래핑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는 이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메시지는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라 보고 ‘샤우트’로 콘셉트를 잡았다”며 “월드컵 광고의 베테랑인 통신사 광고를 단번에 따라잡기는 힘들지만, 올해는 초석을 다지고 2014년에는 발전된 모습의 광고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