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까닭이 있게 마련이란 뜻이다. 즉,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원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인과의 법칙’ 또는 ‘인과율(因果律)’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인과율에 의해서만 지배되고 있지는 않다. 때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보면 신기하게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 우리는 이를 ‘우연’이라고 부른다. 꿈속에서 본 화산 대폭발로 특종기사 건진 기자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처럼 의미를 부여할 때 ‘우연의 일치’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공시성(共時性)’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인과율뿐만 아니라 공시성이라는 원리에 의해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새로운 이론을 펼쳤다. ‘인과율’은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원칙으로 풀이되는 ‘수학(數學)’의 원리와도 같다. 반면에, ‘우연의 일치’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원칙을 초월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는 ‘문학’의 작품 세계로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우연의 세계는 초과학적이고 초현실적이며, 거짓말보다도 더 거짓말 같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신문사의 한 기자가 저녁 늦게 책상 앞에서 깜빡 졸다가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었다. 화산 대폭발이 일어나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깜짝 놀라 깨어난 뒤에도 그 처참한 광경이 너무나 생생하여, 그는 꿈의 내용을 신문기사처럼 정리해 책상 위에 놓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한 국장은 그 기사를 전 세계의 신문사에 긴급 타전했다. 그러나 기사가 사실이 아닌 꿈이었음이 밝혀지고, 그 기자는 해고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얼마 후에 꿈속의 화산 대폭발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당연히 그 기사는 특종이 되어 그의 사진과 함게 신문 머리를 장식했고, 졸지에 그는 승진까지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실화’이다. 꿈속에서 본 광경을 아무 생각 없이 기사로 쓴 그 기자는 설마 자신의 꿈이 현실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세계 각처에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다가와서는 자신의 할 일을 끝내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그것은 행운이나 불행을 가져오기도 하고, 저주나 예언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때로는 소중한 목숨을 건지는 구사일생의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심지어 죽음의 신을 맞이하는 운명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이어지면 운명이 된다고 한다. 여러분은 ‘우연의 일치’를 믿는가? 믿고 안 믿고를 결정하기 전에,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우연의 세계를 경험해보기 바란다. 그러고 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타이타닉호 침몰…14년 전에 소설이 예고한 참사 여기에서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첫 소개로 든 이유는 ‘천안함 침몰’ 사고로 해양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1912년 4월,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빛나는 처녀항해에 나서기 위해 영국의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닻을 올렸다.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2200여 명을 태운 섬처럼 큰 배는 목적지인 미국 대륙을 향해서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항해 길에 나섰다. 그런데 4월 14일 밤, 타이타닉호는 뉴펀들랜드 남쪽의 북대서양 위에서 빙산과 충돌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배의 중간 허리에는 지름이 90미터나 되는 큰 구멍이 뚫려 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이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는 ‘불침선(不沈船)’이라 불리고 있었기 때문에 배에 실려 있던 구명보트는 불과 20척밖에 안 되었다. 그것은 승객을 모두 태우기에는 어림도 없는 숫자였다. 여자와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여 구명보트에 올라탄 사람들은 배가 침몰할 때 일어나는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도록 서둘러 배에서 멀어져갔다. 배에 남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위로하려고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가지 찬미가를 연주하였고, 배에 남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어떤 노부인은 구명보트의 빈자리를 남에게 양보하고,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남편과 최후를 맞이하는 길을 택하였다. 이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 사이에는 갖가지 드라마가 엮어졌다. 빙산과 충돌한 지 약 2시간40분 후에 타이타닉호는 1513명의 목숨을 길동무삼아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사고는 지금까지도 사상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타이타닉호와 타이탄호의 비극 그런데 이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사고가 일어나기 14년 전에 정확하게 예언한 소설이 있었다. 작가 모건 로버트슨이 1898년에 발표한 <타이탄호의 조난>이라는 소설이다. 고급 호텔 못지않은 설비를 갖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탄호’가 이 소설에 나오는 여객선인데, 이 배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승선한다. 그들은 미국 대륙으로 떠나는 우아하고 화려한 유람 여행에 만족스러워하며 타이탄호의 위용에 감탄한다. 하지만 이 호화 여객선은 북대서양 위를 항해하다가 빙산과 충돌하는 사고를 만나 많은 사람들을 배에 태운 채 어이없게 침몰하고 만다. 그런데 소설가가 만들어낸 이 가공의 사건과 실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사이에는 무서우리만큼 일치하는 점이 많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먼저 배 이름이 ‘타이탄’과 ‘타이타닉’으로 비슷하고, 양쪽 모두 부유한 사람들이 타는 호화 여객선이라는 점이 같다. 그리고 사고가 모두 처녀항해 때 일어났고, 출항 시기가 4월이었다는 점이 일치한다. 또한 출항한 곳이 소설의 타이탄호도 실제의 타이타닉 때와 마찬가지로 사우샘프턴 항구였고, 목적지는 둘 다 미국이었으며, 사고를 당한 곳도 똑같이 대서양의 북해 항로였다. 그리고 빙산과 충돌하여 선체에 큰 구멍이 뚫려 침몰한 모습까지도… 그뿐만이 아니다. 배에 관한 상세한 데이터까지도 아주 비슷했다. 배의 전체 길이는 소설의 타이탄호가 800피트였고, 타이타닉호가 882.5피트였다. 양쪽 모두 7만5000마력짜리 배였고, 빙산과 충돌했을 때의 속도는 둘 다 약 25노트였다. 또 적재되어 있던 구명보트의 수는 타이탄호가 24척, 타이타닉호가 20척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