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스케치를 하는 과정이 있다. 이는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그렇다면 조각은 어떨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조각도 작품을 만들기 전 스케치같이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 인사갤러리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보제티(Pietrasanta bozzetti) 미술관과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서 그 과정을 볼 수 있다. ‘마케트(Maquettes)’란 수정이 힘든 조각의 특성상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과정과 자료, 시간을 작가가 확인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 스케치를 하듯이 조각품을 만들기 전 소형 조각품을 미리 만들어 결과를 대비하는 것이다. 마케트는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하기 전 구조와 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또한 작가가 기능장에게 작품을 맡기기 전 작가와 장인 사이에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로써 작품 완성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Giuliano Vangi)는 돌, 금속, 나무와 플렉시글라스와 같은 생소한 재료를 이용해 그 물질들이 빛을 발하도록 구성한다. 그는 재료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융합해 역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작품을 만든다. 이탈리아 작가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는 그가 발명한 독특한 문체가 생긴 부조물을 조각 작업에 연결한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그의 작품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인 동시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상징한다.
한국 조각가 박은선은 대리석으로 구나 원기둥, 구들이 연결돼 만드는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구와 원기둥이 약간씩 변형돼 결합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조각에서는 주변 공간을 제압하는 여백의 미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동양적 추상조각의 세련미가 돋보인다. 오늘날 조각은 LED 광선, 컴퓨터, 레이져 등을 사용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물성에 직접 이미지를 새기고 깎아내는 원시적 작업은 줄어들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25인은 현대 조각의 흐름 속에서 고전 조각 예술의 정신을 이어받는 의미에서 몇 천 년 동안 쓰인 전통 재료와 기법 위에 현대적인 감성을 담은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 과거와 현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조각들의 만남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