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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장벽 위에 세운 베를린영화박물관

독일 영화의 영광-치욕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며 관람객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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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88-189호 편집팀⁄ 2010.09.27 11:32:57

베를린 = 이상면 편집위원 / 영화학 박사 도시를 관광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수많은 건축물들과 거리 사이로 가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문화공간들을 찾기도 한다. 유럽의 몇몇 대도시에는 영화박물관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거나 영상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는 미술관보다 더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동서 베를린이 분단됐다가 통합된 자리에는 이제 매우 현대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포츠담 광장 주변에서 이제 과거 장벽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얼핏 보기에는 낯설고 건축가의 디자인 솜씨를 과시하는 듯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건물들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들 모던한 건물 사이에 신세대 대중들이 활보하고 있다. 이곳 소니센터 옆 ‘영화의 집’(Filmhaus)에 영화박물관이 있다. 이 거대한 건물 안에는 베를린영화아카데미와 아르제날 영화관이 들어와 있고, 영화박물관은 2~4층을 차지했다. 1층에는 기념품점이 있다. 사실 독일에는 모두 6곳에 영화박물관이 있고 각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베를린의 영화박물관은 독일 영화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베를린에서 과거(1920년대) 독일 영화가 번성하고 황금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독일 영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독일 영화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통합 베를린이 독일영화사박물관을 갖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런 성격의 영화박물관 건립이 늦어진 측면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도시의 분단 역사(1961~89) 때문이다. 베를린영화박물관은 2000년 9월에 개관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상설 전시는 2개 층, 전체 면적 1300m2의 14개 전시실에서 약 1000점의 전시물을 보여 준다. 이밖에도 2층 기획 전시실에는 3개 전시실, 450m2의 전시면적이 있다.

넓은 전시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독일 영화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세계’의 관점에서 전시를 하는 유럽의 다른 영화박물관들과 다른 점이다. 먼저 4층으로 올라가 전시장에 들어가면 19세기 말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영화의 발명에 기여한 스클라다노브스키와 그의 1895년 상영 필름이 보여진다. 이어 여러 종류의 영화 영사기를 발명한 오스카 메스터, 초기의 유명한 촬영기사였던 구이도 제버,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한 여배우인 헨리 포르텐과 아스타 닐젠 등 초기 영화의 형성에 기여한 인물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관련 자료로는 스틸 사진과 신문 비평, 대본, 포스터 외에도 당시 사용했던 의상과 소도구, 감독의 개인 물건들이 포함돼 있다. 또 영화사에서 유명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버튼을 누르면 짤막한 해설이 들리면서 ‘보고 듣는 전시’가 실현된다. 해설은 독어와 영어로 나와 외국인에게도 지장이 없다. 초기 영화 전시를 지나면, 독일 영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1920년대의 표현주의 영화가 나타난다. 강렬한 선과 색을 즐켜 사용했던 표현주의 미술 양식으로 그려져 눈에 잘 띄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포스터를 선두로, 컬트 영화가 되다시피 한 ‘메트로폴리스’에 나오는 미래 대도시의 현란한 세트가 등장한다.

장벽이 있던 그 자리엔 모던한 건물 들어서고 멋장이 대중들 활보. ‘여기가 독일 영화의 성지’임을 아이디어 가득 담은 공간-전시물로 보여줘 영화에서 처음 소개된 ‘인조인간 마리아’의 조형물도 보인다. 프리츠 랑 감독의 다른 영화들인 ‘마부제 박사’ 시리즈와 ‘M’, 무르나우 감독의 ‘파우스트’, 팝스트 감독의 ‘판도라 상자’ 관련 내용도 있다. 이런 전시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전시물은 그냥 평면적으로 전시되지 않는다. 일반 유리장 속에 넣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원근법 상자 같은 곳에 넣어져 확대되며 보여지거나 또는 옛날 유명한 영화들은 디오라마 상자나 텔레비전 같은 곳에 넣어져 짤막한 영상을 보여 준다. 다양한 전시물을 전시방법을 달리해 보여주는 아이디어다. 전시물이 걸려 있는 벽면도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전시물이 배치되는 공간도 단순한 사각형에서 벗어나 원형이나 반원형도 있고, 휘어진 길을 따라 가면서 관람하도록 한 디자인도 돋보인다. 결국 이런 구성들은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 역사를 단조롭지 않게 관람하도록 디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분명 효과가 있다. 박물관의 전시라고 해서 전시물들을 ‘교과서적으로’ 시대순에 따라 늘어놓겠다는 것은 옛날 식이다. 오리지날 물품들을 바탕으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고, 건축적이고 연극무대 같은 공간구성을 한 베를린영화박물관의 아이디어를 배울 만하다. 1930년대 유성시대 전시에 가면, 유명한 독일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출연한 영화 ‘푸른 천사’가 나타난다. 이 스타 여배우를 위한 독립 전시실도 마련돼, 그녀가 사용했던 의상과 소도구, 개인물품들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다. 그녀는 나치 집권 이후에는 베를린을 떠나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그녀가 남긴 말도 게시돼 있다. ― “나는 독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나치를 싫어할 뿐이다.” 나치 시대 전시관에는 ‘문화 정책’에 따라 조작된 영화들에 대한 해설이 있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여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유명한 기록영화 ‘올림피아’가 등장한다. 독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이런 역사 부분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자세는 주목할 만하다. 수치스러운 역사도 그들의 현대사 일부라는 자세다. 다음 전시실은 이 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다. ‘베를린-할리우드-독일’이란 이름이 붙은 전시실인데, 베를린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영화인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1920년대 표현주의 독일영화의 전성기부터 나치시대의 치욕까지 100년 역사를 보여주며 베를린-독일-할리우드 교류사까지 섭렵 이들은 세계 영화사에서도 기억되는 영화인들로서, 마를레네 디트리히 외에도 에른스트 루비치,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프리츠 랑, 빌리 와일러, 에밀 야닝스 등으로 할리우드 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2차 대전 이후에 서독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던 감독, 배우, 작가들이다. 이렇게 보니 참으로 그 숫자도 많다. 그 다음 전시실에는 1945년 이후 영화사가 이어진다. 60년대 초반 이후 활동했던 ‘뉴 저먼 시네마’의 감독들인 파스빈더와 헤오초그, ‘양철북’의 슐렌도르프, 그리고 ‘베를린 천사의 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빔 벤더스 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뒤 90년대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서는 전시가 미흡하다. 전시공간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 역사이자 현재 활동하는 감독의 영화가 중요한 관심사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시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사를 제외하면 그래도 베를린영화박물관은 독일인이나 외국인에게 유익하게 독일 영화의 발전 과정을 잘 소개해 준다. 다만 이 박물관이 여전히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동독 영화사(1948~90) 부분은 인근 도시인 포츠담의 영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초기 영화 시기(1895~1920)에도 누락된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담당 큐레이터 페터 멘츠는 “이 시대의 자료들이 아직 충분히 수집되지 못해 제대로 전시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계속 수집 중이어서 수 년 내에 전시할 예정이고, 이와 더불어 시각 장난감(optical toy)을 이용하는 아동 영상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영화박물관은 필자에게 한국에도 이런 박물관이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 1층에 한국영화사박물관이 있지만, 전시장이 한게 층에 제한돼 있어 박물관이라고 하기보다는 전시실에 가깝다. 더 많은 전시 내용과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영화사에 대한 전시와 교육이 가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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