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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문화의 샘

‘뒤셀도르프의 인사동’에 영상시대 앞서기 위해 市가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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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0호 편집팀⁄ 2010.10.04 14:06:35

뒤셀도르프 = 이상면 편집위원/영화학 박사 서부 독일 지역의 중심도시 뒤셀도르프의 영화박물관은 시내 중심지에서 가까운 라인 강변 근처에 있다. 지하철로는 하인리히 하이네 역에서 내려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등이 밀집한 구도심지(Altstadt)의 보행자 전용 구역을 1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서울 같으면 인사동 정도 지역이라고 할 만하다. 위압적이지 않은 3~5층 정도의 아담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정겹게 늘어서 있고, 오후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와서 쇼핑하고, 구경하고, 산책하고, 서로 만나서 먹고 마시며 떠든다. 이 정도면 박물관 입지로는 최적이라 할 만하다. 사람들이 많이 운집하는 지역 가까이에 있고, 영화를 보고 나서 또는 영상 교육을 마친 뒤 근처 강변으로 가서 산책하고 노닥거리다 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뒤셀도르프에 영화박물관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뒤셀도르프는 무역도시이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인데, 행정적이고 경제산업적 기능이 앞선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와서 박물관 관람을 한 다음에는 누구나 이 박물관을 괄목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뒤셀도르프 영화박물관은 알찬 전시물들을 갖추어 놓았으며, 내부의 시네마테크에서는 고정적으로 예술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영상 교육도 활발히 진행돼 영화 분야에서는 숨은 진주 같은 곳이다. 물론 사람들은 비즈니스 생활이 중심인 이 도시에 이런 박물관이 있는 것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뒤셀도르프 시는 영화와 밀접한 연관성도 없다. 대규모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도 아니고, 영화학교(아카데미)도 없고, 독일영화사에서 특별한 흔적도 없다. 이곳의 영화박물관은 순전히 시정부의 노력과 의지에 힘입어 세워졌다. 뒤셀도르프 시정부는 영상미디어 시대에 좋은 영화예술을 시민에게 소개하고, 영상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1993년에 영화박물관을 설립했다. 시립미술관과 음악당, 극장뿐 아니라 영상시대에는 현대의 주요 문화인 영화예술에 관해서도 그 역사를 보여주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원장 마티아스 크노프는 “우리는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영화도시는 아니지만, 뒤셀도르프와 인근 도시의 시민들이 영상예술을 즐기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영상미디어 교육을 한다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영화박물관은 존재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사실 대형 미술관이나 콘서트홀 같은 근사한 문화공간에 비해 영화박물관은 어디서나 도외시되고 있으며, 영화는 그저 극장에서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영화박물관의 존재는 소중한 것 같다.

독일 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도시 아니면서도 영상시대 앞서갈 청소년-시민교양 키우기 위해 1993년에 설립. 영화 역사 보여주고 촬영 시설도. -전시물 영화박물관은 6층의 널찍한 건물과 옆의 부속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상설전시장은 총 2200 평방미터에 4개 층으로 나눠져 있고, 2만 점 이상의 전시물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기획전시실과 극장, 도서관도 있다. 무성영화 상영실에는 1920년대 당시에 극장에서 사용하던 영화 오르간이 갖춰져 있는데, 무성영화 상영 때 이따금씩 연주도 진행된다. 각 층의 구조를 보면, 1층에는 로비와 기념품점이 있고, 2층에는 20세기 영화의 역사가 전시된다. 3층은 영화의 전사(前史)로서 영화 출현 이전의 역사를 보여 주고, 4층은 영화 촬영 및 편집 스튜디오를 보여 주며 영상교육실도 있다. 5층에는 사무실과 자료실, 도서관이 있으며, 극장은 지하 1층에 있다. 이들 중에서 상설전시실인 2층과 3층만 살펴보자. 2층에는 유명한 영화들의 화려한 의상과 소품이 마네킹처럼 쇼윈도(유리창) 안에 전시되어 있고, 뒷벽면에는 그 영화의 포스터와 관련된 자료들이 걸려 있다. 유명한 여배우들이었던 아스타 닐젠,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등이 입었던 요란한 의상들이 눈에 띄고, 무르나우 감독의 ‘노스페라투’도 볼 수 있다.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에서 몽타주로 유명한 오데사 계단 장면 스틸 사진들도 연속적으로 걸려 있고, 미국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보인다. 앞부분에는 길쭉한 텔레비전 상자들이 세워져 있는데, 20세기의 명작 영화들을 소개한다. 단추를 누르면 영화 장면을 2, 3분 정도 보여준다. 잉그마르 베리히만, 구로사와 아키라, 에이젠슈타인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가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히치콕 감독의 ‘새들(Birds)’ 단추를 눌러봤다.

3층에는 영화가 출현(1895년)되기 이전 대략 16세기부터 영화가 어떻게 발명되고 발전했는지 400년 이상 되는 영상의 역사(History of Moving Image)를 보여 준다. 영화의 역사가 최근 110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바로 뒤셀도르프 영화박물관의 최고 장점으로, 2층의 20세기 영화 전시관보다 더 잘 구성돼 있다. 첫 방에는 11-12세기의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에서 사용된 인형들이 걸려 있다. 빛을 비춰 그림자(영상)를 보는 시초로 여겨지는 유물이다. 그 다음에는 사진의 원형이 되는 18세기의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와 19세기 중엽부터 발전된 목제 사진기들, 19세기 후반의 사진들(다게르타입 등)이 있다. 다음 전시실로 가면 18-19세기 때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겼던 그림상자(peep box)와 그 그림들이 크게 확대돼 보인다. 암실상자 속에서 빛의 명암 변화에 따라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이 영상을 이제 전기조명을 이용해 벽에 비추어 놓고 보니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다음 전시실에는 19세기의 마술환등들이 있고, 잔상효과를 보여주는 19세기의 시각기구들, 그리고 영화 탄생 이전의 소박한 영화 영사기들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인 1890년대 전반에 극장에서 그림영상을 보여줬던 프랑스의 에밀 레노의 기구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와 시각연극(theatre optique)가 원형대로 복원돼 있다. 레노는 1892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필름 상영에 앞서 자신이 제작한 칼라 그림 띠를 스크린 영사를 통해 영상으로 보여준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다. 그가 쓰던 기구는 다른 영화박물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옆에 놓인 텔레비전 상자에서 내부에 들어 있는 DVD 영상을 3~5분 정도 관람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필름을 상영한 에디슨,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 뤼미에르 형제의 영사기와 그들의 짤막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한 필름을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재생시켜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에는 당연시되지만, 과거에는 이것을 실현하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 즉 약 300년 이상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11세기에 인형에 빛 비춰 ‘동영상’ 즐기던 유물부터 1890년대의 신기한 ‘프락시노스코프’까지 인류의 동영상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 뛰어나 박물관은 성인과 아동청소년을 위한 영상교육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네마테크에서는 고전명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무성영화 상영실에서는 이따금씩 20년대의 오르간 연주가 곁들여진 상영이 진행된다. 최근 마련된 ‘필름 포럼’에서는 명작 감상과 영화 분석 등의 시간이 배정되고,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 질의와 토론도 활발히 벌어진다고 한다. 여기에는 주부들과 퇴직한 남성들이 많이 오는데, 이들은 “예전(50~70년대)에 보았던 명화들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고, 옛 생각이 나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고. 여기서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영상교육이다. 교육 내용은 그림자극의 인형을 종이로 만들어서 비춰보고, 사진기의 원리를 보여주는 카메라 옵스쿠라(암실상자)와 바늘구멍 카메라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또 동영상의 원리를 보여주는 시각기구들인 페나이키스토스코프(회전원판), 조에트로프(회전원통) 등을 종이로 접고 오려서 만들어보는 시간, 애니메이션 제작연습도 있다고 한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하고 아이들도 흥미를 가질 것 같은 내용이다. 크노프 부원장은 “아동 영상교육을 더 활성화시키려고 한다”며 “방학 기간 중에 4-5일 가량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필자가 연간 방문객과 교육 수강생에 대해 질문하니 그는 “우리 박물관에 최근 연간 10만 명 정도가 방문한다”며 “뒤셀도르프 인근에 밀집된 여러 도시들에서도 방문객이 많이 오도록 하는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강변을 거니는 사람들, 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런 사람들이 들러 즐기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희망사항을 말했다. 이젠 박물관도 적극적인 홍보 전략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물관을 나오면서 필자는 영화박물관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상예술의 매력을 선사하고, 영상문화 시대에 성인과 아동·청소년을 위한 영상미디어 교육을 시행나는 것이다. 또한 영상매체에 대해 그 근본 원리를 이해하도록 해 주는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생각은 국내에는 이런 영화박물관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문화관광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시기에 한국에서는 과연 어느 도시, 어느 시장이 이런 박물관의 필요성을 알아줄까? 필자 생각에 단지 일주일 시끌벅적하게 치르고 잊는 영화제보다는 이런 영화박물관이 더욱 유익하고 지속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될 것 같다. 즉, 역사와 사회에 ‘남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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