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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관광 시리즈 ③런던 과학박물관

‘입장료 없음’으로 인기끄는 런던과학박물관, 교육에 재미 곁들여 전세계 관람객 끌어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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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2호 편집팀⁄ 2010.10.18 14:01:18

런던 =이상면 편집위원/영화학 박사 런던에 가 본 사람은 많지만, 런던에서 과학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시간상 이유도 있겠지만 원래 박물관 구경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관심이 있더라도 딱딱해 보이는 과학박물관에 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잘못된 선입견은 아니지만 유럽의 여러 과학박물관을 둘러본 필자가 보기에 런던의 과학박물관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여기는 아이들과 함께, 혹은 중고생들이 단체로 구경하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재미있게 전시물을 관람하고 과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런던 과학박물관의 특징이자 전시의 기본 콘셉트다. 런던 과학박물관은 런던 남서부 중심지인 사우스 켄싱턴에 위치해 있다. 비교적 복잡한 번화가이면서 중상류층이 사는 지역이다. 지하철 사우스 켄싱턴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소위 ‘박물관 동네’로서 과학박물관 외에도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미술·디자인·공예)이 모여 있어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또한 이 지역은 임페리얼대학과 왕립음악대학, 런던 최고의 연주장인 왕립앨버트홀이 모여 있어 학술과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게다가 바로 위에는 하이드 파크가 있어, 사우스 켄싱턴 지역은 문화공간·대학과 더불어 호텔·카페·식당 등이 집결된 곳이다. 다만, 가격이 싸지 않은 게 한 가지 흠이라 하겠다. 그런데 과학박물관과 주변 박물관에는 전부 ‘무료 입장’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의아했다. 입장권 수입을 포기하면 박물관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인당 3파운드(5400원)의 입장료를 받아서 하루에 1000명 관람객이 들어온다면, 약 54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고 1주일이면 약 3800만 원이 된다. 실제 그 이상 수익도 가능할 텐데 이를 포기한단 말인가? 그러나 런던의 모든 박물관은 언제부터인지 ‘무료 입장’ 정책을 펼치고 있다.

더 놀라운 광경은 여름에는 매일 아침부터 개관 직전에 이미 50m 이상씩 관람객의 줄이 늘어서 있는 장면이었다. 대부분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관람객들이고, 영국인들도 가족 단위로 혹은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무료입장’이 더 유익한 정책인지도 모르겠다. 관람 뒤에 안내책자나 기념품 구입, 음료 판매 같은 부대 수입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런던 과학박물관의 문턱은 높지 않고 개방적이었으며, 아이들에게 교육적 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1인당 5천원의 관람료를 없애는 대신 더욱 많은 사람이 와 부대수익을 올려 준다면 박물관 설립 목적을 120% 달성할 수 있어 과학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 바로 뒤에 서양의 전통적인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에 들어 있다. 지상 5층에 지하 3층 구조다. 거대한 건물은 아니지만, 충분한 내용의 전시를 할 만큼의 공간은 되어 보였다. 1층에 들어가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에너지 관련 전시실이다. 여기서는 기계의 동력을 통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보여 준다. 피스톤 운동을 통해 동력을 얻는 거대한 엔진들이 전시돼 있다. 19세기 후반의 기차 엔진과 초기 자동차 등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고, 20세기 초반의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는 천정에 매달려 있다. 동력의 발달은 교통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인간의 이동거리를 확장시켰다. 다음 전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엔진들이 보인다. 20세기 전반의 자동차들을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아주 클래식한 모양으로 보인다. 이 주제의 전시는 2, 3층 회랑에도 계속된다. 직사각형 건물의 테두리 부분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여러 종류 배의 제조 방법과 발달 과정이 전시돼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목선과 범선의 시대를 거친 뒤 엔진이 달린 증기선을 이용하게 됐음을 한 눈에 보여 준다.

그 다음 1층 뒷부분 전시실은 우주 탐험의 세계다. 여기서는 지구 주변의 혹성들과 달 탐험 역사를 보여주고, 로켓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옆의 아이맥스 극장에서는 3D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3층에선 광선과 색채에 관한 간단한 실험이 실행되고,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들여다본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실험인데, 조명이 비추는 테이블 위에 손을 내밀고 보면 조금 뒤 손의 색깔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자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이 층에는 이렇게 물리와 화학의 기초 지식을 이용한 간단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어 아이들이 체험하며 과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층 중간 부분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현대 세계의 탄생’(Making the Modern World)이었다. 여기서는 17~19세기의 과학기술, 즉 ‘현대세계’ 시작 직전의 대략 250년에 걸친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보여 준다. 인쇄, 측량, 통신, 영상과 광학 등 현대 기술과 관련된 많은 기계와 기구들이 전시됐다. 19세기 후반 인쇄술의 발달은 책과 저널리즘의 활성화를 가져 왔고, 그 결과 지식의 확산이 급속도로 이뤄졌음을 보여 준다. 이어서 전신, 전화 같은 통신의 발달, 시계와 현미경 같은 과학·의학의 측정기구들이 보인다. 이들 중에는 영상 기구도 있는데, 1800~30년대에 나온 암실상자(카메라 옵스쿠라, 사진기의 전신前身)와, 1839년에 나온 최초의 사진기인 다게르타입 카메라, 19세기 말경의 영화 카메라도 보인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모토가 말해 주듯, 서양에서 근대 과학은 관찰하고 측량하고 기록하는 과학정신을 근거로 발전했고, 여기서 현대 기술이 나왔다. 과학기술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발전은 의술에서 이뤄졌다. 질병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 준 것은 현대 의학이었다. 이렇게 볼 때 현대 세계를 탄생시킨 것은 철학이나 문화예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너무 당연하지만 망각했던 사실이다. 4, 5층에는 의료사(History of Medicine) 전시실이 있다. 4층의 의학사(Medical History) 관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중세를 거쳐 근대-현대에 이르는 의학의 발달과정을 보여 준다. 서양 의학의 발달을 이렇게 역사적으로 찬찬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대단하다. 5층의 의료 과학과 의술(The Science and Art of Medicine) 전시실에는 옛날의 의술부터, 수술과 치료 때 사용한 의료 도구들과 약품, 서적 등이 전시돼 있다. 옛날의 의료 기구들은 날카로운 칼과 뾰족한 꼬챙이 같은 것들이어서 흉기와 다름없어 보인다. 옆에는 치료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그림도 걸려 있다. 해부학과 관련되지만, 관람자를 으스스하게 만드는 해골, 인간의 뼈들도 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약과 약통들이 있는데, 옛날에도 이런 의약품들이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한국에는 과학관 있지만 아직 과학박물관 없어. 교육만 있고 전시는 없는 과학관 만으로는 저절로 교육 이뤄지는 효과 거두지 못해 필자는 전시장을 모두 둘러본 뒤에 다음날 박물관 안의 아이맥스 3D 영화관을 들렀다. 여기서는 모두 네 작품이 돌아가며 상영 중인데, ‘비행의 전설’(Legends of Flight), ‘혹성 탐험’(Hubble), ‘심해’(Deep Sea), ‘달 여행’(Fly me to the Moon)이었다. 매일 5회 상영하며 오후 시간대는 매회 매진됐다. 관람객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이었다. 필자는 ‘달 여행’(Fly me to the Moon)을 봤다. 이 영화는 45분짜리 3D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로, 입체안경을 쓰고 관람하게 돼 있다. 내용은 파리 세 마리가 로켓 속에 숨어 타고 달나라에 갔다 온다는 이야기이다. 물체의 입체감과 깊이감이 강조되는 3D 영화를 대형 화면으로 본다는 방식이 신기하기만 하고, 안경도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일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작년에 국내에서 3D 대형화면 영화로 ‘아바타’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필자는 이런 3D 아이맥스 형식이 일반적인 미래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우 비싼 제작비에 우선 문제가 있고, 이런 관람 방식이 꼭 필요하느냐는 데도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3D 영화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한 번 필자의 소견을 피력하고 싶다. 한국에 과학박물관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서울 혜화동의 서울과학관과 과천의 과학관, 대전의 엑스포 과학관이 있지만 박물관 성격은 아니다. 전시와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교육은 있으나 전시는 없으니, 관람객에게 보여주면서 스스로 교육이 이루어지게 하는 기능은 없다는 의미다. 결국, 콘텐츠의 문제인데, 전시공간은 있어도 전시할 콘텐츠가 없다면 전시공간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과학박물관이 생기려면 시설도 시설이지만, 어떤 콘텐츠로 시설을 채울 것이냐는 데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런 과학박물관이 있어야 아동과 청소년 과학교육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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