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⑤ 현충원 돌담길

장원급제 이몽룡이 내려간 길 따라 나룻배로 한강 건너면…

  •  

cnbnews 제194호 편집팀⁄ 2010.11.03 17:52:43

이한성 동국대 교수 ‘남대문 밖 내달아 칠패 팔패 청파 배다리 너푸네 얼른 건너 오야고개 바삐 넘어 동재기 월강(越江)하고 승평(僧坪)들 내달아 남태령 바삐 넘어 과천읍내…’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남원으로 가는 길, 신나는 어사 출도길이다. 4호선 전철은 대략 이 도령이 간 길을 지하로 지나간다. 동재기(동작, 銅雀나루)에서 이 도령은 나룻배로 건넜지만 우리는 철교 위로 전철을 달린다. 이 길은 조선 시대의 큰 길인 삼남대로(호남대로)다. 남대문을 나서 청파동을 지나 삼각지 밥전거리를 통과한 뒤 동재기(동작) 나루를 건너 남태령, 과천, 수원, 천안, 공주, 여산, 장성, 나주, 영암, 땅끝 이렇게 가는 길이 삼남대로(三南大路)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젊은 일본인 도도로키 히로시 씨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삼남대로를 옛 지도를 찾아 가며 걸었다. 그는 그 전년에 영남대로(嶺南大路)도 걸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옛 대로를 걷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청 장군 도와 일본군 물리치는 데 힘보탰다는 관운장 기리는 남묘(南廟)를 현충산 뒷산인 서달산에 모셔. 비록 일본 사람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조 임금도 아버지 사도세자를 뵈러 가는 능행길에 6번이나 이 곳 동재기를 지나 남태령을 넘어 갔다. 강을 건너 바로 전철을 내리면 육교가 있다. 이 육교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30m 정도 가면 국립현충원의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 잘 다듬어진 나무층계가 보인다. 나무층계 끝에 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뒤돌아보면 확 터진 전망으로 흐르는 강물이 눈을 씻어 준다. ‘동국문헌비고’라는 책에는 이 곳 동재기 나루에 모노리탄(毛老里灘)이라는 빠른 물살의 여울이 있고, 기도(棋島)라는 작은 섬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제는 물 흐름이 바뀌어 여울도 섬도 없다. 이제 국립현충원 담장을 끼고 도는 답사길, 서달산(瑞達山 또는 화장산華藏山)의 평탄한 흙길 산책로를 걸어 보자. 현재 현충원의 높다란 시멘트 담을 철거하고 산뜻한 담장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답사길 좌측으로 숲과 꽃이 길손을 반긴다. 1km쯤 걸으면 왼쪽 아래 주택가 속에 절 같은 기와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남묘(南廟)로 꼭 들러볼 만하다. 요즘 사람 중에 남묘가 무엇인지, 남묘가 이곳에 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 밖 동묘(東廟)를 떠올리면 쉽게 그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은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 때 온 해군 제독이 진린(陳璘)이다. 그는 선조 31년(1598년) 남산 아래 도동에 주둔했는데 그 후원에 관운장(삼국지에 나오는 장수)의 사당을 세운 것이 바로 남묘다.

관운장은 덕장(德將)으로 명나라 시대에는 무신(武神)으로 추앙받았다. 진린이 싸움에 불리할 때마다 관운장이 홀연히 나타나 어려움에서 구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이 해에 성주, 강진, 안동, 남원에도 관운장의 사당인 관왕묘가 세워졌으며 3년 뒤 선조 34년에는 동묘(東廟)도 완성됐다. 그 뒤 숙종 때에는 관왕묘에 제사지내는 일을 국가 행사로 시행한 일도 있다. 고종 때에는 서묘와 북묘까지 세워 서울에만 4묘가 있었다. 서울에는 지금도 동묘, 남묘와 더불어 앰버서더 호텔 건너편에 또 하나의 관왕묘가 남아 있다. 옛사람들 나룻배로 건너던 동재기(동작)를 전철로 가뿐히 건너 현충원 뒷산에 오르면 환히 펼쳐지는 한강 절경이 흐린 눈 씻어주고… 관운장 숭배는 그 뒤 민간에 퍼져 돈의 신, 벽사(?邪, 귀신을 쫓는)의 신으로 모셔졌고 근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즘도 무속에서는 관왕을 신장(神將)으로 모셔 못된 귀신들을 쫒고 인간의 복을 부른다. 대만이나 중국에 가면 곳곳에 관운장을 모신 신사를 만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꼭 하나 기억할 일이 있다. 여(呂)씨 성을 가진 분은 절대로 이곳에 들르지 마시라.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 씨는 이곳에 오면 해를 입는단다. 삼국지에 보면 관운장은 오나라 여몽(呂蒙)에게 최후를 맞는다. 관운장의 영혼이 아직도 여 씨에 원한이 갖고 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남묘를 나와 본 길로 돌아오면 길은 계속 편히 이어지고 조금 오르막 위에 동작정이란 정자가 있다. 그 곳 바로 위가 서달산(해발 179m)이다. 여기서 현충원 담을 끼고 계속 가면 달마사이며, 좌측 내리막길로 가면 아름다운 잣나무숲길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사진 한 장 찍어 두면 그림이 좋다. 아쉬운 점은 아름다운 숲길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길 중간 쯤 약간 높은 곳에 작은 공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장봉옥 여사 영모비’란 이름의 오래 되지 않은 한글 비석인데, 글도 글씨도 너무 세련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국 어디를 가든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임지를 떠날 때 세운 송덕비(頌德碑)가 있다. 대부분 백성의 고혈을 짜다 가는 지방관이 많았는데, 덕이 얼마나 된다고 이런 비석들을 세웠을까? 비석 자체도 횡포로 세워졌음을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장봉옥 여사 영모비의 비문을 읽어보면 이 동네에 살다 간 한 여성의 공덕을 기려 주민들이 세운 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여인네를 위해 이런 비를 세운 마음이 살갑고, 먼 길 떠난 뒤 이웃의 사랑을 받는 그 분도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온 길을 되돌아 현충원 담 쪽으로 1km 가면 달마사 안내판이 답사객을 맞는다. 만공(滿空) 스님(근세의 선객, 경허鏡虛선사의 제자)이 주석(입산수도)하셨다는 곳이다. 절집에선 불사가 한창이다. 절은 작아도 이곳에서 고려대장경 출판본을 보관하고 있다 하니 대장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는 사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절 안쪽에는 석불이 서 있고, 그 뒤 자연 암벽에 단아한 마애관세음보살이 길손을 내려본다. 절 입구 쪽 언덕에는 이 절에 주석하다 입적하신 스님들의 부도도 있다. 절을 뒤로 하고, 현충원 담을 낀 채 흑석동 방향으로 나아간다. 1km쯤 가면 현충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여기로 들어가면 약간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곧 아스팔트 길을 만난다. 여기에서 우향우 해 500여m 비스듬히 비탈길을 오르면 오른쪽 가파른 길 끝에 지장사가 있다.

이 절은 감로수가 좋으니 시원하게 들이키자. 뱃속까지 시원하다. 전하기로는 도선이 칡 속에 토굴을 지었다고 하여 갈궁사(葛弓寺)였다가 고려말 화장사로 바뀌고, 선조의 할머니 창빈(昌嬪) 안씨 묘가 이장되면서 제사지낼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찰(造泡寺刹)로서 왕실의 지원을 받는 절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국립묘지가 되면서 호국지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충원에 잠든 이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사찰이 됐다. 고려 때 철불을 비롯해 중요한 탱화 등 문화재가 많이 있으니 불교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들러 볼 만한 곳이다. 현충원은 원래 선조의 할머니 창빈안씨의 묘역. 한남정맥이 혈 맺어 ‘공작이 알을 품은 모양’을 한 명당 자리를 이승만 때 국군묘지로 지정. 이제 절을 떠나 창빈 안씨(昌嬪 安氏, 1499년~1549년) 묘역으로 간다. 창빈 안씨는 중종(中宗)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다. 본래 국립현충원은 창빈 안씨 묘역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 국군묘지로 정해져 이제는 주인보다 나그네들의 안식처가 됐다.

창빈의 신도비에는 ‘천품이 단정하고 훌륭하셨다(天資端懿)’고 새겨 있으니 후세에 나라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신 이들에게 자리 내주심에 서운함이 없을 것이다. 이 땅은 한남정맥(漢南正脈)의 한 줄기가 관악산, 삼성산을 거쳐 이곳에 와서 혈(穴)을 맺은 곳이라서 공작포란형(공작이 알을 품는 모양)의 명당이라고 풍수사들은 말한다. 그런 덕인지 왕비 셋에 후궁 아홉 명을 둔 중종의 후궁 중 하나였던 창빈은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임금(선조)이 되면서 죽은 뒤에 왕의 할머니가 됐다. 이 후 조선의 모든 왕은 창빈 안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즉 창빈 안씨의 DNA는 선조 이후 조선 왕통에 면면히 이어진 것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다. 유난히 측백나무가 많다. 송백(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은 나무 중의 으뜸인데 임금 묘역에는 소나무를 심고, 왕족의 묘역에는 측백을 심는다고 한다. 서달산 너머로 지는 해를 뒤로 하고 현충원을 떠난다. 전철을 타고 한 정류장을 가면 흑석동 시장골목에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오늘은 회 한 접시에 매운탕 한 그릇 해야겠다.

교통편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4번 출구 ~ 육교 건너서 좌측 30m 현충원 울타리 나무층계로. 걷기 코스 동작역 ~ 좌측울타리 끝 나무층계 ~ 남묘 ~ 동작정(정자) ~ 잣나무길 ~ 장봉옥 여사 영모비 ~ (되돌아서) ~ 달마사 ~ 현충원 안 ~ 지장사 ~ 창빈 안씨 묘역 ~ 동작역 CNB저널의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에 서울 근교의 마애불과 문화유적을 탐방합니다. 3~4시간 정도 걸으며 선인들의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가는 일정입니다.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Art In 편집주간)로 메일 보내주십시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