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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시 읊으며 걷던 옛길따라

몸과 마음 씻어주는 광주의 새 명물 ‘무등산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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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6-197호 편집팀⁄ 2010.11.22 14:11:29

하얀 억새 물결이 춤을 추고 갖가지 형형색색으로 옷을 입은 오솔길. 낙엽이 눈꽃송이처럼 바람결에 떨어지는 무등산의 가을을 보며 한 줄기 전율을 느끼고, 이 모습 그대로 보따리에 고이 싸 내 자식에게 전해 주고 싶은 산, 무등산. 광주 도심에서 걸어서 무등산을 찾을 수 있는 명품 숲길 ‘옛길’이 열렸다. ‘옛길’을 기획한 당시 임희진 무등산관리소장(현 공원녹지과장)을 강운태 광주시장이 ‘업어주고 싶은 공무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업적이 평가받는 광주의 새 명소가 탄생했다. 무등산은 소백산맥의 끝자락으로, 광주광역시 동쪽을 에워싸고 위로는 담양군, 아래로는 화순군을 잇는 총넓이 30.23㎢에 해발 1,187m의 도립공원이다. 서석대를 비롯해 입석대, 규봉, 새인봉 등 빼어난 기품을 자랑하는 암석과 역사 유적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증심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의 사우 및 묘역인 충장사, 정묘호란 때 청나라 침략군을 맞아 안주성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구성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 전상의(全尙毅)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민사, 고려말 왜구를 무찔러 나라를 지킨 명장 정지장군(鄭地將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경열사 등이 있다. 18세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요지 등 도자기를 구워냈던 가마터인 충효동 도요지를 비롯해 조선 중기 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사문학의 진수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정철 문학의 산실인 송강정 등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시는 2005년부터 무등산 입구의 상가와 점포들을 철거하는 증심사 지구 자연환경 복원사업을 실시해 지난 3월 완료했다. 또 증심사 지구에 편중된 탐방 수요를 분산시켜 자연생태계 보호와 함께 균형적인 공원 이용을 위해 2008년부터 옛 정취와 문화가 있는 자연탐방로를 조성하는 총 3구간의 ‘무등산 옛길’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산책길’이라는 주제로 복원된 옛길은 우리 조상들이 이용했던 옛길들을 자연스레 복원한 만큼, 구간 곳곳에 역사 속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또한 정상까지 가장 편하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무등산 옛길은 작년 5월 1구간 개방을 시작으로 10월 2구간, 올해 7월 3구간이 개방돼 총 23.2km이 완성됐다. 선조의 지혜와 역사가 묻어나는 무등산 옛길 옛길은 총 3구간으로 산수동 ~ 충장사 ~ 원효사 ~ 서석대(연장거리 11.87km)로 구성됐다. △1구간: 산수동 ~ 충장사 ~ 원효사(7.75km, 약 3시간 소요) △2구간: 원효사 ~ 제철유적지 ~ 서석대(4.12km, 약 2시간 소요) △3구간: 장원삼거리 ~ 덕봉 ~ 충장사 ~ 가사문화권(11.3Km, 약5시간 소요)으로 이뤄져 있다.

느림의 미학 1구간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에서 출발해 충장사를 거쳐 원효사에 이르는 1구간 코스는 느림의 미학으로 시작한다. 수지사 입구에서 청암교(제4수원지)까지는 ‘황소 걸음길’로 이름 붙여졌을 정도로 ‘소에게 길을 물으며 황소 걸음으로 걸을 만한’ 길이다.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을 느끼며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4수원지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연인끼리 손을 맞잡고 청암교를 걸으며 사랑을 맹세하고, 서로의 열쇠를 다리 철조망에 걸어놓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는 약속의 길(연인의 길)이 있다. 사랑을 축복하는 듯 따사로운 햇살이 4수원지의 출렁이는 물빛에 반사되면 황홀함마저 느끼게 한다. 청암교를 지나면 조선 후기 풍자·방랑 시인 김삿갓이 화순적벽을 가던 길인 ‘김삿갓길’이 청풍쉼터부터 화암마을 옛 주막터까지 이어진다. 이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김삿갓이 모습을 감추기 전 담양 죽물시장에서 다 헤진 삿갓을 버리고 새 것을 사면서 읊었다는 ‘此竹彼竹 化去竹(차죽피죽 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飯飯粥粥 生此竹(반반갱갱 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나오는 대로) 是是非非 付彼竹(시시비비 부피죽, 옳고 그름은 따지지 말고 그저 그런대로)’ 로 이어지는 김삿갓의 ‘죽(竹) 타령’ 시가 생각난다. 홀가분해진 마음을 안고 길을 계속 걸으면 어느새 화암마을 옛주막터에서 충장사로 이어지는 ‘장보러 가는 길’이 펼쳐진다. 이 길은 담양이나 화순에 살던 선조들이 광주양동 또는 대인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닌 길이다. 꾸불꾸불 힘든 고갯길에 한 짐 가득 들고 왔을 장보따리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고갯길을 따라 걷다보면 1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산장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구간은 소나무 숲과 원효 너덜을 지나 옛 산장 계곡을 찾아가는 길이다. 충장사에서 원효사까지 펼쳐져 있으며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향기가 온몸을 정화시키는 듯하다. 소에게 길을 묻으며 황소처럼 걷다가 옛날 나무꾼들이 걸었던 산길로 접어들면 몸은 어느새 자연의 소리-향으로 가득차 원시 생태림에 취해 걷는 2구간 원효사 ~ 제철유적지 ~ 서석대까지 4.12km, 약 2시간이 소요되는 2구간은 원효사 입구에서 시작해 일방통행길로 이뤄져 있다. 다른 구간보다 짧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생태적 원시림에 가까운 숲에서 야생동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광주시는 이 점을 고려해 여러 가지 조사와 검토를 거친 뒤 작년 10월 복원·개통했다. ‘자연에 홀려서 걸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이 ‘무아지경길’은 휴대전화 같은 기계를 끄고 걸어야 제 맛이다. 그러면 원효계곡의 청아한 새소리, 뼛속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듯한 싱그러운 공기와 바람 소리, 물소리가 온 몸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팻말도 ‘숨소리도 죽여 가며 아니온 듯 다녀가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새소리들을 따라 걷다보면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임진왜란 때 칼을 만들기 위해 철을 가공하던 제련소 유적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었지만 원효계곡의 물소리에 묻혀 소리가 나지 않아 적군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다. 유적지를 지나면 예부터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중 길, 물통거리가 나온다. 1960년대부터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 길로 이용했지만, 80년대 이후에는 버려진 길이다. 과거를 되짚다 보면 어느덧 2구간의 종착역인 서석대에 다다른다. 서석대는 한반도 육지의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돼 있다. 서석대 정상에 오르면 맑은 날이면 서쪽으로 광주광역시 전 지역, 북쪽으로 담양, 동쪽으로 화순, 남쪽으로 나주시에 이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서석대는 비가 온 날이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바위에 반사돼 수정처럼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는 이름이 전해져 내려온다. 광주광역시에 ‘빛고을 광주’라는 명칭을 안겨 준 이유이기도 하다. 무등산 정상에 거대한 병풍을 둘러친 듯한 서석대의 장엄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 그 자체다.

김삿갓이 ‘是是非非 付彼竹’ 읊었던 길, 의병장군 김덕령이 칼 갈던 길을 다 걸으니, 서쪽 하늘엔 석양이 붉게 타오르고… 광주 도심과 담양 가사문화권을 연결하는 3구간 아직 미완성인 3구간은 지난 7월 이미 개방된 장원삼거리 ~ 충장사 ~ 환벽당의 11.3㎞와, 연말 개방을 목표로 단장 중인 환벽당 ~ 소쇄원 ~ 식영정 ~ 명옥헌까지 총 15km 길이다. 이 구간은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골고루 체험할 수 있는 구간이다. 3구간 초입은 장원삼거리에서 덕봉을 지나 충장사에 이르는 길로, 예부터 나무꾼들이 주로 이용했다. 옛날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던 나무꾼들의 땀과 열정이 길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2년 2월 건립된 사우 충장사가 나타난다. 이곳은 충장공의 수우와 관을 보관하고 있는 유물관과 함께 150여 평의 연못이 한국 고유의 전통양식과 정감을 살려 조성됐다. 이곳에 전시된 장군의 의상은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됐다. 충장사와 풍암정을 거쳐 환벽당까지는 선조들의 역사가 곳곳에 묻어나는 ‘역사길’이다. 김덕령 장군의 생가, 가사문학의 유적과 연결돼 있어 역사체험, 정자문화 체험, 농촌 체험 등을 겸할 수 있다. 자연에 취해 코스를 걷고 나면 마음이 가뿐해지면서 석양이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고 있다. 무등산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이애심(53) 씨는 “무등산 옛길은 천천히 걷는 길이므로 되도록 자가용 이용을 삼가고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 좋다”며 “길과 자연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지팡이 사용을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무등산 자락 한바퀴 ‘무돌길’ 광주시는 '옛길'과 함께 무등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무돌길'도 열었다. 무돌길은 북구 각화동 ~ 청옥동 ~ 충효동을 거쳐 담양 남면 ~ 화순 이서 ~ 안양산 휴양림 ~ 동구 용연마을 ~ 광주생태 하천길 ~ 폐선부지 푸른길에 이르는 총 15개 코스 50㎞로 구성돼 있다. 다 걸으려면 18시간이 걸리는 긴 코스다. 무등산의 옛 이름이면서 또한 순환을 의미하는 말인 ‘무돌’을 붙인 이 길은 해발 200~400m 높이로 이뤄져 있다. 전통문화 유적과 선조들의 지혜와 삶, 애환을 느끼고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눈을 씻어낼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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