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환 (미술평론가) 박병춘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산수 컬렉션’으로 명명한다. 작가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됐던 정선을 처음으로 찾았던 것으로 치자면 근 20년 남짓한 세월을 산수화를 품고 그리면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 세월이 남긴 흔적을 반추해본다. 그렇다고 원로 작가나 중견 작가의 회고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작가의 형식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며, 이러한 사실은 이번 전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확인된다.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먹선을 들 수 있다. 농묵이면 농묵, 담묵이면 담묵, 이렇게 작가는 그 농담이 균일한 먹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탓에 발묵 효과보다는 필선 자체의 고유한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근작에서 주목되는 점으로는 작가가 구글어서에서 캡처한 사진을 그림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시점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도 작가는 산 정상에서 아래쪽을 굽어보며 사생을 하고 이를 그림으로 옮겨 그린 예가 많지만, 구글이 제공해준 것과 같은 항공사진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시점을 취하기는 처음이다. 그 시점이 하늘 위 정 위치에서 내려다본 것인 만큼 마치 그림지도를 보듯 평면적인 느낌이 두드러져 보이고, 이로써 작가의 기왕의 그림에 나타난 평면적인 경향성을 강조하는 시각적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 전시의 메인에 해당하지 싶은 작업으로서, 작가가 히말라야 등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장관을 현실 공간에다 연출했다. 이야말로 유사 자연이며, 인공 자연이며, 이미테이션 자연이며, 오브제 자연이 완벽하게 예시되고 있질 않은가.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 작업에 관해서는, 자연 그대로의 닮은꼴을 옮겨다놓는 식의 재현은 작가의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작가가 진정으로 재현하고 싶은 것은 경관 자체가 아니라 경관에서 받은 인상과 감동일 것이다. 여하튼 작가는 이로써 산수에 대한 관념 자체를, 혹은 그림 속에서만 존재해왔던 산수를 실제 공간 속으로, 현실 공간 속으로 끄집어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끄집어내진 산수가 친근하고 낯설고 기묘하다. 작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면작업과 함께 오브제 작업을, 그리고 공간 설치 작업을 병행해왔다. 2차원의 평면 속에 갇혀있던 산수화를 3차원의 실제 공간 속으로 불러낸 것이며, 이로써 산수화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 나아가 평면그림에서조차, 비록 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안과 밖을 들락거리는 어떤 상태, 그림 속에 내가 들어있다고 하는 어떤 느낌을 암시해온 전통 산수화의 이념을 좀 더 실감나는 경험의 층위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