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⑨ 지장암~도선사 길

‘숙녀 얼굴 붉힐 남근석’ 피해 산에 오르니…

  •  

cnbnews 제199호 편집팀⁄ 2010.12.06 14:24:23

이한성 동국대 교수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내려 우측을 올려보면 도봉산 방향 산언덕에 우이암이 보인다. 소귀(牛耳)라기보다는 소뿔(牛角)에 가깝다. 70년대 어느 겨울 날, 어쩌다가 바위 타는 친구들과 산행을 왔는데 기죽기 싫어 이 바위에 올랐다가 혼쭐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높은 바위만 봐도 지레 다리가 떨렸다. 도선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길 입구 도선사행 버스 정류소에는 오늘도 절에 가려는 신도들이 줄을 서고, 택시도 합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택시는 5,000원에 도선사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며, 여러 사람이 합승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도선사까지 길은 예전에는 한가했지만 포장이 되고 차가 많아지면서 이제 도저히 걷기에 부적절한 길이 됐다. 덕분에 택시도 운행이 잘 되는 것 같다. 산행 뒤 지쳐 내려오는 장년층에게는 구세주 같은 교통수단이다. 오늘은 지장암 방향으로 가기에 포장도로는 600~700m 쯤 걸으면 된다. 입구에서 500여m 들어오면 좌측에 붉은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을 만난다. 안내판에 봉황각(鳳凰閣)이라고 쓰여 있다. 건물로 보아서는 종교단체 건물 같은데 이름은 고급음식점이나 요정 같기도 해서 오랫동안 이 길을 다녔으나 들어 가 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기심에 들어 와 봤더니 우리 근세사의 산실 중 하나인 소중한 유적이었다. 붉은 벽돌집은 종로 경운동에 있던 천도교 중앙총부를 1969년에 옮긴 봉황각 별관이었으며, 실제 봉황각은 그 뒤에 숨은 듯이 자리한 고풍스런 한옥(韓屋: 서울시 유형문화제 2호)이었다. 1911년 봄 의친왕 이강 공(義親王 李堈 公,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임시정부로 탈출을 기도하다가 만주에서 발각되어 소환돼 오고, 일본의 강요에도 일본으로 건너가기를 끝까지 거부해 일제하 조선 왕족의 중심이 된 의기男)과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선생이 이곳 우이동 계곡에서 만났다. 서로 소회를 털어놓던 중 의기투합하여 의친왕은 그 해 여름 천도교에 입교하게 되고 이듬해인 1912년 봉황각이 세워지게 된다. 음식점 이름 같은 2층 한옥 ‘봉황각’에는 조선 왕조의 의기男 영친왕의 한부터 손병희 선생의 민족갱생 의지가 오롯이 의암 손병희 선생은 이곳 봉황각에서 민족지도자를 양성했는데 7회에 걸쳐 인재 483명을 배출했다. 민족을 위해 일할 ‘봉황’처럼 소중한 인재를 길러내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인재들은 3.1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어 각 지방으로 흩어져 만세운동 이끌었다고 한다. 3.1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의 민족대표 중 천도교 측 대표가 15인이나 됐으니 봉황각은 건물뿐 아니라, 그 역할이 잊힐 수 없는 민족의 중요한 유산인 셈이다. 건물은 편안한 한옥 살림집처럼 보인다. 봉황각이라고 쓴 편액(片額)이 걸려 있는데 근대의 명필 오세창 선생의 필치며 봉(鳳)은 당나라 명필 안진경의 글씨를, 황(凰)은 당나라의 또 다른 명필인 소회의 글씨를, 각(閣)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이 3.1운동 당시 낭독했던 기미독립선언문이다. 어찌나 조마조마하게 왜경(倭警)의 눈을 피해 찍었는지 교정(校訂)도 채 못 본 채 오자(誤字)가 그대로 찍혀 있다. 봉황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다면 이 곳 원장을 맡고 계신 중암(中菴) 선생(02-993-2391)께 사전에 연락드리고 가면 된다. 최근에 가 보았더니 이곳 앞길이 북한산 둘레길에 포함돼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둘레길을 순례하는 이들은 들러 가시기를.

이제 세 분의 민불(民佛)과 도선사 마애불을 만나러 길을 떠나 보자. 도선사 방향으로 200여m 가면 우측으로 지장암(地藏庵) 표지판이 보인다. 무심히 지나면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이계곡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가정집 같은 지장암과 만난다. 지장암을 버리고 산으로 이어진 길을 잠시 간다. 길이 약간 높아지면서 왼쪽으로 1000여 평은 될 만한 공터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가 같은 건물이 보인다. 이 공터로 갈 길을 잡는다. 공터 끝에 석탑이 있어서 얼마 전까지도 개인 절로 사용하던 부지임을 알 수 있다. 이 부지 끝이 계곡과 만나는 지점인데, 계곡을 끼고 잠시 오르면 무허가 기도터 같은 비닐 천막이 나오면서 그 곳 위 바위에 정병(淨甁)을 든 마애관세음보살이 길손을 맞는다. 명문에는 ‘관세음보살’이라고 쓰여 있으며 불기2991년 10월이라 했으니 1964년에 이곳에 있던 절에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련되지 않은 민불(民佛)이다. 원(願)을 세워 간절히 기도했을 시주자의 이름도 보인다. 마애불 앞에 촛대와 불기(佛器)가 놓인 것으로 보아 누군가 기도터로 쓰고 있는 것 같다. 길이 없는 듯 보이나 계곡으로 오르지 말고 마애불 옆 능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이 지장암 능선의 시작 지점으로 영봉(靈峰)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북한산 오지를 즐기는 산꾼들이 다니는 길이다. 이 길의 중간 이후는 암릉 지대로 위험하니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길에서 뺄 수 없는 매력은 형형색색의 바위들로서 그 중 코끼리 바위와 남근석(男根石)은 빼어난 자연의 조화물이다. 특히 이 길에서 만나는 남근석은 바야흐로 교접(交接) 중인 남근석으로 얌전한 숙녀는 곁에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그러나 오늘 갈 길은 이곳까지는 이르지 않으니 얼굴 부끄러울 일은 없다. 능선으로 접어들어 약 100m 오르면 우측 아래쪽으로 견실하게 쌓은 축대와 절터로 짐작되는 공터가 보인다. 제법 규모가 있는 유허(遺墟)인데 기록이나 명문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혹시 도성암(道成庵)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는지. 마귀를 제압하는 석가모니 마애불과, 부채를 펼쳐든 옥황상제가 아무 거리낌없이 마주하고 있으니 우리 전통신앙은 역시 블랙홀 도성암은 고개 넘어 방학동에 있는 세종대왕의 둘째 따님 정의공주(貞懿公主)의 원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삼각산 동쪽에 있다(在三角山東)’고 했으며, 북한지에는 ‘대동문 밖에 있다. 정의공주 원찰이다. 지금은 폐사되었다(在東門外 貞懿公主願刹, 今廢)라고 했다. 위치상으로 북한산과 정의공주 묘역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또 다른 일설에는 도성암이 가오리(加五里)에 있었다고도 하니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능선길은 편한 흙길로 이어진다. 능선 시점(始點)에서 15분쯤 오르면 좌측 능선 아래로 바위들이 나타나고 길 옆 작은 바위에 거의 지워진 붉은 페인트 글씨 ‘금봉암’이 보인다. 여기에서 50여m 오르면 좌측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갈라진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모퉁이 30여m 앞 바위를 돌면서 시선을 위로 돌리자. 큰 바위 하단에 두 기(基)의 마애불이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분은 수인(手印: 손 모양)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마귀들에게 항복 받는 손 모양)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며, 다른 한 분은 부채를 들고 있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다. 전통신앙과 불교가 묘하게 공존하는 세계다. 한국의 무속(巫俗) 신앙은 정말로 블랙홀이다. 거리끼는 것 없이 어느 분이든 큰 힘이 있다면 신(神)으로 받아들인다. 불교의 여러 부처와 보살들, 신장들은 물론, 노자(老子)도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부르며 신으로 받들고, 옥황상제, 일월성신, 북두칠성도 받아들인다. 그뿐인가 최영 장군, 남이 장군, 관운장, 장비도 받아들이고, 단종대왕도 받아들이며, 들리는 바로는 맥아더 장군, 예수도 받드는 이가 있다 한다. 이렇듯 경계가 없으니 이 곳 두 분 마애상(磨崖像)도 그런 연유로 공존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 있었던 절은 전통신앙과 불교를 함께 섬기는 개인 절이었을 것이다. 마애불을 뒤로 하고 이어지는 오솔길로 나아간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은 외지다. 10여 분 가다 보면 계곡길과 만나는데, 지장암 능선 출발 지점을 흐르던 계곡의 중상류다. 이 계곡은 영봉 아래에서 발원한다. 다니는 사람이 꽤 되는지 길도 뚜렷하다. 계곡길 상류로 올라간다. 수량도 적지 않고 가기도 편한 호젓한 길이다. 거의 영봉 능선 밑에 이르면 계곡은 우측으로 꺾인다. 계곡 큰 바위 밑에 기도하는 이들이 치성을 드리는지 촛불 흔적도 있고 주변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길을 타고 오르면, 하루재 아래에서 우이동 소귀천 계곡 갈라지는 곳의 선운교 앞으로 연결되는 능선길로 오른다. 아래로는 도선사 주차장이 보인다. 잠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면 왼쪽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 주차장으로 내려선 후 도선사(道詵寺)로 향한다. 도선사는 신라 경문왕(新羅 景文王) 2년(862)에 도선이 건립하였다 한다. 1887년(고종24년) 오층탑을 건립하고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했다 하며, 1904년(光武7年, 고종31년)에는 국가기도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시 유형문화제 191호인 대세지보살상, 아미타불좌상, 192호인 독성상과 제 34호 ‘도선사 마애불’이라 부르는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이 곳 마애관음상은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주장자(柱杖子: 승려의 지팡이)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새겼다는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고, 규모로 볼 때 조선 후기에 큰 원력으로 세운 것이리라. 들리는 바로는 이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을 잘 이뤄진다는데, 관세음보살이야 본래 넓은 품으로 중생을 감싸 주는 분이라 그럴 만도 하다. 엊그제 수능시험 철에는 기도하는 대중이 가득 모여 밤샘 기도를 드렸으니 어머니의 그 정성이 어디 헛간 데 있겠는가? 마애불을 뒤로 하고 대웅전 마당에 내려서면 우측으로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그 앞에는 인도의 어느 스님이 심었다는 200년 된 보리수(菩提樹)가 있고 건물 기둥에는 네 쪽의 주련(柱聯: 기둥에 매단 글)이 걸려 있다.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神力) 지장보살의 위신력은 항하사겁설난진(恒河沙劫說難盡) 셀 수 없는 시간 설하여도 다하기 어렵네 문견첨예일념간(聞見瞻禮一念間) 한 순간 듣고 보고 예를 올려도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 인천의 끝없는 일 이롭게 하시네. *항하사겁(恒河沙劫) : 갠지스 강 모래만큼 셀 수 없는 시간 건물 안에는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한창 젊었을 때 사진인지 앳되어 보인다. 오래 전에 늙은 얼굴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앳된 얼굴 사진은 왠지 쓸쓸한 감회를 일으킨다. 육영수 여사는 생전에 이곳에 주석하던 청담스님의 호국불교에 마음이 움직여 청담스님으로부터 대덕화라는 법명을 받았고 도선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명부전에 영정이 걸려 있는 것이리라. 건너편에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영정도 있다. 조선의 왕도를 정하기 위해 무학대사가 올랐다는 만경대가 보이는 도선사에서 서울에 서린 꿈들을 맛보고 내려오면… 경부고속도로를 함께 뚫고, 맨땅에 조선소를 함께 건설했던 이들이 영혼으로라도 한 장소에 있다는 것은 큰 인연일 것이다. 부디 우리 땅에 좋은 이들이 많이 나와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하시라. 고개를 돌려 위를 보니 만경대(萬景臺, 일명 國望峰)가 내려다보고 있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이루는 삼각산(三角山)의 남쪽 봉 만경대 품에 도선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조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擇里志)에는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려고 만경대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使僧無學 定都邑之地. 無學 自白雲臺 尋脈到萬景…). 결국은 북악(北岳)에 이르러 도읍지를 정했다고 하지만.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지친 이들은 도선사 주차장에서 신도용 버스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택시 합승을 할 일이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능선길을 한 번 걸어 보자. 아까 주차장으로 내려 왔던 그 능선길로 다시 오르는 것이다. 이 길은 단 한 번의 올려침도 없이 흙길로 이어지는 최고의 걷기 코스이다. 능선이 끝나는 지점은 소귀천계곡이 갈라지는 선운교 앞이다. 여기에서 우이동버스 종점까지는 1km 정도의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버스종점까지 이르는 길에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있다. 다 먹을 만한 집들이다. 필자의 친구는 버스종점 앞 ‘원석이네’에 들러 생선찌개에 막걸리 한 잔을 즐긴다.

교통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 하차 ~ 중앙버스차선 109, 120, 130, 144, 153, 170, 171 버스 환승하여 우이동 하차. 걷기 코스 우이동종점 ~ 봉황각 ~ 지장암 방향 우회전 ~ 절터 위 마애불 ~ 지장암 능선 ~ 금봉암터 마애불 ~ 도선사 ~ 능선길 ~ 우이동 CNB저널은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낮에 서울 근교의 마애불과 유적지를 탐방 합니다. 3~4시간 정도 등산과 걷기를 하며 선인들의 숨겨진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갑니다.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본지 Art In 편집주간)로 메일 보내 주십시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