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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미술과 친해지기

현실 너머의 세계를 반추상으로 그리는 Ka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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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202-203호 편집팀⁄ 2010.12.27 13:44:10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 통큰 대표)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붓을 쥐어 주면, 아이는 붓과 놀이를 한다. 시간은 멈추어지고 놀이는 일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아이 같은 어른, 카타(Oumar Katta Diallo)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마치 아이의 놀이와도 같다. 그런 마음을 지닌 이에게 어떤 그림을 그리냐고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즐겁게 놀이하듯 나무에, 유리에, 캔버스에 그림을 가득 그리는 이가 카타다. 그런데 무엇을 그렸는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추상같기도 하고 구상 같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추상으로 보면 구상이다, 구상으로 보면 추상이다.”라고 말한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듯이 그에게 그림의 장르를 구분하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개 아이들은 화면에 그림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면,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장을 그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 같은 카타는 꽉 채운 화면을 통해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그래서 바탕색은 한색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색을 여러 번 칠한 것이 마치 삶에 대한 경험의 수처럼 보인다. 그에게 흰색이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푸른색도 그렇고 붉은색도 그렇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 넘나들기에 자유롭듯이, 색의 경계 넘나들기에 자유로운 이가 바로 카타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호와 문양을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이미지로 보인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어떤 그림에는 남녀 한 쌍이 수도 없이 많다. 모두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똑같은 사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똑같은 사랑은 없다는 이야기인지 ‘사랑’을 다시 끔 생각하게 한다. 그에게도 사랑 혹은 인간관계가 영원한 딜레마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형태도 몽환적이다. 색도 하나의 색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색의 결합이 마치 복잡다단한 삶, 얽히고설킨 관계처럼 보인다. “요란한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라는 것이 카타의 지론인데, 우리의 삶은 그와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역동성의 문제다. 카타가 그리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현실은 물론, 현실 저 너머까지도 관통해야 할 아프리카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원시와 순수라는 관념적이면서 과거 회귀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재의 변화와 창조의 내용을 어떻게 미래의 시간에 닿게 하느냐는 것이다. 전통에 근거한 기호와 문양을 카타 특유의 시각과 에너지, 즉 변화와 창조를 아프리카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풀어내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아프리카 미술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카타의 역할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남이 가지 않는 길, 그 길을 선택한 것이 바로 카타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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