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사이로, 출렁이는 물 위로 맑고 따사로운 빛이 내리쬔다. 빛이 만들어내는 고요하면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자연 풍경을 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눈부실 정도의 빛이 환상적으로 든 숲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멈추게 한다. 실제로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진 작품.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진 숲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그 속에 있는 듯 상쾌하고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만난 도성욱 작가는 빛을 주제로 마음속 자연 풍경을 그린다. 작품만을 놓고 보자면 단지 빛이 신비한 느낌으로 비추는 숲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숲은 빛의 형상을 나타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그의 작품을 설명함에 있어 숲을 그린다기보다 숲에 떨어지는 빛을 그린다가 정확한 답이다. “작업의 주제는 ‘빛’이에요. 처음 전시부터 언제나 주제는 빛과 그림자였죠. 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적인 형태를 표현하고자 해요. 빛은 숲을 보게 하는 조건인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조건이며 또 삶의 조건이기도 한거죠.”
사진보다도 멋지다고 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대부분 흑백(역광)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조건은 단 한 가지 바로 빛이다. 그만큼 빛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다. ‘빛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숲을 볼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빛이 있음으로 해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또한 빛이 있음으로 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그의 철학을 알고 나면 단지 예쁜 숲 그림이 아닌 그 이상의 깊은 뜻을 간직한 작품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빛을 주제로 작업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였다. 어머님과 함께 산을 올라 잠시 벤치에 누워 잠들었던 그는 눈을 뜨는 순간 숲 사이 특히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이후 사진으로 찍어봤지만 당시의 느낌과 효과가 나오지 않았고 자신의 기억으로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그림 속 장소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실적인 자연 풍경이 아닌 바로 ‘마음속 풍경’인 것이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내가 받았던 빛에 대한 인상과 느낌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억을 끄집어내서 작업했죠. 사진은 그때 기억 속 빛의 형태를 되살려주는 역할을 해요. 사실적이 아닌데 다들 그렇게 받아들이더군요. ‘저곳이 어디냐?’ ‘나무는 뭐냐?’ 등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내 머릿속에 기억된 풍경인데 어디선가 있을 법한 풍경이기에 착각하는 것 같아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형태가 없는 빛을 그리기 위해 빛의 파장에 따른 성질까지도 연구했다. 결국 숲 속 나무와 나무 사이,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들어와 만들어지는 빛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숲 그림도 그 구도와 색감이 다양해 길이 있거나 없는 것과 나뭇잎의 색도 다르다. 작품은 숲 그림뿐만이 아닌 물 그림도 있다. 물에 비친 빛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의 그림을 보면 극사실화가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그는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인해 사실적으로 그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음가는대로 그리다보면 이런 작업이 나와요. 멀리서보면 마치 사진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절대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하지 않아요. 가까이서 보면 붓 터치의 느낌이 달라요. 사실적인 붓 터치가 아닌 심상적 붓 터치이기 때문이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다보니 스트레스도 없고 작업도 한번 시작하면 빠르게 진행해 나가죠. 작품 속 배치도 그려가면서 이뤄져요.” 그의 말처럼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 힘찬 붓 터치의 강렬함이 눈에 들어온다. 즉흥적으로 빠르게 그리는 속필이라는 그의 얘기가 믿기 힘들 정도다. 특히 그의 미술인생에 있어 가장 큰마음의 변화를 준 곳은 군대라고 한다. 해병대 출신인 군 생활 중 그는 그림을 그려 휴가를 나오고 돈도 벌어 자동차까지 사서 제대했을 만큼 독특한 군 생활을 했다. “우연한 기회로 해병대 본부에서 일하게 됐어요. 당시 해병대에서 역사관을 만드는데 그곳에 역대 전투와 주요 작전 등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을 맡게 됐죠. 반응도 좋았고 지금도 제가 그린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무엇보다 군대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모두가 꿈이 있고 희망을 갖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제대 후 남들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더 큰 열정을 갖게 됐죠.” 2009~2010년 그림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작품도 다르게 표현하고자 했으며 올해는 기존과는 다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제 그림 인생 2기에 접어들었다 생각해요. 2011년은 오래도록 작업하면서 사랑받는 작가가 되기 위한 중요한 해죠.” 그가 빛을 담아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으로 심상적인 색으로 표현한 그림을 통해 빛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그의 작품은 오는 7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4년여 만에 열리는 개인전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