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학생이 벌써 초경을 하고 가슴이 커지는 현상인 이른바 성조숙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성조숙증이 왜 현대 사회에서 폭넓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환경 호르몬의 영향 등 여러 요인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진화론 차원에서 이를 풀이하는 학설도 이미 나와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생물학과 연구팀은 지난 2009년 미국의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6월25일자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현대처럼 풍족한 사회 환경 속에서 인간은 경쟁적으로 번식을 서둘게 되며, 이러한 진화적 현상에 따라 소녀들이 빨리 여인이 되면서 번식을 하고 그 대신 성인병에 빨리 걸려 일찍 죽게 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 가설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수십만 년을 살아온 인간의 본능이 풍족한 시기에는 번식을 서두르고, 궁핍한 시기에는 번식을 미룬다는 현상을 근거로 한다. 사실 인간의 번식이란 아직도 신비에 싸인 측면이 많다. 예컨대 유럽의 연구를 보면 2차대전 등 전쟁 기간에는 아무런 이유없이 남자 아기가 더 많이 태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남자로 태어나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남자가 더 태어난다는 해석이 있다. 요즘처럼 기름진 음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진화 본능’이 작용돼 번식을 서두르게 된다. 풍족한 먹이 환경에서는 다른 개체들도 왕성하게 번식할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서둘러 번식해 하나라도 자손을 더 낳아야 생존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일단 번식을 마친 개체는 더 이상 쓸모없는 몸이 된다. 후손을 이미 생산해 유전자를 후손에게 넘긴, ‘낡은’ 성인의 몸을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낡은 몸을 죽이고, 새 몸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게 더 유리하다. 그래서 번식을 마친 성인 개체는 성인병이 걸리기 쉽다는 진화의학적 주장도 나와 있다. 최근 소아당뇨병, 소아비만 등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게 바로 이런 현상이며, 일부 의학자들은 이런 조숙 현상 때부터 그동안 계속 늘어왔던 인간의 평균수명이 앞으로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풍족한 시기에는 번식을 경쟁적으로 서두르지만 궁핍한 시기에는 번식을 자제하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게 진화의 본능이다. 궁핍한 시기에는 자식을 낳아도 생존시키기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몸은 미래에 돌아온 풍요의 시기에 번식을 하기 위해 당장 자신의 몸을 지켜 궁핍한 시기를 넘기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궁핍한 시기에는 오히려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흔히 ‘소식 하면 장수한다’고 하듯, 음식을 일부러 적게 먹으면 장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네소타대학 연구진은 궁핍한 시기에는 먹는 음식, 즉 한국으로 치자면 초근목피(풀 뿌리와 나무 껍질) 같은 곤궁기 음식에 장수를 돕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가설도 내놓았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먹지 않는 음식을 곤궁기에는 먹게 되고, 이런 식품들에 있는 약한 독 기운이 인체에 ‘번식을 최대한 미루고 지금은 네 몸을 지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라’는 지시를 전달하면서 장수 효과가 거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학적 가설은 이런 결론을 내놓는다. ‘아무리 먹을 게 풍족하게 조금 먹고 궁핍한 듯이 살아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 등이 모두 성조숙증과 성인병을 부추기는 요인들이며, 흉년이라도 맞은 듯 조촐하게 식생활을 하는 것이 성조숙증을 막고 장수를 부르는 요령이라는 조언이 되기도 하는 가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