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색과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 귀여운 캐릭터들은 단번에 눈길을 끈다. 하지만 단순히 귀엽다고만 보기에는 무언가 슬퍼 보이기도, 화나 보이기도 하다. 마치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울고 있고, 기쁜 듯하면서도 우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강석현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고 느낀 감정들을 그림으로, 조각으로, 설치 작업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그의 작업에는 거대한 로봇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색색으로 빠져나오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거대한 빌딩 숲 사이, 더 나아가서는 규격화된 사회의 틀 안에서 자유를 억압받고 정해진 룰에 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강석현은 이에 대해 아주 무겁게 다루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떤 현상에 대해 느낀 개인적인 감정을 풀어놓을 뿐이다. 그 감정은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같은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 감정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강석현이 의도하는 바이다. 강석현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작품 중 ‘카르마(Karma)’에 등장하는 강아지는 실제 유기견을 길렀던 그의 경험이 담겨 있다. 다소 상처 입은 것처럼 보이는 강아지는 연민을 자아낸다. 하지만 결코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전 작업에서 보다 과격하고 화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아지는 근작에서 다소 온화해진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치유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던 강아지가 나중에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강석현 또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한다. 이는 강석현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서 자신 나름대로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장난감같이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은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만큼 추억도 떠올리게 해준다. 잊고 있었던 소중한 장난감을 우연히 창고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아련한 감정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진다. 그 감정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고 살았던 동심을 전해주며 현재를 살아갈 힘을 전해준다. 또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갈 길을 마련해준다. 강석현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캐릭터들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슬픔, 희망, 행복 등 여러 가지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그의 작품은 아직도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