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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근사근 여인에서 권투선수로

‘이기동체육관’에서 진짜 권투선수로 오해받은 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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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9호 이우인⁄ 2011.02.14 14:10:30

아담한 체구, 호리호리한 몸매, 귀여운 눈웃음, 사근사근한 목소리…. 연극배우 강지원(35)은 천상여자다. 강지원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샌드백을 바라볼 때 강지원의 눈빛은 매섭게 변한다. 줄넘기를 잡고 2단 뛰기를 하는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링 위에서 스파링 자세를 취할 때는 ‘어서 덤벼’라는 말풍선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도대체 이 여자 뭐지? 강지원을 처음 본 건 현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이기동 체육관’에서다. 이기동 체육관의 관장 이기동 딸 이연희 역을 맡은 그녀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체육관이 문을 닫은 늦은 시각,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강지원은 링 한가운데에 엎드린 채 등장했다. 관객은 모두 숨을 죽였고, 저 여자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집중했다. 강지원은 팔굽혀펴기를 몇 차례 한 뒤 암전과 함께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기동 체육관’은 강지원이 극본 단계부터 참여한 작품이다. ‘이기동 체육관’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손효원과 2007년 연극 ‘LUV’를 작업한 인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처음에 맡기로 한 여성 코치 역할은 시놉시스가 완성되면서 관장 딸로 바뀌었다. 강지원과 연극 ‘이기동 체육관’ 권투를 사랑하는 극 중 이연희는 아버지 눈을 피해 권투선수 꿈을 키우는 선머슴 같은 여자다. 그런데 뼛속 깊이 여자인 데다 그동안 출연작에서 여성스러운 역할만 도맡아 온 강지원에게 권투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 같았다. 하지만 강지원은 실제로 권투선수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역할을 멋지게 해냈다. “진짜 권투선수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절대 아니랍니다. 저처럼 여성스러운 여자는 아마 찾기 어려울 걸요(웃음)” ‘남자 같다는 오해가 계속되면 어쩌나’하는 걱정 때문일까? 기자의 질문에 강지원은 입술을 쭈뼛 내밀었다. 강지원은 이 작품으로 그동안 구축해 온 여성적인 이미지와 호리호리한 몸매 대신 남성적인 카리스마와 근육질 몸매를 얻었다. 보통 여성에게 어려운 팔굽혀펴기는 강지원에게는 처음부터 식은 죽 먹기였다고 한다. 팔굽혀펴기 장면을 무대에 올리자고 손 연출에게 제안한 사람도 강지원이었다. “역할을 위해 원래 고음이었던 목소리도 다운시키고, 머리도 싹둑 잘랐어요. 권투는 5개월 동안 배웠는데 정말 힘들었죠. 몸이 고달픈 작업이라 한 번만 하고 말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초연 때 함께 만들면서 배우들과 정도 많이 들어서 다른 작품보다 ‘이기동 체육관’에 더 마음이 가요.” 그토록 열심히 구축한 역할을 이번엔 다른 여배우와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 중인 강지원.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이연희를 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컸는데, 후배 덕에 지금에서야 볼 수 있었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연희 역할의 배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번 ‘이기동 체육관’은 대중 스타 김수로와 솔비가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이 맡은 역할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주인공인 것처럼 알려졌다. ‘이기동 체육관’ 포스터의 ‘김수로가 펼치는 무대 위 한판승부’라는 카피를 보고 극장을 찾았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관객도 더러 있다. 순종 연극인이 아닌 연예인들의 공연 진출에 대해 강지원은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저 역시 그들에게 느끼는 선입견은 있어요. 캐스팅이 안 돼서 연극을 못하는 연극인도 많은데 유명한 스타가 공연계를 장악한다는 느낌 때문에 그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적도 있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연장에 관객을 더 많이 부르면서 공연을 못 하는 배우들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 줬어요. (김)수로 오빠와 솔비의 출연이 ‘이기동 체육관’이란 작품을 위해서는 감사할 일이죠. 실제로 김수로와 솔비를 보러 왔다가 ‘이기동 체육관’이 좋아졌다는 후기도 있답니다.” 한 우물 파는 미련한(?) 여배우 1976년 5월 21일생인 강지원의 원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계원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음대에 가려고 준비하던 중3의 어느 날, 피아노 앞에서 갑자기 진로를 변경한다. “피아노는 매일 쳤기 때문에 그날도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이걸 평생 할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히고 죽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께 인문계 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반에서 제 앞에 앉은 친구가 자기랑 같이 연극을 하자고 하는 거예요. 순간 어릴 때 교회에서 본 성극도 떠오르고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시험 보러 갈 때는 아버지한테 피아노 시험을 본다고 말하고, 실제론 연극영화과 시험을 쳤죠. 경쟁률도 꽤 높고 학원 한 번 안 다녔는데 덜컥 붙었어요. 그리고 결과를 보여 드렸죠. 아버지는 그냥 ‘픽’ 웃으셨어요.” 이후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에 진학한 강지원은 대학을 졸업한 뒤 졸업생 오빠들과 극단을 만들어 작품을 올렸다. 창작극 ‘수족관 거북이와 눈을 맞추다’가 그것. 하지만 제작 여건이 좋지 않아 극단을 그만둔 그녀는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를 시작한다. “처음엔 (‘난타’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작품이 성공하면서 해외 공연으로 이어졌고, 배우로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따라갔죠. 그리고 5년 5개월 동안 ‘난타’만 했어요.” 그녀는 ‘난타’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무언극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연극인들을 의식해서다. ‘난타’ 출신 배우라면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수월했을 텐데도 그녀는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녀의 미련함이 드러난다. 한편 ‘이기동 체육관’은 2월 26일 서울 공연을 마치고 지방 공연을 시작한다. 강지원은 오랜만의 지방 공연이 설렌다면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3월에는 대학원 진학도 앞두고 있다.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요, 대학원에서 더 제대로 공부하면 이 공부가 연극 쪽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더 좋은 인간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짝사랑은 고달프지만 행복하다 연극에 대한 강지원의 사랑은 지극정성이다. ‘칼로 막베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몽연’ ‘들소의 달’ ‘짬뽕’ ‘LUV’ 등은 그녀가 출연한 연극이다. 15년이 넘도록 강지원의 머리부터 발끝은 연극뿐이다. 하지만 연극배우의 삶은 고달프다. 최근 연극배우들의 평균 연봉이 2000만 원도 안 된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연극만으로 먹고 살기엔 각박한 세상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극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낙천적이고 단순한 성격이라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지내고 행복할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연극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토록 연극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강지원은 “불과 재작년만 해도 박정자 선생님처럼 정말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면서 “그래서 다른 매체에 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했던 것 같다. 늙을 때까지 내 관리를 하면서 무대에 서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라며 “너무 늦게 철이 들은 것 같다”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했다. 낙천적인 성격이라도 한계에 부딪힐 때는 있다. 강지원에게는 이연희 캐릭터를 고민할 때 슬럼프가 왔다. “초연 때는 같이 만들자는 생각이 더 커서 힘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이기동 체육관’의 두 번째 공연을 올릴 땐 죽겠더라고요. 주위에선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아닌 거예요. 우울증이 올 정도였어요.”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부딪히는 일뿐이었다. “바닥을 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처럼 배우들을 붙잡고 이야기하고 울다 보니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특히 안석환 선배님이 조언을 많이 해 줬어요. 지금은 행복해요. 이연희가 제 안에 확 들어온 느낌이거든요.” 연극배우 외길을 걸어 온 강지원에게 연극은 ‘짝사랑’과 같다. “연극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서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하는데 연극은 아직 저를 봐라봐 주지 않아요. 연극은 그렇게 제가 평생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짝사랑 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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