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데스크 칼럼]쌀이 썩는 나라에서 사람이 굶어죽다니…

  •  

cnbnews 제209호 최영태⁄ 2011.02.14 14:41:32

최영태 편집국장 고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의 ‘아사’ 소식은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눈물 납니다. 우리 사회는 이것밖에 안 되나요?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한국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재야 지도자 박원순 변호사는 2009년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이제 굶어죽으려도 죽을 수 없는 나라다. 쫀쫀하게 살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왜 젊은 인재가 굶어 죽어야 하나요? 굶주릴 때 쪽방 문에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집 문을 두드려 달라’는 쪽지를 써 놓는 나라는 복지 국가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자연스레 관청에 신고하는 사회가 복지사회죠. 세금을 걷는 국가가, 정부가 굶어죽지 않도록 보살펴야지요. 왜 고 최고은 작가나 주변 사람들의 머리에는 “관청에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내 밥은 내가 벌어먹어야 하고, 내가 못 벌면 가족이 책임져야 하며, 그 둘 다가 안 되면 그냥 굶어죽는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서, 그런 세뇌가 너무 잘 돼 있어 그랬나요? 고 최 작가는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췌장염이라는 병을 앓았고, 며칠째 굶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주소지인 안양시 석수동 동사무소에 전화해 봤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기자의 전화라니 경계하면서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연락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정됐을 것이고, 식량을 지원받았을 것”이라고. 관할 보건소에도 전화해 봤습니다. 대답은 “갑상선항진증이든 췌장염이든, 기초생활보장수급자라면 치료비 일부를 나중에 본인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일단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단, 몸의 질병이 아닌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일단 치료부터 해 주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답니다. 정신질환은 전액 본인 부담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군요. ‘제도는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는 한국의 현실이 또 한 번 확인된 사건입니다. 한국에도 실업수당이라는 게 있고 경제 위기 때 많은 실직자들이 이를 이용했지만, 막상 실업수당을 받으려 해당 관청에 가본 사람들은 대개 “정말 이것만은 받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뼈에 사무친답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안겨 주는 인간적 모멸이 대단하다는 것이죠. 자기 주머닛돈 내 주는 것도 아니고, 법에 따라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나라 돈을 내주면서 왜 거기다 ‘모멸’까지 더해 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실업수당처럼 복지에 쓰는 돈이 그냥 낭비돼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실업자가 새 기술을 배우고 새 사업을 준비하도록 해 전체 경제의 활력을 높여 준다는 분석들이 여럿 나와 있는데도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찔까 봐 조금 먹는 게 의무가 된 나라, 묵은 쌀이 썩고 있고, 쌀 보관비용만 연간 수백억 원을 쓰는 나라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게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고 최 작가의 죽음에 여러 사람이 슬퍼하고 분해하는 게 바로 그 점입니다. 한국은 지금 복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큰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마련된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이번 사건이,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분들이 자기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