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개봉되는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COME RAIN, COME SHINE - 이하 ‘사랑한다’)는 입대 전 현빈의 마지막 작품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결혼 5년 차 부부가 헤어지는 모습을 3시간 안에 담은 이 영화에서 현빈은 바람난 아내의 짐을 묵묵히 싸 주고 커피를 타 주며 세심하게 챙기는 남편 ‘그’를 연기했다. 그는 현빈이 최근 연기해 사랑받은 ‘까도남(까칠한 도시의 남자)’ 김주원(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주인공)과 180% 다른 인물이다. 또 그는 영화 ‘만추’에서 현빈이 보여준 겉은 바람둥이 속은 따뜻한 남자 훈과도 다르다. 김주원에서 훈, 그리고 ‘그’까지 현빈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세 가지 모습으로 대중과 만난다. 그의 출연작 ‘만추’와 ‘사랑한다’는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각 포럼 부문과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그는 많은 일정을 한꺼번에 소화하고 내달 7일 해병대에 입대한다. ‘사랑한다’의 여주인공 임수정은 극 중 현빈의 아내 ‘그녀’를 연기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무미건조하다.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 미안한 감정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여자로 보인다. 그와 그녀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 영화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윤기 감독은 그들의 과거나 문제점을 들춰내지 않는다. 상영 시간 105분 동안 두 사람의 모습을 지루할 정도로 그저 바라볼 뿐, 어떤 장치나 영화적인 효과를 첨가하지 않았다. 영화 ‘사랑한다’의 기자간담회가 베를린행을 하루 앞둔 2월 14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렸다. 이윤기 감독, 임수정, 현빈과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봤다. -영화를 본 소감은? 이윤기 감독(이하 이) “이 영화는 나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좋은 이야기가 나쁜 이야기보다 많으면 좋겠다.” 임수정(이하 임) “현장에서 촬영할 때가 생각나더라. 재미있게 봤다고 하면 큰일 날까?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서는 하기 어려운 시도를 많이 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렵지만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은 정보를 먼저 듣고 봐야 이해가 될 것이다.” 현빈(이하 현) “제작사 대표를 졸라 영화를 조그마한 화면으로 본 적은 있지만 스크린으로는 처음 본다. 작은 화면보다 큰 화면에서 볼 때가 더 자세하게 들어오더라. 볼거리가 많거나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심심할 수도 있다. 그냥 누구에게나 오는 이별이라는 감정을 따라가면서 본다면 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별하는 중 하루 세 시간을 담은 영화인데, 관객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 “그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느낌이 아주 가깝게 와 닿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주인공의 마음 상태나 주변의 공기를 따라가면서 봤으면 한다.” -새로운 시도가 담긴 영화다. 어떤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평소 이윤기 감독님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볼 정도로 팬이었고, 꼭 한번 호흡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잡았다. 저예산이어서 만드는 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모두와 한마음으로 즐겁게 촬영했다. 다른 영화에서는 해볼 수 없는 예술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정말 하고 싶던 것들을 여지없이 한 것 같다.”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현 “‘그’는 절제를 많이 해야 하는 캐릭터여서 연기하면서 답답할 때도 있고,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안의 감정을 많이 표현 안 하면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또한 임수정 씨에게 ‘그녀’에 대한 감정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커피를 만드는 장면이 몇 군데 있는데, 롱 테이크로 하다 보니 걱정이 됐다. 이 장면을 위해 집에서 주전자에 물을 넣고 따르는 연습을 여러 번 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작이다. 기대하는 성과가 있다면? 이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에게 내 영화를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 대해 내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수상은 신경 안 쓴다. 겸손이 아니라,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솔직히 부담되기 때문이다.” 임 “아시아 영화 중 우리 영화가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나가게 돼 너무 기분이 좋다. 수상하면 좋겠지만 그건 운인 것 같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워낙 세계 각국의 좋은 영화가 모이는 곳이다 보니 그들에게 한국 대표로 영화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베를린은 개인적으로 두 번째 가는 거라 설렌다. 공식 일정이 많긴 하지만 영화제를 더 많이 즐기고 분위기를 느끼고 오고 싶다.” 현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뜻 깊은 자리다. 두 작품을 가져가게 된 것도 기쁘다. 연기 인생의 1막을 끝내는 시점에서 좋은 것을 보고 느낄 자리가 찾아온 일은 내게 큰 행운이다. 바쁜 일정이지만 최대한 즐기고 올 수 있도록 하겠다. 수상은 하늘이 알아서 해줄 거다.” -오늘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 배우로서 인생 1막을 끝내는 마지막 공식 행사다. 소감이 궁금하다. 현 “내가 출연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좋은 의도로 만든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어 좋다. 많은 박수와 응원 속에서 (군대에) 가게 돼 행복하다. 사랑을 받은 만큼 충분한 대가를 치르겠다.” -촬영 과정에서 실제 모습이 나온 부분은 어딘가? 임 “연기할 때 꾸밈없이 하다 보니 실제와 비슷하다. 특히 스크린을 통해 목 뒤를 긁적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느꼈다. 영화 내내 한숨을 많이 쉬어서 편집 감독님이 한숨을 빼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 현 “헤어스타일이 실제 내 모습 그대로다(웃음).” -극 중 스파게티를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정성스럽게 요리를 대접해 본 적이 있나? 임 “창피하지만 30대인데도 요리를 잘 못한다. 배울 의향은 있다. 스파게티는 현장에서 만들 줄 아는 분이 와서 가르쳐줬다. 프라이팬을 돌리는 게 어렵더라. 이번 경험으로 엄마에게 죄송하고 고맙기도 하다. 요리를 잘하게 되면 가족에게 먼저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현빈 씨는 칼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요리를 잘하더라.” 현 “칼 좀 잡아봤다(웃음). 혼자 산 기간이 길어서 그렇다. 요리를 잘하진 않지만 요리책도 사서 똑같이 따라 해 보고 몇 번 해봤기 때문에 흉내를 낸 것뿐이다. 부모님에게 볶음밥이나 찹 스테이크 등을 만들어 대접해본 적은 있다. 음식만 드리고 나왔기 때문에 맛은 잘 모르겠다.” -영화 속 날씨가 궁금하다. 영화 내내 비가 오다가 맑게 개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 이유는 뭔가? 이 “설정부터 핑계를 잡을 수 있는 게 날씨였다. 비는 남자의 마음뿐 아니라 그녀를 보내야 하는 마음이면서 그녀의 마음이기도 하다. 누가 더 폭풍 속에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 환하게 갠 날은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를 보여준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그녀가 떠난 자리다. 나름의 영화적인 장치다.” -임수정은 어떤 배우인가? 현 “임수정 씨와 함께 하면서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자동차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나도 말이 없는 편인데 수정 씨는 나보다 더 말을 안 할 때도 있다. 날이 지나고 감정에 빠질수록 표현력은 작지만 폭발력은 큰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다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또 작업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