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문화예술AG 기획팀장 2007년경 미술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당시 모 대형 갤러리에 근무하던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갤러리에서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단순히 전시를 기획하는 데서만 그치지는 않는다. 특히나 규모가 큰 화랑들의 경우는 다양한 형태의 마케팅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과 관련된 미팅이나 개인 컬렉터들과의 접촉도 빈번하게 이뤄지게 된다. 어느 날 모 외국계 기업체 분과 미팅을 했을 때 일이다. 기획안을 기초로 미팅을 하고 그날의 미팅을 마무리하면서 당시 갤러리에서 열리던 전시를 보면서 간략하게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다. 그 분은 사뭇 진지하게 경청하시면서 설명을 들어 주었다. 설명이 다 끝나고 나서 갤러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일 때문에 왔지만 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올 때 무슨 옷을 입고 와야 하나요?” 그 분은 부끄러운 듯 내게 질문했다.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자면, 미술 전시라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화 보러 갈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면서 왜 미술전시회 보러 갈 때는 정장 차려 입고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지… 이렇게 말해보자. 동네 골목 시장을 나갈 때, 주눅 들게 하는 요소들이 있을까? 혹은 새로 생긴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고 할 때 장소가 주는 위화감이 있을까? 자주 가보지 않은 장소에 가면 누구나가 약간의 망설임과 약간의 긴장감은 가질 수 있다. 그런 것에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해결책은 ‘자주 가보고 즐기면 된다’는 것이다. 혹시 미술 전시를 보고 즐기고 싶으나 망설여진다면 일단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선은 많이 가보고, 눈으로 봐야 한다. 방학 시즌에 오픈되는 대형 전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청담동, 사간동, 인사동, 평창동을 봄 소풍 가듯이 가보자. 가서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전시장의 작품들 앞에서 그 작품을 분석하고 알고 배우려고 하지 말자. 뭘 그렸는지, 뭘 만들어 놓은 건지 도통 알 수도 없는 작품 앞에서 옆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참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자. 그 사람이 그 작품에서 무엇을 봤고 어떤 깨달음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나 역시 그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지만 그 사람은 록큰롤을 좋아할 수 있는 거고, 팝을 좋아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술 작품이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이 내게는 아닐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정답을 구하려 드는 순간 미술은 어렵다. 작품 분석은 이미 이 계통에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하고 있다. 단지 주의해야 할 것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너무 가까이서 보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 작품은 근거리에서도, 원거리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전시를 보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무언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 물음은 작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미술 사조에 대한 것일 수 있고 혹은 재료에 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 보자. 단행본이 될 수도 있고, 미술 잡지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전문 논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난 뒤 다시 전시를 보자. 그러면 아마 이전에 봤던 작품들이 다시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 눈앞에 놓인 작품을 모두 이해하게 됐다는 말이 아니다. 이전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이 가능해진 것이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무슨 전시이고 어떤 작가이고 왜 이런 작품을 하는지를 꼼꼼하게 조사해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할 때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어느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받았으며, 주연 배우는 어떤 영화들을 찍었으며 주된 촬영 기법은 무엇인지 따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관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가라고 말하지 않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미술에 불친절한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어. 정답이 없는 게 미술이므로 많이 보면서 스스로 느끼면 그만. 미술이 어려운 것이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우선은 많이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길 바란다. 미술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많은 위안들이 있다. 음악이 안겨 주는 감성의 위안과는 다른 형태의 코드가 있다. 어느 작품을 보고 자신이 느낀 감성에 우물쭈물 할 필요 없다. 미술에 정답은 없다. 당신이 느낀 그 감정이 당신에겐 정답이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 탕탕탕, 이 그림은 000이 정답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정답은 미술에 없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보고 가슴 속 나의 치부에서 오는 나눔의 위안을 가질 수도 있고, 해괴망측한 색이며 형태를 보고 얼굴을 찡그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고상하고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 전시는 좋은 전시입니다, 저 그림은 별로입니다”라는 말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의 판단력을 키우길 바란다. 요즘 필자는 갤러리 내부 전시가 아니라 외부의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미술이라는 장르가 불친절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관람자로서의 눈을 키우고 성장시켜 가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몫이다. 자, 무거운 겨울 외투가 조금은 답답해지는 날씨가 되었다. 주말, 혹은 주중 미술 전시장으로 가볍게 발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