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데 어떻게 보내주나요? 제가 선이었다면 택도 없죠.”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에서 백수 ‘캣츠비’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쏟는 여주인공 ‘선’을 연기 중인 유하나(31)는 캣츠비가 선을 버리고 과거의 연인 ‘페르수’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린 듯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위대한 캣츠비’는 강도하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지난해 대학로에 이어 3월 4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팝아트홀로 장소를 옮겨 공연 중이다. 현재 안데니, 정민, 심은진, 유하나, 이승은, 전재홍, 최대철, 김나래, 김경화, 박기원, 이현주, 이상민, 오희영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순진하고 소심한 백수지만 사랑 앞에서는 순정파인 캣츠비가 과거의 여자 페르수와 현재의 여자 선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페르수를 선택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선은 깜찍하고 명랑하지만 실연의 상처를 입은 캣츠비를 보듬어주고 캣츠비의 선택을 존중하는 인물이다. 상처받아도 혼자 감내하는 모습 때문에 많은 관객의 동정을 사는 역할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유하나는 털털하고 ‘남자처럼’ 넓은 배포를 가진 배우다. 웬만한 일로는 끄떡하지 않을 쿨한 성격이란 사실을 그녀와 대면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웃음소리가 매우 호탕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솔직하게 다가왔다.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나요? “원래는 가수가 꿈이었어요. 열여섯 살 때부터 밴드로 활동하면서 공연도 하고, 기획사에도 들어가 오랫동안 가수 준비를 했어요. 제 음반을 내진 못했지만, 다른 가수의 노래에 피처링도 많이 했죠.” -뮤지컬은 어떻게 하게 됐죠? “음반 준비 때문에 대학(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 수업에 충실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절 부르시더라고요. 출석 때문에 그러시나 싶어서 찾아갔는데, ‘뮤지컬’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고 덜컥 붙었어요. ‘파우스트’란 작품이었죠.” -선 역할에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 중인 가수 심은진과 친하다면서요? “대학(명지전문대학) 때부터 친했어요. 당시 저도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시점이라 은진과도 이야기가 잘 통했어요.” -심은진과 라이벌로 경쟁하는데, 어떤가요? “그 친구와 저는 색깔이 많이 달라요. 그래서 라이벌이라기보다 서로 좋은 모습을 보려고 하죠. 이 작품은 은진이가 먼저라서 오히려 은진에게 좋은 소스를 얻었죠.” -가수 일은 포기했어요? “꿈을 버린 건 아니에요. ‘웨잇포유’(콘서트 형식 뮤지컬)에 출연한 이유이기도 해요. 당시 제가 맡은 역할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저 또한 하고 싶은 음악은 있지만 하고 싶은 방향으로 잘 안 풀렸어요. 흑인음악을 좋아하는데 댄스 가수를 하라고 하니(웃음).” -뮤지컬 ‘그리스’에서 샌디 역을 오래했네요? “무려 3년 동안 했어요. 샌디 역할은 제가 제일 오래 했을 거예요. 가장 늙은 샌디이기도 하죠. 헤헤.” -매번 기분이 다른가요? “배우가 바뀌고 특히 상대 배우인 대니가 바뀔 때마다 달라져요. 이번에도 세 명의 대니와 연기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웃음).” -성격이 활달한 것 같아요. “원래는 내성적이었는데 공연하면서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성격이 바뀌었어요. ‘그리스’를 하면서 더 활달해진 것 같아요.” -공주 같은 깜찍한 외모와 다르게 털털한 성격인데, 얌전하고 내숭떠는 샌디를 연기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당연히 ‘리죠’ 역을 맡을 줄 알았는데, ‘샌디’ 역을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Summer Night(뮤지컬 ‘그리스’의 메인 테마곡)’을 연습할 때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애들이 놀리곤 했어요.” -‘위대한 캣츠비’의 선도 샌디와 비슷한 캐릭터 같은데. “샌디와 선을 하기 전에는 비극을 더 많이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밝고 명랑하고 건강하고 예쁜 역할을 하게 되더라고요. 역할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네요.” -강도하 작가의 웹툰은 봤나요? “이 공연에 들어오기 전에 모조리 봤어요. 스토리 전개는 뮤지컬과 거의 같아요. 만화에서 글로 표현된 독백이 뮤지컬에서는 노래로 표현됐다는 점이 다르죠.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뮤지컬의 짧은 상연 시간에 만화의 이야기를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만화를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뮤지컬이) 아쉽긴 하지만, 노래의 힘이 있다고 믿고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르가 워낙 다르니까 다르다고 봐주세요.” -내용이 이해가 안 되던데, 만일 자신이 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실제론 택도 없죠(웃음). 하지만 제가 분석해서 연기하는 선은 캣츠비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여자에게) 보내주는 인물이에요. 원작을 보신 분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뮤지컬에선 각자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내용에 의문을 가질 수 있긴 해요. 원작에선 캣츠비가 선을 만나면서 페르수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에 선이 굉장히 불안해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뮤지컬은 시간이 짧다 보니 그런 장면이 많이 생략됐고, 극장이 크다 보니 배우의 표정과 호흡에서 전달이 덜 된 점도 있어요. ‘재연 드라마 같다’ ‘사랑과 전쟁 찍냐’ ‘막장이다’라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뭐 요즘 현실이 그렇지 않나요?” -선은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여인인데, 하나 씨는 어때요? “저도 그랬어요. 어떤 여자든 사랑에 빠지면 그러지 않나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죠. 저도 풍요롭고 여유롭고 건강할 때는 남에게 더 베풀게 되더라고요.” -캣츠비는 마음은 순수하지만 우유부단한 남자예요. 그런 남자 좋아해요? “하지만 캣츠비가 끝까지 우유부단하진 않아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고 행동하다 어느 순간 능동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친구의 아이까지 가진 여자를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위대하게도 느껴져요. 그런 모습이 극에서 좀 더 표현이 됐으면 하지만.” -최근 명랑한 캐릭터를 해 왔기에 역할에 한계를 느끼진 않나요? “너무 신기한 게, 밝은 작품 사이에 묵직한 연극을 꼭 했어요. 제 성격을 아는 분들은 ‘네가 샌디를 어떻게 하냐’고 하세요(웃음).”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습니까? “전 고전에 관심이 많아요. 그 중 ‘맨오브라만차’의 ‘알돈자’를 연기하고 싶어요. 월드버전으로 나온 ‘햄릿’도 해보고 싶고요.” -최종적인 목표를 듣고 싶습니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나 배우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생활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저를 봐주는 사람은 물론 관객이지만, 인간적으로, 배우로서 훌륭한 배우는 관객에게도 전달이 좋은 배우가 되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인정을 받는 게 더 좋은 배우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초연 때 만난 이주원 선배처럼요. 남자 배우 중에는 이석준 선배처럼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