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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넘은 자유·애마부인의 발자국 따라

조희문 교수, 한국 성인영화 포스터 모은 ‘오늘은 바람피기 좋은 날’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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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6호 이선유⁄ 2011.04.04 14:25:40

“한국영화 역사를 흥분시켰던 기념비적인 간판들입니다. 어두운 극장 속 관객들의 눈길을 잡고 살 떨리는 흥분으로 온몸을 감싸게 만들었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은 열망과 열정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춘삼월 인사동 길을 거닐다 눈길을 한 번에 확 잡아끄는 한 포스터의 제목 ‘오늘은 바람피기 좋은 날’.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마음을 확 잡아당기는 전시회 제목이다. “도대체 어떤 전시이길래?”라는 궁금증과 함께 설레는 발걸음을 갤러리 더포(The4)로 옮겼다. 전시의 주인공은 인하대 조희문 교수. 그가 오랜 세월 수집해 온, 195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60년간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된 성인영화들의 광고포스터를 선보이는 전시회다. 한국 성인영화의 변천을 한 눈에 보며 시대적 흐름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자리이다. 올해 쉰넷인 조 교수가 장정 열 살 때부터 모아 온 영화 포스터는 무려 2만 여점. 그의 집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는 이 자료들에는 45년 세월 동안 조희문 교수가 품어온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에 전시된 포스터들은 그가 모은 영화 포스터 중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만을 모은 것이다. 성 관념이 자유롭지 못한 한국에서 성인영화는 그저 ‘에로’ 내지 ‘삼류’라는 인식 아래 늘 부정적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에로, 성인영화라 하면 대개 사람들은 가볍고 천박하다는 인식을 갖죠. 실제로 영화계에서 성인영화에 대한 평은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밌고 호기심이 많은 게 바로 이들 영화입니다. 성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가깝고 절박한 부분임에도 사람들은 늘 드러내길 꺼려합니다. 흥행성을 놓고 봐도 성인-에로 영화는 영화계에 큰 역할을 하는데도, 이에 대한 시선과 대우는 그렇지가 않죠.” 기교적으로 잘 만들고 교훈만을 담았다고 해서 남는 영화,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에 부응해 진실된 삶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 공감과 교감을 이루고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본다면, 성인영화가 그저 “욕먹어 마땅할” 작품만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에로라는 요소에 주목해 우리 성인영화를 조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더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에로 영화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대별로 분류된 이 영화들 속에는 당시의 우리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50년대 : 금단의 시대와 ‘자유부인’의 위험한 도전

한국의 경직된 성윤리는 6.25전쟁 이후 밀물처럼 밀려든 ‘양풍’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유부인’(1956)은 그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랜 시간의 금기가 영화를 통해 한발씩 변화해 나가기 시작한 결과다. 6.25전쟁은 민족의 비극이었지만, 시대의 불안과 가난 속에서 피어난 '자유부인'의 아슬아슬한 외출은 우리 사회가 달라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상상이나 했겠는가? 바람피우는 교수 부인을. 한 때는 사회적 퇴폐를 조장한다며 큰 논쟁과 파문을 일으켰던 영화지만, 이 영화는 한국 사회 이념의 변화와 더불어 성인영화의 첫 장을 연 작품이 됐다. 70년대 : ‘영자’와 ‘꽃순이’들의 합창

1960년대 심한 규제와 검열로 잠시 주춤했던 한국 성인영화는 70년대에 들어서 ‘분출’의 시대를 맞았다. ‘잘 살아보세’라며 노래하던 70년대. 정말 잘 살아보고 싶어 꿈을 좇아 상경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어 끝내 밤거리로 나선 사창가의 ‘영자’, 그리고 강남 룸살롱 ‘꽃순이’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산업화 시대의 희망과 절망, 그 고달프고 암울한 삶의 풍경을 70년대 성인영화는 그려냈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나는 77번 아가씨’는 꿈을 좇아 도시로 모여든 그 시절의 빛과 그림자를 풍경처럼 비춰냈다. 80년대 : ‘애마부인’의 뜨거운 자유선언

1970년대의 갈등이 저물 즈음 ‘애마부인’(1982)이 새 시대를 연다. 7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염세주의, 비관, 우울이었다면 80년대는 생활의 윤택함과 호사가 도래한다. 욕망과 관능을 가두는 울타리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애마부인의 자유선언은 금기와 제약을 벗어나 정치적 자유를 갈구하는 시대의 풍경과 겹친다. 성은 일방적으로 억압, 통제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의 대상으로 변한다. 50년대 ‘자유부인’의 간통에 죄의식이 있었다면, 80년대 애마부인은 자신의 권리-주장 앞에 당당하다. 이는 우리사회의 민주화, 자유화를 간접적으로 비춰내는 것이기도 했다. 80년대 성인영화는 숨죽이며 눈물 흘리던 ‘억울한 세상’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주체선언이었다. 90년대 이후 : 사회적 규제로 남아 있는 금기와의 투쟁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금기와 제한이 사라진 성은 경계를 뛰어 넘는다. 성인영화는 성적 표현을 넘어서 사회적 규제로 남아 있는 금기를 공격한다. 영화의 표현자유를 빌려 제도에 저항하는 문화적 투쟁을 벌인다. 동성, 양성, 노년, 장애인의 성과 같은 ‘소수의 성’이 소재로 다뤄지며, '마이너의 영역'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지막 울타리라고 믿어졌던 부부, 가족의 의미는 오늘날의 성인영화에서 무참히 상실되며, 가족 붕괴의 참상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성인영화는 우리 삶 속에 너무나 가깝고 절실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려낸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영화’일 것이다. 성에 대한 호기심은 시대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갈구된다. 영화는 결국 그런 것들을 외면할 수 없다. 성인영화는 어쩌면 우리 삶 가운데 욕망을 해소하는 통로의 역할 같은 것이다. 한국영화 속의 성은 숨 막히는 관능과 욕망의 표현이면서, 그 시대의 사회와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물론 각 영화가 의도적으로 시대상을 반영하려 든 것은 아니지만, 성인영화가 에로라는 의식을 넘어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냈다는 점에는 회고할 만한 의미가 있다. “영화는 화석과 같아요. 영화 속에는 그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지요. 지나온 시대의 모습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아마 영화의 묘미가 아닐까요? ‘미성년자 관람불가’ 간판 속에 담긴 지난 시절의 뜨거웠던 기억과 향수를 이번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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