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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10년 파니 ‘지킬’이 보이네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이중인격 연기하는 ‘신인’ 김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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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6호 이우인⁄ 2011.04.04 14:32:59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주인공 지킬이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담아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부르자 관객은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이날 지킬 역을 맡은 배우 김준현(33)의 남성적인 카리스마에 관객은 압도된 듯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무대를 우러러보는 관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씨어터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김준현의 존재감은 컸다. 그는 이 무대에서 지난해 말부터 ‘지킬’의 새 얼굴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역한 뒤 지킬로 복귀한 뮤지컬 톱스타 조승우, 초연에서 무대를 압도한 류정한, ‘미친 가창력’의 소유자 홍광호에 비해 김준현의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신인 김준현의 공연을 본 관객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185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 성우 같이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노래 실력, 대학생(서울예대) 때부터 쌓아온 연기력 등 어느 하나 다른 지킬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김준현은 한국에서 무명에 가깝지만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뮤지컬 스타다. 그는 일본의 대표 극단 ‘사계’의 단원으로 5년이 넘게 ‘아이다(라다메스 역)’ ‘캣츠(럼텀터거 역)’ ‘에비타(체게바라 역)’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예수 역)’ 등 유명 라이선스 공연에서 주인공을 맡아 활약했다. 그의 이름을 국내에 처음 알린 작품은 지난해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잭더리퍼’로, 그는 유준상, 민영기와 앤더슨 역에 캐스팅됐다. 그는 국내에서 두 번째 작품인 ‘지킬앤하이드’로 정점을 찍었다. 국내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남성 뮤지컬 배우가 꿈꾸는 역할인 지킬이 됐다. 500대 1의 경쟁률 뚫고 ‘꿈의 무대’에 김준현은 지난해 2월 ‘지킬앤하이드’ 오디션에서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킬 역을 따냈다. 그리고 지킬로 무대에 선 지도 벌써 4개월이 됐다. “하고 싶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기대감이 큰 무대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부담이 없을 수 없지만. 조금 더 질이 높은 무대를 만들어 보답하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킬은 상연시간 2시간 40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때문에 어마어마한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이는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 경험이 많은 김준현에게도 무리라고 한다. 그동안 해온 공연 중에 ‘지킬앤하이드’가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공포심까지 느껴졌다. “감정선 자체가 두 가지 인물을 표현하다 보니 한 가지 인물을 표현하는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이 큽니다. 또 표현할 것들이 괴기스럽기도 하고요. 악의 인물을 표현하려다 보니 보통 인간의 표현 방식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됩니다. 노래도 너무 어렵고요. 특히 ‘대결’을 부를 때 정만 힘들어요. 두 가지 인물을 표현해야 하고 테크닉도 어렵지만, 똑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고 가사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가사를 틀려요. 외계어가 되곤 하죠. 프랭크 와일드혼(‘지킬앤하이드’ 작곡가)의 노래 자체가 똑같은 멜로디 안에서 조금씩 변형되기 때문에 부르기가 어려워요.” ‘지킬앤하이드’는 인간의 이중성을 그리며 극적인 효과를 주는 작품이다. 지킬이 ‘내면의 악마’ 하이드와 싸우는 장면 ‘대결(Confrontation)’은 이 뮤지컬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관객은 지킬 배우의 이중인격 연기에 빠져든다. 김준현은 자신의 이중성이 지킬에 묻어나온다며 유심히 살펴보라고 귀띔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으로 제어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킬은 약물 때문에 이중적인 면을 제어하지 못하는 거죠. 제가 ‘나이스 가이’라는 말을 몇 번 들었지만, 정말로 그렇진 않아요. 욱 하면 갈피를 못 잡거든요(웃음).”

지킬은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다가 비극으로 치닫는 인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런 면은 김준현이 배우 생활을 고집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제가 20대 때까지 어머니는 ‘아들이 벌어주는 돈 언제 받아보나’라는 말씀을 곧잘 하셨어요. 그때마다 저는 ‘아직 10년 안 됐잖아. 10년이 지나면 꼭 잘해줄게’라고 답했죠. 한 우물을 10년 동안 파면 물이 나온다는 속담을 믿었거든요. 이런 점이 지킬의 확고한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현실로 빠져나온 김준현은 진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대화가 그의 다양한 표정·손짓과 함께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인터뷰 시간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김준현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한 마디로 정말 매력적이다, 이 남자! -지킬의 헤어스타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요. “원래는 전체적으로 곱슬머리인데 끈으로 쫙 묶고 있다가 하이드로 변할 때 끈을 푸는 거죠. 얼굴은 하이드인데 까먹고 끈을 안 푸는 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 난감했어요(웃음).” -준현 씨는 엄마 같이 포근한 엠마, 그리고 연민을 일으키는 루시 중 어느 쪽에 더 끌리나요? “솔직히 두 역할 다 매력적이지만,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저 같으면 엠마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조승우, 류정한, 홍광호 지킬은 어떻게 다른가요? “(류)정한 형은 지킬의 외골수적인 면을 표현합니다. 형이 그랬는데, 형이 연기하는 지킬은 어느 지하방이나 밀실 같은 곳에서 혼자 연구를 하는, 혼자서 한 가지 일에 편집증을 가진, 집중하는 인물이래요. 형의 공연을 보면 보통 사람보다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말에도 알맹이가 더 있고, 힘도 더 있고요. (홍)광호는 청년의 순수하고 해맑고 부드러운 지킬의 이미지가 더 강해요. 엠마 배우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지킬이라고 하더군요. (조)승우의 지킬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입니다. 가슴 시리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지킬이랄까요?” -김준현의 지킬은 뭔가요? “배역에 자기 성격이 나오기 마련인데요, 제가 지킬을 연기하지만 제 몸속으로 지킬이 들어오는 것도 되거든요. 지킬이 내 몸에 들어오고 표현되기 때문에 저의 일부가 표현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확고하고 남성다운 지킬이 아닐까 싶어요. 저의 약한 부분들은 지킬이 무너졌을 때 표현되고요.” -극단 사계 출신으로 유명합니다. 일본에서 간판 배우로 날렸는데, 다 두고 한국으로 온 이유가 궁금하군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절친한 김우형, 김산호와 다르게 혼자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뭔가요? “예전에 극단 사계에서 서울예대 학생을 모아서 레슨도 하고 오디션을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그때 오디션에 붙어서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일본 생활에서 무얼 배웠나요? “책임감과 직업정신을 배웠어요.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많이 보도됐지만, 일본인들은 자신이 피폭될 걸 알면서도 자진해서 남고, 그런 그들의 직업정신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조 ‘김지킬’ 김우형의 ‘아이다’ 공연을 봤나요? 그가 연기한 ‘라다메스’는 일본에서 준현 씨가 오랫동안 맡았던 역할이죠? “일본과 한국의 ‘아이다’ 모두 대사는 똑같지만, 일본에서 살아나지 않았던 부분이 한국 공연에서는 재미있게 표현된 부분이 많고, 해석이 틀린 부분도 많아서 놀랐어요. 우형의 공연은 제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본에 가는 바람에 ‘아이다’가 처음인데요, 나이에 맞지 않는 무대 위 여유로움에 놀랐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장한 것 같아 형(김우형보다 3살 많다)으로서 엄청 뿌듯했어요. 제가 본 공연이 수요일 낮 시간대라 아줌마가 많았는데요, 아줌마들의 반응이 대단하더라고요. 그들과 같이 우형에게 정말 폭 빠져서 행복하게 봤습니다.” -‘아이다’ 여주인공인 옥주현과 정선아는 어떻던가요? “공연 전에 분장실에서 옥주현 씨를 처음 봤는데, 이미지가 참 가냘프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아이다’에서 보여준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면과 파워풀한 모습에도 놀랐고요. 그리고 정선아 씨한테도 깜짝 놀랐어요. 노래를 그렇게 갖고 노는 사람은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정말 저 사람은 프로다’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요? “‘레미제라블’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대학생 때 꿈은 벌써 이뤘어요. ‘아이다’와 ‘지킬앤하이드’를 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어릴 땐 ‘아이다’와 ‘지킬앤하이드’의 CD를 들으면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뤘으니까요. 그밖에도 하고 싶은 작품은 많지만, 말하면 끝이 없잖아요? 오늘에 충실하면 미래가 보이겠죠.” -궁극적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말씀해주세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진실한 배우, 관객을 감동시키는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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