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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회 교수의 SEXOLOGY]나라를 흔든 미모들

매희·달기부터 양귀비까지…그녀들의 뭐가 특이하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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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8호 박현준⁄ 2011.04.18 13:15:32

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 대한성학회 초대회장 중국 역사에는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뜻의 경국지색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대 왕조였던 하의 마지막 임금 걸은 일찍이 산동 지방의 한 제후인 유시를 정벌해 항복을 받고 많은 진상품을 갖고 돌아온다. 그중에는 매희라는 아리따운 여인도 있었는데, 그녀가 걸 왕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네가 나의 조국을 짓밟고 나의 가족들을 무참히 죽였거늘, 네 간이라도 꺼내어 씹고 싶거늘, 어디 두고 보자. 결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지도 않거늘, 매일 밤 네 앞에 알몸이 되어주는 것은 오로지 그 날을 위해서, 그 날을 위해서…) “마마, 천하를 호령하시는 마마께오서 어떻게 이렇게 초라한 궁에서 사십니까? 새로 훌륭한 궁전을 지으셔서 천하에 그 위엄을 보이시옵소서.” 이리하여 걸 임금은 더 웅장한 궁전을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역에 동원돼 채찍질 당하고 손발이 잘리고 코도 잘렸다. 그녀는 비단 째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며 수천 필의 비단을 궁에서 찢게 했고, 약 3천명의 남자 목을 베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매희의 미모와 뛰어난 방사 기법 때문이었다고 풀이한다. 시쳇말로 명기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 역사의 경국지색들에 빠진 왕들은 하나같이 정사를 내팽개친 채 이 여인들에게 몰두했는데 그 이유가 단지 미모뿐일까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주에게는 달기라는 악녀가 있었다. 달기의 방에는 음란한 그림들로 가득한 병풍이 있었다는데, 이는 동양 춘화의 최초 기록이기도 하다. 달기는 주왕을 부추겨 사람들에게 잔인한 형벌을 가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들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여 미끄러져서 타 죽게 하거나, 죄수들을 가둔 구덩이에 독사와 전갈을 집어넣어 그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또 달기는 주왕에게 자신의 심장병이 나으려면 비간이라는 충신의 심장을 먹어야 한다면서 그를 죽이기도 했다.

사자성어인 ‘주지육림’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설이 강하다. “마마, 이렇게 지루하게 술 따르며 돌아갈 게 뭐 있사옵니까? 술로 연못을 만들면 아무 때나 쉽게 떠 마실 수가 있지 않사옵니까?” 이리하여 술이 못을 이루고 나뭇가지에 고기가 걸리게 되었다. 매일 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들이 음악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달기는 주왕의 가슴에 안겨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고 한다. 결국 매희와 달기는 요즈음 식으로 쿠데타를 불러 나라도 망치고 자신들도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어 등장한 주나라 때는 포사라는 여인이 있었다. 유왕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기도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웃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왕은 그녀를 웃기려고 온갖 꾀를 생각하다가 외적의 침입도 없는데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모았다. 그녀가 불보기를 좋아했다는 설도 있다. 공연히 달려온 제후들을 보고 포사는 비로소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실제로 북쪽의 오랑캐인 융족이 쳐들어 왔을 때는 봉화를 보고도 아무도 오지 않아 왕은 죽음을 당하고 포사는 납치가 되는 동양판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주인공들이 된다. 하지만 제일 유명한 궁중 스캔들은 뭐니 뭐니 해도 현종과 양귀비의 얘기가 아닐까 한다. 구름 같은 머리 가락, 꽃다운 얼굴, 거기에 황금 비녀, 연꽃 휘장 속에서 지새운 따사로운 어느 봄밤, 그러나 봄은 밤이 너무 짧아 벌써 해가 높이 솟았구나. 허지만 이를 어쩌랴. 이제 황제는 조회에도 안 나오네. 백거이의 ‘장한가’ 중의 한 대목이다. 측천무후의 손자이기도 한 당 현종은 ‘개원의 치’를 이룩한 명군이었으나 오십이 넘어 씻지 못할 큰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의 서른 명 아들 중 18번째인 수왕과 6년을 같이 산 며느리인 양옥환을 자신의 여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우선 그녀를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켜 아들인 수왕에게서 빼내고, 다시 궁 안의 도교사원을 관리하게 하는 등의 치밀한 순서를 거쳤다. 양귀비의 나이 22세, 현종은 57세였는데, 이때부터 당나라는 서서히 끝자락을 향해 달린다. 양귀비의 세 오빠는 모두 높은 벼슬을 받았고, 세 명의 언니들은 국부인이라 불리었다. 사촌 오빠인 양소는 ‘국충’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라 국정을 전횡하였다. 양귀비가 동양 최고의 미인이었다고는 하나 비교적 짧은 팔 다리에 75킬로의 뚱뚱한 체구와 60센티가 넘는 길고 검은 머리를 가졌었다는 것 이외에 체형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면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현종이 정사도 내팽개친 채 사흘 낮밤을 침실에서 나올 줄 몰랐다는 사실을 들어 그녀가 틀림없이 특별한 방중술을 가졌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어 왔다. 유명한 양귀비의 몸매는 어땠을까? 비교적 짧은 팔다리에 몸무게도 75kg이나 나갔다지만, 당 현종은 그녀와 만나자마자 사흘 낮밤을… 그래서인지 요즈음 질 전벽의 방광과 요도가 만나는 부위 근처인 소위 지-스팟을 수술적으로 약간 도드라지게 하여 성교 중에 더 강한 자극을 받도록 시도하는 방식을 ‘양귀비 수술’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수술 방법은 여러 가지 있는데, 자가지방이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효과가 검증된 수술은 아니다. 변방을 지키던 절도사로 현종의 양자를 자처하던 안록산은 어느 날 궁에서 양귀비를 보고 열네 살이나 연하인 그녀를 처음엔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그 호칭은 얼마 뒤 ‘여보’로 바뀐다. 양귀비도 그의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좋아했다고 하며, 가끔 화청지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주곤 했는데, 어느 날 체중 2백Kg의 안록산이 그녀를 안고 몸으로 비비다가 유방에 상처를 냈고 양귀비는 이를 감추기 위하여 붉은 비단으로 젖가슴을 감추었는데, 이것이 ‘브래지어’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결국 이들의 애정행각이 '안록산의 난'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종은 수도 장안을 버리고 지금의 쓰촨성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양귀비, 양국충 등도 동행했다. 하지만 도중에 병사들이 양국충을 살해하고 왕에게 ‘난리의 근본’인 양귀비를 죽일 것을 요구했다. 현종은 ‘귀비는 궁에만 있었고, 국충의 죄와는 관계가 없다’고 감쌌지만, 이미 레임덕에 허덕이던 터라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양귀비를 나무에 목매어 자결하도록 내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 나이 38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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