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 딸기에 얼굴을 콕 박은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캔버스에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물감 덩어리들과, 그 속에 파묻혀 눈동자만 드러낸 사람 형태의 인형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사람이 지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비밀스럽게 풀어내는 작가 김명화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초이갤러리에서 4월 6~29일 개인전을 가진다. 딸기를 주로 그리는 이른바 ‘딸기 작가’로 알려져 있는 김명화는 수많은 감정 중 각박한 사회 속에서 차별 받거나 무시당하는 등 좌절을 겪은 여성들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수치심’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풀어 왔다. 그래서인지 ‘딸기’라면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딸기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녀의 작품 속 딸기는 여성들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가려주는 하나의 매개체다. 그래서 밝고 유쾌하기보다는 우울하고 때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상처받기 싫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감정의 폭을 보여준다. 빨간 딸기는 마치 수줍어서 붉어진 얼굴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는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어느 날 실수로 일을 그르친 적이 있어요.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는 작아지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죠. 그 일이 있고 난 뒤 당황하면 얼굴부터 빨개지면서 들키고 싶지 않은 제 감정을 쉽게 들키게 됐어요. 이 점이 감정이라는 소재를 작품 속에 표현하게 된 계기가 됐죠. 수줍은 감정이 딸기의 색과도 잘 맞아 떨어졌어요.” 주로 딸기를 통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그려온 작가이지만 작업의 범위를 이에만 한정짓는 것은 아니다. 근작에 등장한 물감 덩어리 시리즈는 내면에 감춰둔 감정을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딸기 시리즈와 달리 보다 자유롭게, 대범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물감 덩어리 작업은 여성이 느끼는 감정에 한정돼 있던 딸기 시리즈와 달리 보편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여러 감정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자 시작했어요. ‘부분적 소녀’의 경우 물감 안에 숨어 있는 인형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힌트를 주고자 인형의 눈을 밖으로 노출시켰어요. 제 기억을 바탕으로 시작해 작업에 다양한 감정을 담으려고 해요.” 감정이라는 단어는 하나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제각기 다르다. 작가는 이런 감정의 변화에 주목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한다. “감정이란 온 몸에 퍼져나가는 바이러스와도 같아요. 감정이 어떻게 시작되고, 퍼지고, 변해 가는지 그 과정을 그리는 것이 저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새롭게 시작한 물감 시리즈처럼 그리고자 하는 감정의 범위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감정을 자유롭게 그려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