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의학의 길에 들어서서 전공의 시절까지 합하면 벌써 36년째가 된다. 조선 시대라면 벼슬에서 물러난다는 파과(64세)에 이른 나이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전공의 시절. 그 시절만 해도 크게 뒤처져 있던 소아 심장학을 배우려고 일본, 미국 등으로 객지 생활을 하며 숨차게 지냈던 전임강사, 조교수 시절.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거들먹거리고 환자들에게 퉁명하고 불친절하게 대했던 시절 등….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면서 연세의대 교수라는 자긍심을 갖고 달려 왔으나 세월이 갈수록 의학에 대해, 아니 내가 종사하는 분야에 대해 확신을 잃어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같은 병이라도 환자에 따라 치료 과정 중의 반응, 예후 등이 모두 달랐다. 마치 모든 사람의 손금이 다르듯이…. 필자가 전공의 시절 한 교수님이 아침에 회진을 돌다가 한 환자를 보시고는 “이 환자 잘 지켜봐라. 어째 예후가 안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조사 결과에 별 문제가 없는데, 즉 혈액 검사 결과도 좋았고 진찰 소견에도 이상한 것이 없는데 뭘 잘못 아셨나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래도 인턴에게는 ‘잘 지켜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날 밤 그 환자는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필자의 부친도 의사였는데 언젠가 환자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오랜 경험에 의한 육감일 것이다. 많은 환자를 대하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감으로 환자의 상태를 느끼게 된다. 같은 심장병 환자지만 때로는 뭔가 불안한 요소가 보이는 환자가 필자에게도 나타난다. 의학은 수학처럼 하나 더하기 하나가 반드시 둘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경험이 더욱 중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요즈음 건강진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암을 조기에 발견해 많은 사람의 수명이 연장됐고, 증세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도 건강진단을 통해 알아냄으로써 조기 치료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건강진단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꼭 안심할 것도 아니다. “건강” 판정을 받은 사람이 몇 개월 뒤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건강진단이 알아내는 것은 현대 의학의 한계 안에서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설사 중병이 있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현재 질병의 증거가 없다(No evidence of disease)”는 팩트를 “무병의 증거를 발견했다(Evidence of no disease)”로 의사가 잘못 말해서도 안 되고, 이렇게 잘못 알아들어도 곤란하다. 자동차 같은 기계도 정기점검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이상이 생기기도 하는데 훨씬 더 복잡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인간의 몸에 어찌 ‘무병의 증거’가 있겠는가. 현대의학 발전했다지만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 의학 교과서가 ‘~이다’라고 단정 않고 ‘~할 수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 알아야 현대의학이 많은 발전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그리고 새로운 질병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진행 과정, 증세, 결과가 다 다르다. 의학 교과서에서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질환을 설명할 때 ‘~이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이럴 수가 있다’고 하는 데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100%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며, 이 확신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을 그 분께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분야가 의학이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앞에서’ 보는 병원과, 의사가 ‘뒤에서’ 보는 병원은 많이 다르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드라마가 펼쳐지는 병원의 희로애락 뒤안길을 그래서 이번 주부터 CNB저널에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