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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음악에세이]‘21세기 카라얀’ 꿈꾸는 사이먼 래틀

일부 평론가의 악평 불구하고 베를린필 장기집권 바탕 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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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2호 박현준⁄ 2011.05.16 15:22:37

이종구 박사 (이종구심장크리닉 원장) 전설적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BPO)의 지휘자가 된 래틀(Simon Rattle)은 영국의 지방도시인 리버풀 출신으로, 당시 무명이던 버밍햄 시립 오케스트라(CBSO)를 영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데 성공한 후 2002년에는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베를린 필의 지휘자가 되면서 과연 21세기의 카라얀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래틀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그의 음악 생활은 재즈밴드에서 시작되었다. 타악기를 연주하다 1974년에는 번머스(Boumemouth)의 보조 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시립회관에서 연주하던 버밍햄 시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그는 이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래틀은 리버풀 대학을 나온 뒤 1971년부터 런던의 왕립음악학원(Royal Academy of Music)에서 공부했다. 1974년 그가 졸업하던 해에 영국의 존 플레이어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한 매니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래틀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도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버밍햄에서 음악감독으로서 일하면서 래틀은 20세기 음악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이를 바탕으로 ‘집을 떠나다-20세기의 관현악 음악’을 녹음했는데 현재 7편의 DVD로 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1년에 ‘계몽시대의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면서 글라인드본(Glyndebourne) 오페라를 지휘하고 그들과 녹음도 하였다.

또한 래틀은 버밍햄의 새로운 콘서트홀을 세우는 데도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에 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CBE)를 받고 1994년에는 영국 최고의 남성 국가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남작(Knight Bachelor)을 받아 영국 시민으로서는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사임하자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래틀이 차기 지휘자로 경선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일부 단원들은 바렌보임을 지지했지만 래틀이 승리하였고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음악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 당시 바렌보임이 더 유명하고 더 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베를린 필은 래틀이라는 젊은 지휘자의 장래가 더 유망하며, 레퍼토리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다고 평가하여 그를 선택한 것이다. 베를린 필(BPO)은 항상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독일 음악의 전통을 사수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사실을 자부하고 있었는데 20세기 음악과 미국, 프랑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영국인을 자신들의 수장으로 선택한 것은 과감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래틀과 베를린 필의 허니문이 끝나면서 독일의 평론가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으며, 한두 사람은 급기야 독설을 뱉기도 했다. 독일의 유명 일간지 ‘Die Welt(디벨트)’의 맨프레드 브러그(Manfred Brug)는 “관통력이 없는 텅 빈 소리”라 비평하였으며 래틀이 너무 다양한 음악을 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다는 불만도 털어놓았다. 또 다른 평론가는 래틀의 얼굴 표정이 마치 굳어진 환희의 마스크 같으며 베를린 필의 단원들은 남편의 말을 잘 듣는 가정부와 같다면서 독설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단원들은 래틀을 지지했으며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한 명인 오스트리아의 브렌델(Alfred Brendel)도 래틀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힘입어 2007년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래틀이 녹음한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은 최고의 상을 받기도 했다. 래틀의 처음 계약은 2010년까지였지만 2008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래틀의 계약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으며 래틀은 카라얀이 그러했듯 20년 이상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7년 UN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래틀이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면서 대규모로 청소년을 지도하는 등 좋은 음악을 나누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 그들을 유니세프(UNICEF) 친선 대사로 임명했다.

또한 래틀의 래퍼토리가 너무 다양해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독일만의 음색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음악감독이란 오케스트라의 전통과 음색에 맞춰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선을 만드는 사람이라 주장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래틀의 ‘바다(La Mer)’ 녹음은 전임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의 녹음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으며 홀스트의 ‘행성’도 녹음했다. 더불어 그는 1983년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 녹음을 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갖추었으며, 젊은 시절에 재즈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 사람이라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기도 하다. 2007년 4월 BBC 음악 잡지는 래틀의 ‘독일 진혼곡’을 그 당시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BBC가 영국인 래틀을 호평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의 음악을 가볍고 밝은 상큼한 샤베트에 비교한다면 독일 음악은 진하고 어두운 초콜릿 아이스크림과도 같다. 래틀은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잘 조화시켜 요리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래틀은 미국인 소프라노인 엘리제 로스(Elise Ross)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한 명은 클라리넷 연주자이다. 이들 부부는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1995년에 이혼했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은 보스턴 출신의 작가였고 현재 래틀은 체코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Magdalena Kozena)와 함께 살며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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