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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23 上]그 여름, 홀로 맞은 절세미모 잊을 수 없어

새벽 어스름에 인수봉의 맨 얼굴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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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3호 박현준⁄ 2011.05.23 16:12:21

북한산(北漢山)이란 이름이 이제는 국립공원의 정식명칭으로 정해진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1930년대까지만 하여도 삼각산(三角山)이란 이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북한산이란 이름이 일본인들이 만든 창지개명/創地改名인지는 여러 전문가가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과연 왜 이 산이 오랜 동안 삼각산으로 불렸을까? 그 답은 북한산의 동쪽 우이동 방향에서 바라보아야 알 수가 있다. 주봉(主峰) 백운대(白雲臺)를 사이에 두고 좌 인수(仁壽) 우 만경(萬景)이 어깨를 곁고 있는 품이 마치 삼형제가 하늘을 받치고 자리 잡은 듯하다. 우이동 종점에서 내려 삼각을 바라보며 우이령 방향으로 향한다. 그린파크 앞을 지난다.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우이동 그린파크를 기억하고 있다. 그 앞에서 만나 산행이며 하이킹을 가던 만남의 장소였으니까. 그런데 이것이 웬 일인가?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하늘을 가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삼각산 산신령이 계시다면 당신의 발밑에서 일어나는 일에 잠 못 이루실 것 같구나.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길에서 좌측 우이령길로 향한다. 1968년 124군 부대 공비침투와 관련하여 41년 간 닫혀 있다가 열린 길이다. 이제는 목회자가 된 생존 공비 김신조 씨가 때로는 함께 걸으며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길이기도 하다. 강북구에서는 이 길이 막혀 있을 때 ‘우이령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일 년에 한 번 일반인들도 우이령길을 달릴 수 있었다. 필자도 수 년 전 이 길이 닫혀 있을 때 이 고개를 뛰며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신청하면 누구나 넘을 수 있는 친근한 고갯길이다. 십여 분 걸어 오크밸리라는 카페 앞에서 좌향좌한다. 길표지판에 영봉 2.4km, 육모정 1.2km라고 쓰여 있다. 잠시 오르면 길가 우측으로 절이 하나 보인다. 용덕사(龍德寺)다. 흰둥이 상좌가 낯선 이들을 반기는지 아니면 겁주려는지 멍멍 짖어대더니 금세 꼬리를 내린다. 절터가 옹색한 것 말고는 불법을 열심히 닦는 절 느낌이 난다. 조계종 소속인데 1910년에 창건한 절이라 한다. 법당 아래 우뚝 선 바위에 마애약사여래불(磨崖藥師如來佛) 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근세에 조성한 마애불이라 예술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기운(氣運)은 좋게 느껴진다. 이곳이 영봉(靈峰) 동쪽에 자리 잡은 도량(道場) 아니던가. 계단을 몇 칸 오르니 작은 바위 아래 굴에 산신각을 조성하였다. 산길에 든 자, 그런 상(像)도 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인사드린다. 잠시 산길을 올라 육모정고개에 닿는다. 여기에서 북쪽 능선길이 상장능선이다. 요사이는 휴식년에 들어 자연을 보호하고 있으니 궁금하더라도 풀릴 때까지 참는 것도 다 공부 아니겠는가. 이 길이 도봉산 주능선, 우이능선을 지나 우이령 고갯마루를 건너 상장봉에 오르고 이어서 솔고개, 노고산으로 이어 가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의 핵심구간이다.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선생(1712~1781)은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인데, 이 땅의 산줄기를 산경표(山經表)라는 산의 족보로 정리하면서 1대간(大幹), 1정간(正幹), 9정맥(正脈)으로 구분하였다. 이제는 산길을 걷는 이라면 백두대간, 한북정맥, 낙동정맥… 이렇게 산줄기를 구분한다. 돌아보면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한 이래 고등학교 때까지 태백산맥, 차령산맥, 노령산맥… 이렇게 일본인 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3년 한국의 지질구조를 분석한 산맥이라는 개념을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배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쓰리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擇里志)를 비롯하여 우리 조상들의 산(山)이라는 개념은 물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길을 나누는 마루가 되는데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으니, 그 속에서 살 만한 곳을 찾아서 사는(卜居論) 것이 산을 보는 관점이었다. 산경(山經)이라는 말의 어감에서 느끼듯이 삶과 떨어져서 산을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산과 산 사이 그 품에서 나고, 그 곳에서 자식 낳아 기르고, 그 사이 물길로, 산길로, 고갯길로 섞이며 살았던 것이다. 다행히 1913년 최남선 선생의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를 찾아 영인본을 발행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산족보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점은 정말로 다행이다. 이제 육모정고개를 지나면서 여암 선생께나, 육당 선생께나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새겨 본다. 이제부터 영봉(靈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거리는 1.2km에 불과하지만 트래킹코스는 아니고 산행길이다. 가을에 이 길을 지나면 북한산 길 중 단풍이 아름다운 길임을 알 수 있다.

북한산 산행에 나서는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잘 가지 않는다. 백운대에 오르는 길로는 일부러 영봉을 하나 더 넘어야 하니 쉽게 도선사 앞 주차장길로 지나간다. 필자는 북한산 산행 하시는 분들께 영봉을 꼭 한 번 가 보시라고 권한다. 계절로 하면 가을에, 시간으로 하면 일출 시간이나 해가 지기 전에, 일기로 하면 하늘이 부서질 듯 푸른 날에, 아니면 시원한 비 한줄기 지나간 날에. 몇 군데 시원하게 터진 조망구역을 지나 영봉 정상부 넓은 마당에 닿는다. 인수봉이 눈을 가득 메우고 가슴을 가득 채운다. 이곳에 오른 분만이 안다. 인수봉의 맨 얼굴을 보려거든 이곳에 와서 보시라고. 필자는 어느 해 여름, 밤비가 시원스레 내린 날 새벽 이 곳에 와서 일출을 맞은 경험이 있다. 여명(黎明)의 어스레함이 인수봉을 적시더니 이윽고 붉은 빛이 조금씩 조금씩 봉에 스미는데 그 아름다움은 아무리 잘 비춘 조명에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의 곡선미를 찍은 사진이라도 감히 비길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난 가을에는 산청에서 지리산 품에 안겨 작품 활동을 하는 이호신 화백과, 또 ‘주인 없는 길 다니는 이가 임자’라는 생각을 가진 필자의 길동무들 몇몇 분이 함께 올랐는데 저녁 무렵의 영봉도 추천할 만한 것이었다. 이제는 모두 아래 충혼의 자리로 옮겼으나 몇 년 전만 하여도 인수봉에서 생명을 다한 산사나이들을 기리는 동패(銅牌)나 석패(石牌)가 영봉에 많이 있었다. 함께 인수봉에 오르다가 먼저 간 산친구들을 추모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담은 패였다. 영봉에는 산초(山椒)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필자는 산길에서 산초를 만나면 산초 새잎 몇 조각 입에 넣는다. 열매가 익을 때면 열매 몇 알 씹으면서 간다. 추어탕 집에서 먹을 때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신선함이 있다. 기운도 돋는 것 같고 전날 술이라도 한 잔 한 다음 날이면 기분도 가벼워진다. 그러나 절대로 욕심내지 마시기를. 사실 인수봉은 이제 바위 타는 이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나 백제(百濟)의 온조(溫祚)대왕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 온조왕 조를 보자. 온조의 어머니는 소서노라는 여걸인데 부여에서 도망나온 주몽을 보살펴 고구려(졸본부여)의 왕이 되게 하였다. 그녀는 아들 둘을 가진 미망인으로 주몽보다는 8살이 연상인 재력가이며 능력가였는데 주몽과 재혼하였고, 후에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자 소서노와 그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왕따’ 당하였던 것 같다. 어디 치사하게 왕따 당하며 살 소서노이던가. 두 아들을 데리고 한강가로 남하하였는데 그들이 올라 살만한 땅을 찾은 봉우리가 부아악(仁壽峰, 부아악은 북한산을 대표하는 이름이라는 설도 있음)이다. <沸流>·<溫祚>, 恐爲太子所不容 , 遂與<鳥干{烏干}> ·<馬黎>等十臣南行, 百姓從之者, 多.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비류와 온조는 태자(유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저어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10신하와 남으로 왔는데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드디어 한산(지금의 서울 지방)에 이르러 부아악(삼각산 인수봉)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살폈다. 그렇게 하여 온조는 서울의 동쪽과 하남 지역에 백제를 건설하였고,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니 부아악이 없었다면 백제는 한강변에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부아악(負兒岳: 아기 업은 바위산)이란 산 이름은 인수봉을 곰곰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인수봉을 동쪽 또는 남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아기를 업은 듯 작은 바위 하나가 붙어 있다. 그러니 재미있게 아기 업은 봉우리(부아악)라고 부른 것이리라. (그밖에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무리가 있어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이런 좋은 이름을 두고 어느 날 인수봉(仁壽峰)이란 이름이 생겼다. 공맹(孔孟)과 주자(朱子)에 빠진 이 나라 선배님들은 내 것보다는 공맹을 숭상하는 생각 속에서 사셨으니 아마도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며 지자는 낙천적이요 인자는 오래 산다. 전통문연 해석에 따름)이라는 논어 속 공자님 말씀에서 인수(仁壽)라는 이름을 빌려 왔으리라. 이제 영봉을 떠나 하루재로 내려간다. 길이 몹시 가파르다. 하루재는 도선사 주차장에서 백운대 인수봉 방향으로 올라가는 고갯마루다. 아마도 예전에는 이 고갯길이 능히 하루품이었을 것이다. 고개 내력을 전하는 구전(口傳)조차 알 길이 없으니 애석하다. 하루재에서 그대로 직진하는 방향은 만경대로 오르는 길인데 암릉 구간이라서 출입금지가 되어 있고 일반인은 도저히 갈 수 없는 구간이다. 편안한 산행로를 따라 가면 북한산 산악경찰 구조대가 나온다. 백운대, 인수봉 구간은 서울의 명산이지만 일기가 갑자기 급변하면 많은 인명사고도 발생하는 곳이다. 특히 인수봉은 클라이밍을 즐기는 서울의 명소이다 보니 그만큼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날 산행길에서 산악구조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분들의 헌신은 그 동안 내게 각인되어 있던 경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살면서 많이 느낀다. 한 면을 보고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근시안은 아마도 죽어서나 벗을 수 있는 허물 아닐까 하고. 구조대 맞은편에는 인수암이라는 반은 여염집 같은 암자가 있다. 인수봉을 뒤에 지고 정기(精氣)를 다 받다 보니 기도도량으로서 알 만한 이들은 아는 암자이다. 인수와 반야 두 마리 멍멍이가 약수 한 잔 마시러 오는 이들에게 공연히 멍멍거리며 아는 척을 하는 곳이다.

한 녀석은 인수(仁壽)이니 공자님의 제자이고, 한 녀석은 반야(般若: 깨달음)로 부처님의 제자이니 짖어대는 것도 다 부족함 많은 속세 것들을 탓함이렸다. 또한 이 곳 마당에 물맛이 좋으니 마른 목 축이고 가시라. 이제부터 0.9km는 거리는 짧으나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지나는 길이라서 모두 돌로 길을 깔아 놓았다. 습기라도 있는 날이면 길이 미끄럽다. 숨이 목에 찰 즈음에 백운대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백운대피소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구수한 국수도 팔고 간식거리도 있다. 앞마당에는 ‘백운의 혼’이라는 작은 돌탑이 있다. 백운대에서 명(命)을 달리한 이들을 기리는 위령탑이다. 대피소 건물을 살짝 돌아가면 눈에 띄지 않던 작은 암자가 있다. 백운암(白雲庵)이다. 편액도 그냥 백운암이라고 걸려 있는데 법당을 들여다보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모셔져 있고 산신(山神)도 계신다. 관음전인 셈인데 아울러 북한산 산신께서 함께 기거하고 계시는 것이다. 법당 뒤로 작은 간이건물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걸려 있는 쪽문이 하나 있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나이든 보살님께 마애불 친견하러 왔다고 말씀드리고 쪽문을 열고 나간다. 잠시 층계를 오르면 한 뼘 마당 앞 우뚝한 바위에 백운대를 배경으로 약사여래마애(藥師如來磨崖)가 정좌하고 계신다.

현대에 조성한 약사여래인데 정한 품세나 품위 있는 상호(相好)나 예술적 가치보다는 종교적 믿음이 가는 마애불이다. 저녁해가 넘어가는 백운대의 웅장한 바위를 등에 업고 앉아 있는 마애불 앞에 필자도 앉아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눈 들어 본다. 600년 전 고려 장군 이성계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었다. 引手攀蘿上碧峰(인수반라상벽봉) 손뻗어 넝굴 잡고 푸른 봉에 올랐네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 암자 하나 흰구름에 자리했는데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내 눈 미치는 곳이 모두 내 땅이라면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 강남땅 오-초나라인들 어찌 마다 하랴? 백운봉에 올라서 쓴 시(詩: 登白雲峰)라 한다. 이제 나도 태조 이성계처럼 구름 속 백운암을 내려다보아야겠다. 500m 위에 있는 백운대를 향해 길을 오른다. (계속)

교통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 버스환승 109, 151번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 ~ 중앙버스차선 버스환승 109, 120, 130, 144, 153, 170, 171 걷기 코스 우이동 종점 ~ 우이령 방향 ~ 영봉 방향 좌측길 ~ 용덕사(마애불) ~ 육모정고개 ~ 영봉 ~ 하루재 ~ 백운산장/백운암(마애불) ~ 위문 ~ 백운대 ~(온 길로 하산) ~ 하루재 ~ 도선사(마애불) ~ 김상궁 사리탑 ~ (온 길로 하산) ~ 우이구곡 ~ 부침바위 ~ 우이동 종점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이야기가 있는 길’ 걷기 행사가 열립니다. 5월28일(토) 낙성대 ~ 관악산 마애불 ~ 사당동 관음사 길을 걷습니다. 오전 9시30분까지 2호선 낙성대역 2번 출구로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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