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가 열풍을 일으키기 전까지 아이돌 가수는 대한민국의 대중 가요계는 물론 드라마, 예능, 영화 등 연예계를 모두 장악했다. 멋진 무대와 의상,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재치 넘치는 말솜씨 등 무대와 방송에서 보여준 아이돌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다. 그러나 미스터리 공포영화 ‘화이트 : 저주의 멜로디’(이하 화이트·6월 9일 개봉)는 아이돌의 잔혹한 욕망을 무시무시하게 보여준다. ‘세상에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다’는 이 영화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전체적인 분위기다. 인기 아이돌 그룹에 밀려 빛도 제대로 못 보고 위태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걸 그룹 핑크돌즈에는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멤버 네 명이 있다. 이 영화의 핵심인 은주(함은정 분)는 백댄서 출신 가수로 핑크돌즈 멤버들로부터 ‘평균연령 깎아먹는다’라는 빈정거림을 들으면서도 참아내는 착한 리더다. 보컬 제니(진세연 분)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섹시한 외모로 가장 먼저 그룹의 메인자리를 차지하는 멤버지만 고음처리가 불안하고 한약을 몸에 달고 산다. 노래도 랩도 춤도 안 되는 아랑(최아라 분)은 깜찍한 외모 덕분에 팬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뒤에서는 다른 사람을 헐뜯고 이간질한다. 랩과 댄스 실력이 독보적인 신지(메이다니 분)는 노래 실력에 자신이 없고, 아이돌 그룹 퓨어(영화에서는 애프터스쿨이 연기)의 연습생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몹시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주가 15년 전 미발표곡인 ‘화이트’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고, 이 곡으로 핑크돌즈는 단숨에 인기 걸 그룹이 된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메인 자리를 두고 멤버들 사이에 격렬한 다툼이 일고, 메인 자리를 꿰찬 멤버들이 차례대로 이상한 일에 휘말리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은주는 ‘화이트’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화이트’는 공포 외에도 멤버들 간의 갈등과 시기, 연예인의 자살, 스폰서와 같은 연예계 비리 등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연예계 의혹을 헤집고 있어 흥미를 자극한다. 여기에 아이돌 가수의 무대와 무대 뒤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이중성도 볼거리다. 영화 ‘화이트’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지난달 30일 오후 4시 30분에 CGV 왕십리 8관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형제 감독인 김곡-김선을 비롯해 배우 함은정(그룹 티아라), 메이다니, 최아라, 진세연, 황우슬혜, 변정수 등이 참석했다. 감독-배우와 나눈 ‘화이트’의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 아이돌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곡 “최근 아이돌 문화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화려하고 귀엽고 예쁜 아이돌의 이면에 있는 한(恨), 슬픔, 고난을 보았다. 그런 대비가 공포로 보였기 때문에, 아이돌의 비애를 다룬 공포영화를 만들면 재미있고 독특한 영화가 될 것 같았다.” - 핑크돌즈 4인은 촬영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메이다니 “크레인에 매달리는 액션 신을 찍을 때 한 겨울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로 이틀 밤샘 촬영을 했었다. 촬영 당시는 몰입 때문인지 아프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갈비뼈가 흔들리더라(웃음). 머리가 끼어서 크레인에 매달리다니, 평생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즐겁게 촬영했다.” 진세연 “처음에는 매달리는 게 재미있어서 즐겁게 촬영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힘들더라. 매달린 상태에서 여기저기 많이 부딪혀서 혹도 나고 멍도 들었다. 하지만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 연출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김선 “두 가지였다. 이제까지 한국 공포영화들에서 많이 나온 귀신의 모습을 배격하려고 했다. ‘화이트’는 아이돌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인 만큼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나 무대 위, 쇼 프로그램에서 공포감을 조성해 긴장감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일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 공포영화의 법칙을 깨려 하는 건 의외로 힘들었다. 두 번째는 저주받은 비디오테이프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순예 역의 황우슬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실제 아이돌로서 ‘화이트’에 공감했나? 함은정 “현재 티아라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연기할 때 어땠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촬영은 재미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욕심이 욕심을 불러온다’는 영화 속 상황에는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이나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이다.” - 영화를 촬영한 이후에 실제로 그룹 활동을 하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진 않았나? 함은정 “티아라로서 무대에 설 때 무서운 적은 있었다. 갑자기 무대효과로 앞이 안 보일 때 ‘무대 뒤에 누가 있지 않을까?’ ‘앞에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 이 영화의 공포 포인트는 사운드와 이미지, 어느 쪽인가? 김선 “아이돌 세계를 다룬 공포영화다 보니 그들의 이미지가 춤과 노래가 있는 사운드를 총칭하게 되더라. 그래서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일단 이미지 부분은 무대 위에서 보이는 공포에 주안점을 뒀고,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어두움, 여인의 한을 이미지화 하는 일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리얼리티 쇼프로그램과 연습실 거울방의 공포 신이다. 사운드는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사용됐는데, 순예와 이실장이 저주 걸린 노래 ‘화이트’의 미스터리를 밝혀가는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된다. 리버스 노이즈(되감기를 해서 곡을 들었을 때 또 다른 메시지가 나오는)나 사운드 클립을 모았을 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 등의 사운드 공포를 병행한 것이다.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리버스했을 때 ‘피가 모자라’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널리 알려진 괴이한 소문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 비슷한 또래와 작업해서 경쟁의식은 없었나? 진세연 “시나리오를 다 보고 서로를 만났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을 배우의 성격으로 생각하고 처음 만나긴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다들 정말 착했다. 촬영하면서도 경쟁의식보다는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더 많았다.” - 극에서 사용된 곡들이 화제가 될 것 같다. 핑크돌즈로서 무대에 설 계획은 있는가? 함은정 “신사동호랭이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만들어준 곡인데 정말 좋다. 기회가 된다면 핑크돌즈 멤버들과 무대에 서고 싶지만 그 전에 티아라 멤버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 고음파트를 대신 불러주는 더블링가수로 출연하고 노래도 하는데 본인의 실제 실력인가? 황우슬혜 “보컬트레이닝도 받고 연습도 많이 했고, 촬영 때도 노래를 직접 했는데 지금 영화를 보니 다른 목소리가 입혀졌다(웃음).” - 소속사 대표를 연기하면서 후배들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지 않았나? 변정수 “핑크돌즈가 무대에 설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스케줄은 나와 상의하라’고 말할 뻔했다(웃음). 아이들이 노래실력은 물론이고 춤 실력도 출중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