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호 박현준⁄ 2011.06.13 13:58:14
최형기 연세대 명예교수 필자는 지난해 10월 14~17일 오사카에서 열린 아·태 갱년기학회에 남성호르몬 분야 좌장으로 초청 받아 참석했습니다. 남성호르몬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들이 많이 참석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나타나는 갱년기 증세에 대한 발표가 주로 이뤄졌습니다. 학회 쪽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 활동력이 떨어져 모든 갱년기 증세들과 성인병들의 증세, 즉 당뇨병,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이 나타나므로 남성호르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활력 있고 젊은 노년기를 맞으려면 호르몬 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국내에서 어린이 성폭행에 대한 문제가 부각돼 화학적 거세가 논의되고 있던 터라 필자는 문득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현재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남성호르몬 부족에 대한 것만 토의를 했는데, 혹시 성폭행범들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지 또는 남성호르몬 자극호르몬의 분비(LH surge)가 관계되는지 등 이 분야 연구에 대한 의견들이 있는지요?”라고 장내의 청중들에게 공개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호르몬 대가들이 다 모였는데도 이에 대한 코멘트는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임상에서 환자들만 다루는 의사들이라 성범죄자에 대한 경험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호르몬이 높으면 성충동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문헌에 따르면 성범죄자들의 남성호르몬 수치는 일반인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 상태는 어떨까요? 하얀 종이 위에 잉크를 뿌려 여러 형태의 모양을 만듭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 모양을 보여주며 무늬에서 연상되는 느낌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박쥐 같은데요." "마녀 같은데요." "저…, 여자의 성기 같은데요." 보는 이의 느낌과 판단은 천차만별입니다. 이처럼 환자가 무의식 상태일 때 투사되는 반응으로 정신 상태를 알아보는 검사법(Rorschah inktest)을 스위스 정신과의사가 개발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이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사랑의 무늬가 있습니다. 소위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상대를 만나는 순간 평소 자기가 그려왔던 이상형이라 직감하고 인생의 전부를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러브맵’(Lovemap)이라고 존스홉킨스대학의 성의학자 머니(Money) 박사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각 사람마다 고유한 사랑의 지도를 가지며 이에 따라 연애하고 결혼하며 성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의학 분야의 대가인 머니 박사는 사람마다 성에 대해 고유한 러브맵을 갖는데, 성범죄자들은 러브맵이 정상인과는 아주 다르다고 했습니다. 즉, 정상인들은 서로 사랑하고 애무를 하며 성생활을 하는데, 범죄자들은 이런 정상 상태에서는 발기가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범죄자들은 상대를 공갈 협박해서 굴복시키는 등 극한 상황에서 얻는 희열로 강한 자극을 받아야만 발기가 가능한 일종의 성기능 장애 환자들이라고 머니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계속 극한 상황을 추구하다보니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성충동은 남성호르몬과 관계가 있지만 성범죄자의 경우 남성호르몬 이외에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정신적·의학적인 문제가 더 관여됩니다. 화학적 거세로 메드록시프로제스테론(medroxyprogesterone) 같은 약을 쓰면 성충동이 줄어들고 진정이 되면서 일시적인 효과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복용하면 정자 형성에 어려움이 생겨 불임이 되거나 과잉 식욕으로 체중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남성호르몬. 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호르몬이 성범죄의 주범이 아니므로 병태생리에 대한 정신의학 및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포괄적 연구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