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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하나도 안 부러워요”

[인터뷰]‘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멀티맨으로 남우조연상 꿰찬 뮤지컬 배우 임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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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8호 이우인⁄ 2011.06.27 13:45:45

6월 7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 이날 무대와 객석을 폭소하게 한 ‘작은 거인’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뮤지컬 배우 임기홍(36)이다. 뮤지컬의 대중적인 인기가 늘어날수록 시상식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도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상을 받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시상식장을 나섰다. 임기홍도 이들 중 하나가 될 뻔했다. 올해 남우조연상 후보는 브로드웨이 스타 브래드 리틀을 비롯해 ‘범사마’ 서범석과 공연계 웃음 제조기로도 불리는 정상훈, 그리고 ‘광화문연가’에서 작곡가 고(故) 이영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해 호평받은 박정환 등 쟁쟁했다. 그 누가 임기홍의 수상을 예상이나 했을까? 임기홍은 뮤지컬 ‘톡식 히어로’에서 일인다역 일명 ‘멀티맨’으로 활약했다. 멀티맨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무대 위에서 몸을 굴리고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감초 역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다. 기자도 임기홍의 멀티맨에 배꼽 빠지게 웃고 감탄한 관객 중 하나지만 그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멀티맨 중에는 임기홍이 잘한대요” 임기홍도 자신의 수상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익살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그도 수상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겸손을 보인다. 시상식에서 “내가 후보들 다 이겼다”라고 소리칠 때와는 정반대의 수줍은 모습이었다. “제 옆의 옆자리에 브래드 리틀 아저씨가 앉아 있었어요.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상도 안 주는데 미국에서 괜히 왔겠어요? 당연히 상을 받으려고 왔겠구나 싶었죠. 리틀 아저씨 말고 서범석 형도 대단한 배우고, 다른 배우도 쟁쟁했고요.”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얼떨결에 무대까지 나갔다는 임기홍. 그는 “그날 MC였던 오만석 형이 ‘수상소감 짧게 부탁 드립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 키만큼 짧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며 “소감을 말하다 보니 엄마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다음에 여자 친구 생각이 나더라”라고 했다. 그가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한국뮤지컬대상에서도 같은 작품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당시는 최민철이 ‘몬테크리스토’로 남우조연상을 꿰찼다. “그때는 장난하는 식으로 수상소감을 준비하긴 했는데, 이번에는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어요.” 쟁쟁한 후보들을 누르고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유를 그에게 묻자 임기홍은 “모르겠다”면서도 “멀티맨 중에는 임기홍이 잘한다는 말이 오간 건 안다. 그런 말은 가끔 듣는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임기홍과 시상식 하면 빠지지 않는 배우가 있다. 임기홍과 ‘톡식 히어로’에서 호흡을 맞춘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다. 이날 임기홍은 홍지민과 레드카펫을 밟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인생의 첫 레드카펫을 홍지민과 함께했다며 임기홍은 홍지민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홍지민에게 고마운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에서 떨어진 뒤 낙담하는 임기홍을 위해 홍지민은 시상자로 나선 무대에서 느닷없이 임기홍 이야기를 꺼냈다. 이 장면은 잠깐이지만 시상식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누나와는 ‘톡식 히어로’에서 만나기 전에는 가끔 공연 보러 가면 인사하는 사이였어요. 그러다 같은 작품을 하면서 친해졌죠. 친누나 친동생처럼 말이죠. 올해는 협찬을 받은 의상을 입었지만 작년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비를 들여서 꾸몄거든요. 그걸 누나가 알았는데, 조연상에서 떨어지니까 제가 안쓰러웠던 모양이에요. 누나에게 너무 고마웠죠.” 수상소감 마지막에 임기홍은 연인에게 사랑 고백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여자 친구는 현재 연극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교제한 지 불과 5개월 정도 됐지만 결혼까지 생각한다는 임기홍. “여자친구는 만날수록 예뻐 보인다. 정말 좋은 여자다”라고 자랑했다.

임기홍은 남우조연상과 함께 상금을 받았다. 어워즈 당일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김종욱 찾기’ 5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는 “상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상을 꼭 받고 싶다”는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토록 기대했던 상금으로 무얼 했느냐고 묻자 “아직 못 받았다”며 입을 삐쭉 내민다. “상금 봉투에 수표가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어디로 와서 상금을 받아가라’라는 내용이 적힌 종이만 달랑 들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소로 갔어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돈은 2주 뒤에 나온다고 통장사본 등을 보내라 대요. 상금은 아무래도 7월 초에나 받을 것 같아요. 그런데 큰 금액이 아니라 친한 동생들 술 사주고, ‘톡식 히어로’ 팀에 한턱내면 거덜 나겠어요(웃음).” 늦은 나이에 무작정 덤빈 뮤지컬 “그땐 겁이 없었죠” 임기홍은 27세의 늦은 나이에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그전에는 무역학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를 뮤지컬계로 이끈 건 대학생 때 활동한 ‘트라이앵글’이라는 통기타 동아리였다. “가수 윤하의 아버지가 이 동아리 1기 선배라더군요. 1년에 두어 번 정기공연을 하는데 그런 생활이 마냥 좋았어요. 그러다 27살에 느닷없이 뮤지컬을 해볼까 해서 무작정 덤볐죠. 목표는 없었어요. 그냥 겁 없이 덤빈 거예요. 그러다 차츰 이쪽 세계 사람을 알게 됐죠.”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 출신인 임기홍은 3녀 1남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귀한 아들의 연기 생활을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집에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나름 ‘귀남이’이지만 귀하게 자라지도 않았다. 그냥 ‘너 알아서 하라’는 주의였다”고 말했다. 임기홍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약 10년 동안 ‘흥가와라’ ‘송산야화’ ‘명성황후’ ‘페임’ ‘마네킹’ ‘블루 사이공’ ‘가스펠’ ‘뮤직 인 마이 하트’ ‘달고나’ ‘젊음의 행진’ ‘김종욱 찾기’ ‘온에어’ ‘내 마음의 풍금’ ‘영웅을 기다리며’ ‘금발이 너무해’ ‘웨잇 포 유’ 등 다양한 작품에서 실력을 쌓았다. 앙상블로 활동하던 그가 멀티맨 세계에 발을 처음 들인 작품은 ‘뮤직 인 마이 하트’ 초연에서였다. 이후 그의 멀티맨 생활은 계속됐다. 이런 생활이 배우로서 불안했을 법한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임기홍의 노력과 경력은 그를 ‘멀티맨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가장 웃기는 멀티맨은 임기홍이다’라는 이야기를 기자도 실제로 몇 번이나 들었다. ‘톡식 히어로’에서 임기홍의 찬란한 멀티맨 연기를 보면서 노래 잘하는 개그맨이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농담 삼아 개그맨을 지원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 ‘명성황후’를 할 때 연습 분위기가 작품만큼이나 무거웠어요. 제가 팀의 막내는 아니지만 현장이 즐거웠으면 했기 때문에 장난도 많이 치고, ‘올림픽’이라는 제목의 콩트도 몇 개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걸 본 선후배, 동료가 개그맨 콘테스트에 나가보라고 권유했죠. 그리고 정말로 나갔지만 떨어지고 말았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떨어진 게 다행이죠. 저는 연기가 더 좋거든요.” 임기홍의 멀티맨은 안타까울 정도로 몸을 많이 쓴다. 웃다가도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함께 들 만큼 무대 위 임기홍은 처절하다. 작은 체구인 임기홍의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건 없는데요. 하나 있다면 어릴 때 산과 들, 바다에서 뛰어다녔는데, 놀다 보니 그런 기운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멀티맨 원조라는 자부심 있어요” 힘이 넘쳐나는 임기홍에게도 지금 걱정거리가 한 가지 있다. 7월 말부터 공연되는 뮤지컬 ‘톡식 히어로’에 멀티맨으로 출연하기 때문. 지금 출연 중인 대학로 인기 뮤지컬 ‘김종욱 찾기’ 시즌5와 병행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걱정되는 한편, 상을 받은 뒤라 부담감도 크다. “마음 편하게 하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괜히 ‘조금 더 해야 할까?’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그래서 상을 받는 일이 막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톡식 히어로’는 ‘김종욱 찾기’보다 더 부담됩니다. 혹시 한 명이라도 제가 이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기대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 때문에요.” ‘김종욱 찾기’ 시즌5에서 김재범, 정상윤과 함께 주인공 김종욱 역으로 캐스팅된 라준은 ‘김종욱 찾기’ 멀티맨 출신이다. 멀티맨에서 주인공으로 신분이 상승한 셈이다. 이에 대해 부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임기홍은 “전혀 안 부럽다. 나는 그냥 멀티맨이 좋다”며 “특히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은 원조라는 자부심도 있다”고 멀티맨으로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특별기획으로 역할 바꾸기를 한다면 한 번 정도는 김종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넌지시 내비친다. 그런데 어째서 임기홍은 그토록 멀티맨 역할에 애착을 갖게 됐을까? 이에 대해 그는 “공연하는 내내 이 인물, 저 인물 하면서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단점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캐릭터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데 30초 만에 끝날 때가 있다”며 “조연이라도 긴 호흡을 가져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원조 멀티맨으로서 ‘김종욱 찾기’ 이번 시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냉철하다. 그는 “솔직히 멀티맨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은 시즌”이라며 “이전 시즌보다는 거품을 많이 뺀 건 사실이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이어짐이 앞 시즌보다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기존 시즌이 가진 재미들은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임기홍의 작품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은 창작 초연을 많이 하면서 생긴 듯이 보인다.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창작 초연이 좋다. 캐릭터를 내가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이라며 창작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임기홍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배우가 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조금 더 상대방을 느끼고 싶고, 배역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 연기’에 대한 욕심도 조심스럽게 비친다. “그동안 짝사랑 역할만 많이 했어요. 그래서 농담으로 ‘무대에서 뽀뽀하는 게 소원이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사랑을 꼭 하고 싶어요. 물론 여자 친구의 눈치가 보여서 불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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