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남순은 혈우병으로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살지만 겉으로는 힘이 넘치는 동현과 만나 사랑의 통증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가을에 개봉되는 영화 ‘통증’은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남자와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인 여자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1000만 네티즌을 울린 웹툰 작가 강풀의 원안을 토대로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을, 배우 권상우와 정려원이 남녀 주인공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다. 특히 그동안 ‘친구’ ‘똥개’ ‘사랑’ 등 묵직한 남자영화만을 고집해온 곽 감독의 첫 여자영화이기도 해 눈길을 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잘된 멜로 영화나 만화를 보고 나면 너무 힘들었어요. 그 감정에 사로잡혀서 일주일씩 헤어 나오질 못했죠. 이 때문에 멜로 감성을 일부러 떨어뜨려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사랑은 인류의 테마고 연출자로서 도전을 안 할 수도 없었어요. 어느 날 ‘통증’ 시나리오를 읽는데 세 번 정도 눈물이 났어요. 나를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랑 이야기라면 나도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영화에 도전해봤습니다.” 한편, 영화 ‘통증’의 제작보고회가 7월 21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역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곽경택 감독을 비롯해 권상우, 정려원이 참석해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둘째를 임신 중인 방송인 박경림의 유쾌한 진행으로 행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며, 이들을 응원하고자 작곡가 김형석, 소녀시대 수영, 배우 김형종 등이 깜짝 게스트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 상처투성이로 나오던데, 힘들지 않았나? 권상우(이하 권) “보통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로 남자주인공이 상대방을 때리고 이기는데, 우리 영화엔 주인공이 때리는 신은 전혀 없고 맞는 장면만 나온다. 많이 맞아서 아팠다. 화면이 크기 때문에 가짜로 때리면 티가 나서 진짜로 맞았다. 그래도 워낙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맞을수록 즐거웠다.” - 어디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정려원(이하 정) “동현은 나와 정말 닮은 캐릭터다. 강한 모습도 똑같다. 감독님이 처음에 날 보더니 ‘려원 씨에게는 엉뚱한 매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잘 보셨다’고 했다. 처음 날 보는 사람들은 ‘새치름하다’ ‘차도녀(차가운 도시의 여자)’라고 말하곤 하는데,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다. 감독님이 ‘동현이는 굉장히 정려원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번 영화에선 힘을 쫙 뺐다.” - 정려원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곽경택 감독(이하 곽) “촬영 전에 려원 씨와 고기집도 가고 소주도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 중에 내가 여태까지 알던 정려원과 다른데, 이 모습 그대로 영화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선택이 옳았다.” - 결혼 전에 사랑의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나? 권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센 건 두 번 느껴봤는데, 거의 코마(의식불명) 상태였다(웃음).” - 경험이 연기에 반영되던가? 정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한 거라는 마인드 같은 게 동현과 비슷하다. 나도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불행의 끝을 보기보다 희망을 많이 보는 편이다.” - 곽 감독의 전작 속 남자주인공(장동건, 정우성, 주진모 등)들을 떠올리면 부담스럽진 않았나? 권 “장동건, 주진모 씨와 다른 매력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시나리오 속 남순의 이미지도 남루하고 빈틈투성이고 멍해 보이는 남자다. 그런 캐릭터도 감독님의 연출을 거치면 장동건, 주진모 씨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일 거란 믿음이 있다.” - 장동건, 정우성, 주진모가 신경 쓰이진 않았는가? 권 “전혀 다른 캐릭터라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이번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감독님의 기존 남자 영화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곽 감독에게 이런(섬세한) 면이 있었구나’ 했으면 한다.” - 혈우병 환자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정 “동현은 작은 피 한 방울에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친구여서 예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쪽으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실제 혈우병을 앓는 친구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예민하고 날이 서 있고 사람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구김살 없이 너무 밝더라. 만나고 난 뒤 오히려 내가 사랑받은 느낌이었다. 아프다는 이야기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봐 절대 안 한다더라. 자립심이 참 강한 친구였다. 나도 호주에서 나와 한국에서 12년째 혼자 살고 있고, 사랑을 받기보다 줌으로써 사람을 포용하는 편인데 그 친구나 동현이와 닮은 것 같다. 기술적인 연기에서는 (곽경택) 감독님이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분이기도 하고, 동현이 스스로 주사바늘을 팔에 꽂는 역할이기도 해서 직접 비타민을 팔에 주사하는 연습을 했다. 자칫 (마약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서 집에서 연습했다.” - 이번 작품에서 특히 연기를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권 “현장에서 연기하면 너무 재미있다는 사실을 요즘 조금씩 느낀다. 데뷔 11년째인데 데뷔한 뒤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일했다. 그때도 물론 즐거웠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연기할 때랑 요즘 연기할 때의 기분은 많이 다르다. 특히 ‘통증’ 현장은 모든 분이 다 좋았고, 현장에 있는 일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실 배우 모두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내 경우는 유부남이라는 제약이 있다. 작품을 할 때 유부남이란 사실이 제약이 된 적은 없지만 그 외적으로 편견이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는 그 편견을 꼭 뛰어넘고 싶다.” - 그동안 조각미남들과 함께해왔는데, 조각미남이 아닌 권상우를 캐스팅한 배경은 뭔가? 곽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제작사 대표에게 주인공으로 누굴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시나리오가 이미 권상우에게 가 있다더라.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제작사 대표에게 ‘권상우가 하면 나도 하겠다’고 말했다. 남순은 권상우 씨와 정말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하지만 영화는 중간에 삐걱거릴 때가 있는데, ‘통증’도 그랬다. 상우 씨의 출연이 불발될 뻔했지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어떤 연기자가 와도 권상우가 아니면 나도 빠지겠다’고.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건 권상우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정말로 틀리지 않더라.” 권 “드라마 ‘대물’의 촬영을 끝내 놓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무조건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읽자마자 느낌이 딱 왔다.” - 많은 여배우와 작업해봤는데, 정려원의 장점은 뭔가? 권 “여배우들은 모두 매력적이지만, 려원 씨는 특히 맑고 순수하다. 그리고 영어 발음이 남다르다. 현장에서 영어를 구사하면 가끔 침묵이 흐르기도 했으나 멋있어 보였다.” - 곽 감독과 작업한 소감은 어떤가? 정 “전작을 봤을 때는 쇠파이프나 각목 이미지가 강한 분이었다. 그러다 영화 ‘사랑’에서 쇠파이프가 녹았다는 사실을 느꼈고, 이번 영화에서도 (강한 느낌을 없애는 일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하고 만났는데, 실제로는 솜방망이 같은 분이더라. 감독님의 작품은 남성적으로 선이 굵지만 여자처럼 디테일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고 엎드려서 연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