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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 25]민초들의 소원 담아 천년 미래 꿈꾸던 미륵보살

‘극락보전’에서 스님의 청아한 염불소리가 가는 빗줄기에 섞여 들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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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2호 박현준⁄ 2011.07.27 13:00:47

이한성 동국대 교수 4호선 전철이 편안하게 정부종합청사역에 도착한다. 어쩌다가 오는 역이라서 출구부터가 낯설다. 정신을 차리고 지난 번에 고이 메모해 둔 6번 출구를 찾아 나선다. 오늘은 우리 답사할 길 중 좀처럼 하지 않는 정상을 넘는 길을 택한 날이기도 하고, 그리고 관악산을 오르는 이들도 잘 찾지 않는 길을 가는 날이기도 하다. 내 마음의 보물들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미리 고백하면, 앞 집 아저씨 같은 문원리 보살상, 서산 백제마애불(百濟磨崖佛)의 미소에 뒤지지 않을 미소를 띠고 있는 오비구(五比丘), 마애 할미상, 어느 분의 이름글자 바위, 잊혀진 절터 일명사지, 그 많은 이들이 들락거려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연주대 마애불(戀主臺 磨崖佛),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양녕과 효녕의 이야기가 있는 효녕각, 촌스럽지만 웬지 끌리는 자운암 마애불과 목탁을 베고 잠든 사미상(沙彌像)... 이런 사랑스런 흔적들이 있기에 수고스러움을 마다않고 이 길을 간다. 6번 출구를 나서면 ‘기술표준원’ 안내판과 ‘문원리 사지 석조보살입상과 3층석탑’을 알리는 안내판, 뜻을 헤아리기 힘든 ‘용운암 마애승용군’을 알리는 표지판이 길손을 맞는다. 잠시 직진하면 우측으로 갈라지는 한적한 차로가 있는데 앞을 보면 K water라는 간판이 보이고 우측으로 과천중앙고 글자판이 보인다. 이 길로 우회전하여 올라가자. 넓고 한가한 차로에 좌측으로는 개천이 흐른다. 500여m 올라왔을까? 보광교라는 시멘트다리가 나타나는데 비스듬한 길 뒤쪽 숲속에 1929년에 세웠다는 보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본전(本殿)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다. 법당문이 열려 있는데 스님의 청아한 염불소리가 가는 빗줄기에 섞여 들려 온다. 법당 안에는 소복(素服)입은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이승을 하직하고 그 가족들이 영가(靈駕: 영혼)를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재(齋)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의 믿음에는, 사람이 이승을 떠나면 다음 세상으로 곧바로 가지 못하고 49일을 허공에서 떠돈다고 한다. 이 때 방향을 잘 잡으면 사는 동안의 잘잘못을 사(赦)함 받고 다음 세상에 좋은 인연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절집 명부전(冥府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을 볼라치면 염라대왕과 그 친구들 10 분이 죽은 영혼을 심판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계신다. 일주일마다 7번 심판하여 다음 세상 인연을 맺어 주고, 100일에 또 한 번, 일년 되는 날 또 한 번(소상:小祥), 2년 되는 날 최후의 심판(대상:大祥)을 한다. 사는 일도 만만치 않건만 죽어서도 쉬운 일이 없구나.

이때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달리 무엇 있겠는가? 정성 모아 이승 떠난 영혼에게 기도하고 염불해 주고, 저승길 노자(路資)도 좀 보내고, 심판관 눈에 잘 들게 상이라도 하나 차리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극락보전 기둥에는 주련이 적혀 있다. 無量光中化佛多(무량광중화불다: 무량한 빛 속에 많은 부처 계신데 ) 仰瞻皆是阿彌陀(앙첨개시아미타: 우러러 보니 모두 아미타불이구나 ) 應身各挺黃金相(응신각연황금상: 드러내신 모습은 각기 황금빛을 띠시고 ) 寶 都旋碧玉螺 보계도선벽옥라: 고귀한 머리에는 벽옥라를 두르셨네) cf. 라(螺): 부처 머리에 우둘두둘 한 모양, 작은 소라 같아서 나발(螺髮)이라 함 법당 안을 들여다 보니 황금빛 아미타불이 정좌하고 있다. 안내판에 적혀 있기를, 목조불이며 시도유형문화재 162호로 양평 용문사에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누군가 여주로 옮겼다가 이 곳에 모셨다고 한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西方淨土: 천당)를 관장하는 부처이니 오늘의 영혼은 아마도 천당의 인연을 맺으시리라. 극락보전 옆 산 아래 쪽에는 영락없는 시골아저씨 같은 석상이 서 있다. 안내판에 문원리 절터에서 옮겨온 문화재 자료 77호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이라 한다. 고졸하여 그에 미치지는 못하나, 중원 하늘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미륵대원(彌勒大院)의 마의태자가 변했다는 미륵보살을 많이 닮았다. 둥근 보개(寶蓋: 머리에 쓴 모자)며, 손 모양(手印)이며, 좁은 어깨며 어딘가 세련되지 못했지만 정다운 그 모습…. 아마도 민초들의 바람을 담아 천년 미래를 꿈꾸었던 미륵보살은 아닐른지. 절문을 나서 길을 건넌다. 길 건너 잠시 오르면 국사편찬위원회를 지나고 기술표준원이 나타난다. 기술표준원 담장이 끝나는 곳에 백운사 안내판이 걸려 있고 쇠로 만든 담장 사이, 길로 느껴지지 않는 길이 있다. 이 길로 접어들면 잠시 후 등산로 표지판이 나타난다. 아울러 정면으로 ‘용운암마애승용군’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무슨 뜻일까? 궁금증을 안고 작은 바위길로 올라가 보자. 잠시 후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그리고 그 앞으로 성인 키 정도의 바위 덩어리가 하나 자리하고 있다. 무슨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애들 솜씨인가 하는 순간 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자그마하고 천진한 미소가 눈, 코, 입, 얼굴 가득 담겨있는 다섯 명의 비구(比丘)가 아닌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 얼굴을 마스코트나 캐릭터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서산 마애불이 은은한 미소의 대작(大作)이라면, 이 다섯 비구의 얼굴은 사랑스런 미소의 디자인 소품처럼 느껴진다.

승용군? ‘승려 얼굴들(僧容群)’이라는 말이었구나. 허허. 부처(고타마 시달타)의 일대기를 조금만 읽어 본 일이 있는 이라면 ‘다섯 비구’라고 하면 연상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어떤 그림을 보고, ‘예수와 식사하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면 ‘최후의 만찬’이라는 상황이 쉽게 떠오르겠는지? 석가(釋迦)의 생애에서 다섯 비구는 ‘오비구(五比丘)’라는 고유명사로 칭하는 이들이 있다. 석가(釋迦)가 깨우치고 그 가르침을 처음으로 전한 이들이니 첫제자가 되는 수행자들이다. 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다섯 비구’가 과연 첫제자 ‘오비구’를 뜻하는 지는 기록이 없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석가의 생애 어디에도 첫제자 ‘오비구’를 빼고는 다섯 비구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바위에 다섯 비구의 얼굴을 그렸겠는가?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가지 않으시는지. 이제라도 무정한 이름 ‘승용군’은 버리고 첫제자 ‘오비구’가 아니어도 좋으니 ‘마애오비구상(磨崖五比丘像)’으로 고쳤으면 좋겠다. 안내판에는 고려시대 새긴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하고 있다. 오비구와 헤어져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500m나 갔을까, 오른 쪽으로 큰 묘와 안내판이 있다. 각세도(覺世道)라는 종교를 창시한 교조 이선평(李仙枰)이라는 분의 묘소이다. 34세 되는 1915년에 깨우쳐 대강령을 발표했다고 적혀 있다. 원각천지 무극조화 해탈사멸 영귀영계(圓覺天地 無極造化 解脫死滅 永歸靈界). 깊은 뜻이야 알 길 없으니 글자만 읽어 보면 ‘원융하게 천지를 깨달으니 그 조화는 끝 간데가 없네. 죽고 멸함에서 벗어나 영계로 영원히 귀의하세’. 일제 강점기 희망없던 민초들을 위해 많은 믿음들이 생겨 났는데 아마 ‘각세도’도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서울대 수목원이라는 낡은 표지판을 지나 계속 나아간다. 200m쯤 지났을까, 낮은 바위에 삭발한 모습의 마애상(磨崖像)이 있다. 선각(線刻)으로 모습을 새기고 한글로 좌측에는 ‘미륵보살’ 우측에는 ‘밀양박씨 고업’이라고 새겨 놓았다. 아랫마을은 남양 홍씨들이 많이 살던 홍촌(洪村)이었는데 밀양박씨 ‘박고업’이라는 사람이 새겨 놓은 마애상이다. 마애상은 예술적으로나 불상의 양식으로나 그런 것과는 관련없는 순수한 민초의 바람으로 새긴 무속(巫俗)의 흔적임을 느낄 수 있다. 머리는 삭발하고 갸름한 턱, 한복의 동정이 가슴 앞으로 모여 V자(형태)를 이루었는데 그 곳에 메달이나 브로치 같은 장신구가 매달려 있다. 삭발한 모습이기에 공식명칭은 ‘밀양박씨 마애승상’이다. 새긴 이가 ‘미륵보살’이라 했으니 승(僧)이라 이름 붙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할미’로 보인다. 무가(巫家)에는 ‘할미’라는 분이 있다. 성모(聖母)일 수도 있고, 마고할미일수도 있고, 무녀들의 큰 언니 바리공주를 기르고 살펴 준 ‘바리(비리, 비럭)공덕할미’일 수도 있으며 삼신할미일 수도 있다. 구지 구별하지 않고 ‘할미’라 부르는데 지리산에는 그 원형이 계신다.

모진 서러움을 겪고 지금은 천왕봉 아랫마을 중산리 천왕사에 계신다. 전하기는 천년도 더 나이가 드셨다는데 조선조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擇里志)나 선비들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지리산 산행기)에는 어김없이 소개되어 있다. 이 분 이름이 성모(聖母 또는 마고할미)인데 조선 팔도 무녀들의 어머니이시다. 이 성모상을 보면 머리는 두계(머리 정상 부분)는 삭발하지 않았으나 이 곳 마애상과 많이 닮았다. 아마도 아랫마을 무녀가 밀양박씨에게서 시주를 받으면서 치성드릴 장소에 ‘미륵보살’과 ‘할미’를 합성한 마애상을 새긴 것 아닐까? 이런 자료들이야말로 민속자료로 후손들에게 고이 남겨 주어야 할 선물이다. 그런데 갑갑한 것 많은 우리 이웃들이 페인트로 소원들을 적어 놓았다. 이제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른다. 폭포수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폭포 옆길로 오르니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마당바위’다. 안내판에 문원폭포라고 현지점을 알리고 있고 연주암 1.7km, 지나온 길인 중앙공무원연수원은 1.0km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길이 갈라져 좌로 가면 육봉능선, 우로 가면 일명사지 지나 연주대로 간다. 오늘은 연주대길이다. 가파른 바위길인데 다행히 밧줄을 매어 놓았다. 바위길이 끝날 무렵 우측 큰 바위에 반듯한 해서체 큰 글씨로 누군가 이름을 생생히 새겨 놓았다. 鄭景伯 一九三七年 甲年紀念 韓大鎔 謹書(정경백 1937년 갑자기념 한대용 근서: 정경백 1937년 회갑기념 한대용 삼가 적습니다) 정경백? 1930년대 신문자료를 찾아 보니 과천면 관문리 분으로 요즈음 구의원 같은 면협의원(面協議員)과 기와조합장을 지낸 이 지방 유지였던 분이다. 한대용은 누구였을까? 알 수는 없으나 혹시 사위는 아니었을까?

요즘 기준으로 하면 환경파괴행위를 저지른 이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1930년 대 이 곳 골자기는 여름 탁족(濯足) 오는 이들 빼면 무인공산의 경승이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경승지에 오면 한 자 새기는 것을 즐겼으니 오늘의 잣대로 너무 나무랄 수는 없구나. 그런데 나무랄 일이 있다. 근래에 김아무개라는 사람이 이 각자(刻字)바위 한 귀퉁이에 자기 이름을 괴발개발 새겼다. 남의 회갑잔치에 상모퉁이에 끼어 앉은 것이다. 애들 말로 ‘누가 불렀어?’ 만날 수 있으면 물어 봐야겠다. 이 철딱서니도 이제는 중년은 되었을 것이다. 정경백 바위를 끼고 돌면 일명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다. 길 옆으로 회양목이 많다. 석회암지대에 잘 자란다 하는데 낯설다. 숨이 가파른 길을 5분 여 오른다. 장마비로 벗겨진 흙사이로 깨어진 기와편들이 들어 난다. 파묻힌 기와 쪽들에 묻혀 있는 시간의 흔적이 그리움으로 가슴에 배어 온다. 이윽고 너른 축대가 나타난다. 일명사(逸名寺). 절의 이름이 아니다. 문득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1950년대 탤런트 최불암씨 어머니가 운영하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 시인 박인환, 극작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 등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즉석에 박인환이 시를 쓰고 이진섭이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부른 노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일명사는 ‘이름 잊혀진 절’이라는 뜻이다. 여러 사람들이 절터를 지나며 절이름이 ‘일명사’인 줄 안다. 무심한 이들이여. 잊혀진 이름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나누어 가져 보자. 절터에는 민들레가 피었는데 외래종 민들레이다. 우리꽃 민들레는 어디 갔는가? 꽃도 우리를 잊었나 보다. 연전 절터를 발굴했는데 우물터도 두 군데 나오고, 석탑자리도 나오고, 건물터도 나왔다 한다. 기와파편은 후기신라말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긴 세월의 흔적을 찾았다 한다. 허허로운 터에서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 수리산도 보이고 지나온 골짜기도 보인다. 이 곳에서 도를 닦던 어느 노승이 아래 암자에 젊은 승 다섯을 키우며 도(道) 깨치면 전하려고 다섯 비구 얼굴을 새긴 것은 아니었을까? 이 경승(景勝)의 골짜기를 녹야원(鹿野園: 석가가 깨달은 후 최초로 설법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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