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입원하면 돈을 드려야 한다?

가슴 뭉클하지 않은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는 이제…

  •  

cnbnews 제233-234호 박현준⁄ 2011.08.08 13:53:07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참 많다. 예전에는 집에서 잔치를 하면 이웃에도 음식을 돌렸고, 담배는 친구들과 나누어 피웠다. 아침 일찍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동네 두부 집에서는 지나가는 이웃에게 순두부를 바가지에 담아 주는 정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빌린 물건을 돌려주거나 신세를 조금만 져도 반드시 답례를 하곤 했다.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다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웃을 배려하던 예의가 거의 없어졌다.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아이들은 동네 어른을 보아도 인사는커녕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이해득실을 따져 고가의 선물이 오고 간다. 명절 때는 백화점의 비싼 물건이 금세 동날 지경이란다. 병원도 비슷한 세태를 겪고 있다. 예전에는 현금을 담당 의사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현금, 상품권, 비싼 물건 등을 가리지 않고 담당 의사에게 반드시 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치료비를 다 내고 병원을 다니는데 무슨 선물이 필요할까? 아는 환자를 소개시켜 주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담당 의사에게 ‘얼마나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필요 없다”고 말해줘도 “그렇지 않다. 인사는 해야 한다”고 우긴다. 소아심장과에선 ‘사례’를 받는 일이 적으니 역시 어른 본인이 아파야 돈도 나오나 보다. 진정한 감사는 주고받는 모두가 기분 좋아야 하지 않을까 한참 전 일이만 어느 의사 아래로 입원하면 공정가격 100만 원을 건네야 한다는 소문이 난 일이 있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사례금 받기를 당연시 하는 의사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의사들은 “강제로 받은 것도 아니고 감사의 표시인데 무슨 문제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한두 명에게 받다 보면 다른 환자들도 알게 되고, 여유가 없어도 사례해야 잘 봐준다는 인식을 퍼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도 사례를 받았던 적이 있다. 소아심장과에선 사례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심장질환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도 있지만 역시 본인이 환자여야 더 부담을 갖는 모양이다. 소아심장 진료를 하다 보면 시골에서 오는 환자들을 많이 대한다. 초음파 검사 등의 진료비가 비싸다고 놀란다. 예전에는 심장재단에서 도움을 주었지만 진단을 받은 후에나 가능했었다. 한번은 강원도에서 온 환자의 할아버지에게 초음파를 무료로 해준 일이 있었다. 그 후에 각종 야채와 생선들을 선물로 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 선물은 가치를 떠나 정말 가슴 뭉클했었다. 감사의 뜻은 양쪽이 다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감사는 서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축하 선물이나 사례의 표시가 지나쳐 어느 계층에서나 문제가 되는 현실. 또 관례라는 말로 당연시 느끼는 현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 사이에서 무감각하게 사례를 받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할 관례(?)라고 생각된다. 장화 속에서 쏟아져 나온 돈다발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교통지옥이란 말은 우리나라에 없었다.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서울 어디를 가도 길이 막혀 늦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정책이 발표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국고의 쓸데없는 낭비라며 격렬하게 반대 데모를 한 지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198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올림픽 때에는 자동차를 통제하게 된다. 이 시기는 운전 문화가 형편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안전벨트를 하는 운전자가 거의 없는가 하면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아무데나 주차하고 운전자들의 욕설과 폭행도 낯설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교통 단속도 강화되기 시작했다. 10년 전 연세대학교 농구팀 단장으로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나는 3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서울의 교통난이 무색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현지 역시 교통지옥이라는 것, 그리고 그야말로 무법 상태 같은 교통 상황에 교통경찰의 무질서 등…. 교통이 막히지 않으면 30분 거리지만 보통 정체 때문에 2시간이 걸린다는 곳을 가기 위해서 자카르타에서 길을 나서려는데 우리를 경호하던 경찰이 기다리라며 시간이 되면 자기들이 호송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 약 25분 전에야 나타나서 가자는 것이었다. 호텔 문을 나서니 길은 그야말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는 오토바이 경찰 중 한 명은 10미터쯤 앞에서 길을 틀고 다른 한 명은 우리 차 바로 앞에서 막아서는 차들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나갔다. 그리고 회전 구간도 아닌데 지나가는 차들을 강제로 세우고 우리를 회전하게 했다. 고맙긴 했지만 마치 우리가 횡포를 부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의 과거는 이보다는 덜 했어도 불법은 역시 판을 쳤다. 1980년대에는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대개 돈으로 해결을 했다. 경찰관이 다가오면 면허증 밑에 돈을 끼워서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교통경찰에게 돈 일상적으로 주던 80년대 요사이는 잘못 돈을 줬다간 뇌물죄에 걸리지만 그 시절은 달랐다. 1983년도였다고 기억이 되는데 승용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충돌을 해 경찰관이 부상을 당해 응급실로 내원했다. 경찰관들이 2인 1조로 활동하던 때였다고 기억된다. 진료를 하기 위해 옷을 벗기려는데 함께 온 경찰이 다리를 다친 것은 아니니 긴 장화를 벗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몸 전체를 확인해야 했기에 장화를 벗기자 돈 뭉치가 양쪽 장화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하루에 받은 뇌물이 이 정도라니. 그 경찰관을 보낸 후 “의사보다 교통경찰을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겠다”고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