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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의 문화산책]세살 버릇, 여든 간다…문화와 노는 습관, 어릴 때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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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6호 박현준⁄ 2011.08.22 10:41:28

조윤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예술을 아는 과학자들입니다.” 작년, 유네스코 문화 예술 교육 세계 대회에 참석한 ‘생각의 탄생’의 저자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여타의 과학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실제 초등학교 때 수학에 영재성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상당수가 음악에도 영재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영재성을 지닌 초등학생들에게 수학과 음악공부를 모두 시키다가는 중학생이 되면 음악은 대부분 관두고 수학에만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보면, 우리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싹을 십대초반에 싹둑 잘라 버리고 있는 셈이다. 처음 가보는 외국 도시로 출장을 가면 일정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그 도시의 역사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관은 도시 그 자체를 대변한다. 미술관 건축을 보면 그 도시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얼마나 현대 건축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현대 예술의 생태계를 잘 아는 사람만이 미술관 건축을 눈을 사로잡는 ‘eye catcher’로 만들면서 도시를 광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세련됨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소장품의 수준을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잘사는 도시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교양 있는 인물을 배출했는지도 알 수 있다. 대다수 서양 소도시의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그 도시가 고향인 소장가들이 기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미술관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과 조우하는지도 그 도시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질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미술관에서 작품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읽고 느끼며,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아이들의 미래가 그 도시의 장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수업 받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얘기를 엿듣는다. 아이들의 우스꽝스런 질문도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답해주고 생각을 키워주는 선생님들의 답변에 존경심이 절로 인다. 지난주, 서울을 찾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깊이 대화를 나누던 중 예술 교육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가보지 않던 사람이 취직하고 결혼한 뒤 여유가 생겼다 해서 느닷없이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문화 예술과 가까이 지내야 커서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더 없이 공감하는 바이다.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스미소니언 박물관, 루브르, 퐁피두,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할 것 없이 유수의 미술관에는 자신의 소장품을 각 학년별로 연계하여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미술 교사 연수에도 열심이다. 작년에 우리 현대미술관에 몇 명이나 교사연수를 했는지 물었더니 세 시간짜리 강의를 서른 명이 들은 게 전부였다. 미술관 연수를 자율로 맡긴 결과라 했다. 주말에 예술의 전당 전시장의 오르세 미술관전엘 갔다. 입장권을 산 뒤에도 대기표를 받아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했다.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인지 좁은 건물 안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이 부모 손을 잡고 나선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부모도 있었다. 문화 예술에 관한 공교육이 부실해도 이렇게 치열한 부모들이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크는 거구나, 싶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대다수 부모 밑의 아이들이었다. 인간의 창조력은 늘 맥락이 있다. 이제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것을 모르고는 의미 있는 창조가 될 수가 없다. 학창 시절에 그런 공부가 되어 있지 않는데 졸업 후 취직해서 별안간 창조가 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 공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빈곤과 기회의 결핍이 대를 잇는 것이다. 다른 학교는 모두 공부시키는데 우리 학교만 예술 교육에 치중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중학교 이상의 학교의 탄원이다. 어릴 때 가르친 습관이 문화를 살찌운다. 이제 치열한 부모의 역할을 학교가 떠맡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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