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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진 건강 에세이]소아암 환자에게 찾아온 세 번의 기적

감염·합병증 이겨내고 완치의 기적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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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9-240호 박현준⁄ 2011.09.14 14:21:09

강형진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승민이(가명)는 현재 9살 남자 아이다. 건강했고 학교생활도 잘 했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 열이 나기 시작한 승민이는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잇몸에서 피도 나고 다리도 아프다고 했다. 코피도 자주 흘렸고 팔다리에 멍이 들었다. 근처 병원에 갔더니 혈액 검사에서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에 찾아오게 됐다. 말초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모세포가 발견되면 먼저 백혈병을 의심한다. 혈액 검사 결과 승민이는 모세포가 95%나 됐다. 승민이는 응급실에 오기 전까지는 의식이 또렷했으나 응급실에서 점점 말을 어눌하게 하며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의료진들은 뇌 CT를 시행했고, 뇌의 여러 군데에서 출혈이 발견됐다. 뇌출혈은 급성백혈병의 가장 무서운 초기 합병증으로 백혈병 세포가 뇌 혈관을 막아서 생긴다. 현재까지 뇌출혈이 온 환자가 생존한 경우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이번에도 또 환자를 보자마자 잃게 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승민이는 중환자실에 급하게 입원했고, 입원 다음날 골수 검사에서 소아 백혈병 중에도 예후가 나쁜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 받고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입원 5일 째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승민이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입원한지 1주일이 됐을 때 병동으로 옮겨 부모님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뇌출혈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던 눈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하고 1달이 됐을 때 골수 검사로 항암치료에 대한 평가를 했다. 골수에서 백혈병세포가 5% 이하로 떨어져야 성공적으로 치료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승민이 골수의 백혈병세포는 아직 30%나 됐다. 환자의 전신상태가 좋아져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암울한 결과에 환자, 부모 그리고 의료진들은 또 다시 실망했다. 이렇게 초기 반응이 나쁜 경우도 생존할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행했다. 다시 1달 뒤 시행한 골수 검사에서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드디어 치료에 성공해서 백혈병세포가 사라진 것이다. 승민이는 입원한지 3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 후 낮병동(낮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동)에서 항암치료를 지속했다. 낮병동에 와서 수줍게 앉아 있곤 했던 승민이는 엄마에게는 종알종알 말을 많이 했다. 오른쪽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 눈으로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빠르게 걸어 다니는 데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승민이는 완치를 위해서 조혈모세포이식이 꼭 필요했다. 조혈모세포이식은 강력한 항암치료로 몸에 있는 골수세포와 백혈병세포를 완전히 제거한 뒤 건강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받는 시술인데, 조직형이 일치하는 형제간에 이식을 받는 경우가 가장 성적이 좋다. 12살 형과 조직형을 맞춰봤고, 세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형과 조직형이 맞았던 것이다. 형제간 조직형이 일치할 확률이 25%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승민이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하나님이 보살펴주신다고 해야 할지…. 의식 회복한 뒤 백혈병 세포 사라지고 형과 골수 조직형이 맞는 기적까지… 삶에 대한 희망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치료 받아 거의 포기했던 환자가 골수이식까지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병원에 온지 7개월 째…. 드디어 무균실에 입원해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다. 이번이 마지막 치료다. 조혈모세포이식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현존하는 여러 의료기술 중 가장 고비용이면서 고위험의 치료가 조혈모세포이식이다. 승민이도 많이 힘들어 했지만 큰 합병증 없이 회복돼 무균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골수검사는 정상으로 진행됐고 모든 골수가 형의 것으로 치환됐다. 완치가 된 것이다.

지난해 갑작스런 발병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승민이가 처음 병원에 방문해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수차례의 입원을 거쳐 무균실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겪었던 힘든 일들을 생각하면 묵묵히 견뎌준 아이가 대견스럽다. 또 아이를 지켜보며 인내한 부모님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픈 마음이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암센터에는 승민이 같은 소아암 환자들이 매년 250명 가량 찾아온다. 이 중에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환자는 60명 가량이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보호자들은 많이 당황해 하고, 오열하기도 하고 때론 울 힘조차 내지 못한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우는 얼굴을 보며 불안해하고, 큰 아이들은 애써 자신들 앞에서 울음을 참아내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상황을 알아채고 말이 없어진다. 이들은 어린이병원의 소아청소년 암병동을 거쳐 가며 질병에 대해 교육을 받고, 지켜야 할 수칙들과 주의 사항을 듣는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하면 맨둥맨둥한 민머리가 돼 ‘이제는 소아 암 환자구나’ 싶은 얼굴이 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고, 조심해야 할 것들, 불편한 것들,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다. 더러는 짧은 생을 마치기도 하고, 질병이 아이들을 짜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승민이처럼 완치를 목표로 힘든 치료를 이겨낼 때 매번이 고비이지만 또 그 고비를 넘기고 다시 찾아올 삶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된다. 오늘도 소아청소년암센터 앞에는 엄마 품에 안긴 꼬마부터 성큼 키가 큰 10대 아이들까지 모두들 까까머리에 마스크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결코 짧지 않은 치료의 여정을 마칠 때까지 부디 감염이나 합병증이나 여러 위험한 요소들을 잘 비켜나가고, 몸과 마음이 잘 자라나갈 수 있기를 오늘도 기원한다. 항암 치료 종료 후 수년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중간 점검을 하는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온다. 완치자 중에는 다 커서 부모님 없이 혼자 오는 청년도 있고, 아기를 낳고 데려오는 엄마도 있다. 의사, 외교관, 삼성직원 등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승민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적어도 6개월은 감염에 매우 취약한 상태이기에 열이 날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할 것이고, 혹시 뒤늦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합병증들에 대해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네 번째 기적을 기대한다. 계속 완치된 상태로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하게 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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