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예상치 못한 등장부터 빵 터진다. 갑자기 말을 걸어 놀라게 한다. 무대로 관객을 끌어내기도 하고 무릎 위에 살포시 앉기도 한다. 도저히 ‘소심’해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복권을 사 놓고도 긁지 못할 정도로 소심한 가족들이 보여주는 결코 소심하지 않은 모습들…. 바로 연극 ‘소심한 가족 제로’의 매력이다. 소심함으로 무장한 가족은 지리산으로 가족캠핑을 떠났다가 한 상자를 발견한다. 호기심 때문에 상자를 연 이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고려시대로 가게 된다. 다시 살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이들은 늙은 아버지를 산에 버리는 부부를 만나면서 ‘효(孝)’와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배우들의 익살스런 표정과 과장된 몸짓은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중간 중간 갑자기 등장하는 귀신과 효과음은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소름이 끼치기도 하다. 코믹 연극이지만 그 안에서 순간순간 스릴러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팜므파탈로 등장하는 황진이가 가수 백지영의 ‘내 귀에 캔디’를 각색해 부르는 장면은 일품이다. 이밖에 불이 꺼지고 반딧불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름다워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할까? 재밌고 다양한 장면을 많이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흩어지는 느낌이다. 옥살이를 하는 탕웨이, 내시 같은 목소리를 지닌 고려시대 장군 강감찬과 귀신과 큰 나무처럼 보이는 시간여행 매니저까지 하나같이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등장하는 ‘효(孝)’와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에 문득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뭐였는지 헷갈리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마치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오색 나물과 양념장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뒤 밥을 빼놓은 것같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에 대한 몰입도와 웃음 폭탄은 가히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의미 전달 부분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1시간 3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극에 몰입하게 된다. 소심하지만 은근히 할 말은 다 하는 아빠(안상우), 깜찍한 연기를 보여주는 딸 소심이(신세희), 어리바리해 구박받는 아들(이규태)의 연기까지 다양하게 어우러진다. 이밖에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강감찬, 시간여행 매니저, 황진이, 고려시대 며느리, 옥살이를 하는 탕웨이까지 다양한 역할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여자 관객은 극 중간에 뜻하지 않게 잘생긴 배우의 복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있다. 보다 연극을 즐기려면 앞쪽에 앉기를 권한다. 배우가 당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윙크하거나 갑자기 다가와 당신의 무릎에 앉을 수도 있다. ‘소심한 가족’이 보여줄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극단 소울메이트 주관. 문의 070-8272-9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