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해태제과(회장 윤영달)가 조성하고 있는 송추 아트밸리는 우선 그 크기에 입이 딱 벌어진다. 부지가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도 더 넓은 500만 ㎡나 되기 때문이다. 이 업체가 지난 2007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송추아트밸리는 이 면적 중 100만 평(330만 ㎡)을 떼어내 이곳에 조각-국악 등 예술마당을 펼쳐내겠다는 것이다. 100만 평이면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의 7배, 장흥아트파크의 70배에 달하는 크기다. 계획대로 완성된다면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 공간이 태어나는 셈이다. 송추아트밸리는 자연과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문화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전체 부지 중 서향 50만평은 자연휴양 및 관람 공간으로, 동향 50만평은 국제 조각전 및 야외 공연 공간, 계곡 안쪽은 문화예술 체험 및 학술 공간으로 각각 조성 중이다. ‘제과산업은 꿈을 나누어주는 사업’이라 정의한 크라운-해태제과의 윤영달 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등 30년이 넘게 보유한 송추 일대 부지에 국내 최대의 예술 공간을 조성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겠다는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 러브호텔마저 예술촌으로 변화시키는 아트마케팅 한때 송추 일대는 러브호텔로 유명했다. 산 좋고 물 맑은 서울 교외이니, 러브호텔 입지로는 딱이었던 셈이다. 아트밸리는 경관과 정서를 해치는 모텔들을 매입해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을 2007년부터 시작했다. 아트밸리 조성의 첫 걸음은 ‘청소’였던 셈이다. 2007년부터 진행된 모텔 개조 작업은 2010년 8월 아뜰리에 준, 아뜰리에 모모(우리가락배움터), 아뜰리에 피카소로 그 결실을 맺었다. 모두 유명 러브호텔을 매입해 빌딩 공간을 간단한 개조를 통해 전시공간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러브호텔로 이름을 떨치던 ‘피카소 모텔’을 구입해 새롭게 꾸민 아뜰리에 피카소에서는 지난 8월부터 ‘러브호텔 아트쇼 2011’이 진행되고 있다. 역시 러브호텔을 개조해 만든 ‘스튜디오 준’에는 젊은 미술인 10여명이 입주해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작업공간과,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아뜰리에가 들어섰다.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열린 전시공간으로 기능하는 이곳에는 현재 회화 작가 1명과 조각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이렇게 아트밸리가 일부 대표적인 러브호텔들을 구입해 미술 공간으로 바꾸자 ‘러브호텔 타운’ 자체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러브호텔의 입지 조건 중 첫 번째가 “인적이 적어야 한다”는 것인데, 예술타운이 조성되면서 작가들이 상시 거주하고 관람객들이 몰려들면 ‘러버’들은 이곳을 피하게 마련이다. 결국 성업 중이던 러브호텔들이 하나둘씩 이전하면서 지역 정화가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때 놀고먹던 유흥지라는 인식이 강했던 송추 일대가, 대규모 땅을 보유한 기업의 문화 의지,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행정당국(경기도 양주시)의 합동작전에 의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이다. 아트밸리 조성에는 크라운-해태제과의 임직원 400여명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서별로 조를 이뤄 아트밸리 내 21개 구간에 나무와 돌로 조형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최근에는 부서별로 팀원들이 주말에 공병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병 아트’, 주변의 목재를 조각해 목마(木馬)를 만드는 ‘목마 체험’, 전문 조각가의 강연으로 진행되는 ‘AQ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트밸리의 조성과 함께 크라운-해태제과가 특히 관심을 갖는 예술 분야는 국악이다. 국악은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정서에 흐르는 혼과 같은 존재로서 감성을 일깨우고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 예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크라운-해태제과는 2007년 민간기업 최초로 퓨전국악단 ‘락음 국악단’을 창단해 운영 중이다. 또한 매년 전통 국악 명인들로 구성된 ‘대보름 명인전’과 퓨전국악 공연인 ‘창신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또 다른 모텔을 개조해 국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폭을 넓히는 장인 ‘우리가락 배움터’로 꾸몄다. 실내 공연장과 대금, 장구 등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락배움터는 락음 국악단의 연습공간이자, 일반인들에게는 국악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악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직원, 고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겠다는 크라운-해태제과의 경영 목표가 앞으로 아트밸리와 국악단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될지 앞날이 주목된다. 크라운-해태제과는 1947년 영일당 제과로 창립해 1968년 (주)크라운제과로 법인전환을 했다. 1969년 자매회사 영오식품(주)을 설립한 뒤 1972년 2월 흡수 합병했다. 1974년 전국 판매조직의 직영체제를 확립했고, 1976년 6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8년 1월 화의신청을 하고 7월 화의개시 인가를 받은 크라운제과는 2001년 4월 법원으로부터 해산 판결을 받았으나, 2002년 5월 해산판결 취소를 받았다. 2003년 9월 화의가 종료되었고, 2005년 1월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식품(주)을 인수했다. 크라운-해태제과의 주요 사업은 각종 과자류의 제조와 판매이며, 군·관 납품업, 수출입업 및 수출입 대행업, 중개업, 부동산 임대 및 사업 서비스업, 합성수지와 문구류·완구류의 제조와 판매업, 식품첨가물 등 식료품 신소재의 연구개발업, 도매 및 종합소매의 유통업 등에 걸쳐 있다. 계열 회사로는 (주)크라운베이커리, (주)해성농림, (주)씨에이치테크, (주)플레이아트, (주)아트밸리, (주)영그린, 씨에이판매(주), (주)피디에프코리아, (주)코디서비스, 상해가서안식품유한공사, 가서안제과상해식품유한공사 등이 있다. 크라운-해태제과의 미술 관련 업무는 비서실에서 총괄하며, 송추의 아트밸리는 별도 계열사로 분리돼 관리된다.
크라운-해태제과의 AQ(예술감성) 경영 “예술 아는 직원이 최고 제품 만들죠” 제과전문 기업 크라운-해태제과는 창조와 예술성을 기본으로 한 ‘AQ경영(Artistic Quotient: 예술가적 지수)’을 적극 펼치고 있다. 예술적 감성을 직원과 고객이 느끼면서 일하고 소비해야 ‘아름다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경영 가치다. AQ경영은 과자 등 식음료를 단순히 ‘먹는 제품’이 아니라,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온몸으로 만족시키는 경지를 목표로 한다. 고객들에게 즐거운 소비경험을 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의 감성 욕구에 부응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자세다. AQ경영에는 기획 단계부터 음악, 미술, 공연 등 각 예술 분야의 전문가 참여가 반드시 동반된다. 작가 및 그들의 작품에 내재된 감성 에너지를 통해 신제품의 디자인부터 디스플레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영감을 제공받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회사와 임직원, 고객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AQ(예술 지수)는 ‘예술 작품을 직접 만드는 창조적인 능력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수’라는 능동적 의미를 담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AQ 함양을 위해 매주 월요일 아침에 ‘모닝아카데미’ 행사를 연다. 직원과 각계 인사를 객석에 초빙하고 뮤지컬, 연극, 시 낭송 등의 전문가가 무대에서 공연 또는 강연을 진행하는 행사다. 직원들은 또한 국악 체험, 목조 공예, 병 아트, 박스아트 같은 다양한 예술 체험 활동도 경험한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지난 7월에는 부산 해운대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자사의 과자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업체의 과자 제품을 모티브로 만든 회화, 조각들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여름철 단순히 해수욕만 즐기는 게 아니라 ‘과자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상하게 유도한다는 기획이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예술지수가 높은 직원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고, 꿈을 담은 과자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AQ경영의 핵심 모토다. 송추아트밸리는 미술 중에서도 조각에 많은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제과업체에 미치는 조각의 영향에 대해 크라운-해태제과 측은 “조각은 말 그대로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다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은 기업경영-마케팅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과자의 모양에 유명 조각가의 작품까지 활용할 수 있다면 맛과 함께 보는 즐거움까지 배가될 수 있다는 설명에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자 업체가 미술과 예술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은 일반인뿐 아니라 예술 관계자들도 의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크라운-해태제과의 윤영달 회장은 “예술을 가미한 제품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직원들의 AQ를 높이는 것이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문화예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21세기형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크라운-해태제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체시대에는 조각이 주류 될 것” 레지던시 통해 조각가 키우는 윤영달 회장
크라운-해태제과의 윤영달 회장은 2005년부터 미술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오랜 시간 꾸준히 미술 공부와 작품 수집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지난 2009년 5월 서울오픈아트페어의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대외 활동으로 표출됐다. 당시 하나대투증권, 토마토저축은행 등과 함께 후원한 이 행사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해 한국 미술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주었다. 윤 회장은 이어 2010년 광주아트페어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홍콩아트페어 등 국내외 대형 미술판매 행사에 크라운-해태제과의 간판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런 행보에 대해 “기업 대표가 미술 판매 시장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것은 미술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전문 화랑이 아닌 기업이 미술품 판매 시장까지 진출하는 것은 회사의 주력 상품과 관련성이 없는 것 같다”며 “아트마케팅을 내세워 미술 시장에서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하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미술인들은 기업의 적극적인 미술시장 참여에 대해 “기업들의 미술시장 참여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관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기존 화랑과의 차별성을 지켜봐야 하며, 기업의 어떤 행보가 미술 시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앞으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미술시장 진출에 대한 일부 회의적인 시각은 앞서 진출한 다른 기업들이 예술가 후원은 뒷전으로 미룬 채, 미술작품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 국내 작가를 무시하고 해외 고가 미술작품만 사들이는 행태 등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영달 회장은 예술 분야에 행보를 내민 다른 기업 총수들과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큰 기업들이 등한시 해온 예술 공간의 조성(송추아트밸리), 아티스트 지원-양성을 위한 주거-창작 시설(레지던시)의 제공, 그리고 신진 미술가에 상을 주는 제도 신설 등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습에서 그렇다. 윤 회장은 레지던시 제공에 대해 “현재 스튜디오 준에는 회화 작가 1인을 제외하면 입주 작가들 대부분은 조각가들”이라며 “우리 세대는 2차원, 즉 단면을 보여주는 만화를 보며 자라났고 그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지요, 그러나 최근 세대들은 다릅니다. 영상 문화의 발달로 사물을 평면으로 인식하던 수준이 이제 입체로 인식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미술시장의 대다수는 평면 회화 위주지만 앞으로는 조각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자신의 미술관을 밝혔다. 국악 후원에 대해서도 그는 “국악이야말로 한국인의 감성을 일깨우고 뿌리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화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콘텐츠”라며 “국악에 재능을 갖춘 영재와 젊은 국악인을 발굴해 국악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