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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래산~성주산

소래산 남쪽 자락, 부귀 끊이지 않을 무공단좌형(武公端坐形)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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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4호 박현준⁄ 2011.10.23 10:59:07

오늘의 답사길은 시흥 소래산(蘇萊山)에서 부천 성주산(聖柱山)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능선길이다. 그 길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고려시대 선각마애불(線刻磨崖佛)이 희미한 미소로 맞아 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소사역에서 내린다. 역을 나서서 우측으로 30여m 움직이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1번 마을버스 출발점이다. 혹시 부천역이 편리하다면 부천역을 이용해도 되는데 길을 건너서 교통편에 소개한 31-3번 등의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소사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부천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경우, 목적지 내원사 입구에 하차역이 없어 걷거나 다시 환승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부천역에서 1번 버스를 탄다. 버스가 2차선 골목길로 부천과 시흥의 경계를 넘어 오늘의 출발점 내원사 입구에 내려 준다. 종로에서 이곳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정원석 같이 예쁜 바위에 소래산(蘇萊山)이라고 써 놓았다. 혹시 시간 여유가 있다면 30~40분 동안 정몽주의 문인이며 세종 때 명신인 하연(河演)선생 묘소와 재실(齋室) 소산재(蘇山齋 또는 소산서원)및 그 아드님 하우명(河友明)선생의 효자정각(孝子旌閣)을 들러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대략 10분 정도 길 따라 가면 길가에서 멀지 않은 소래산 남쪽 자락에 명신과 효자 아드님의 흔적이 있다. 특히 풍수(風水)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하연 선생 음택(陰宅)을 꼼꼼 살펴 보시기를. 술사(術士)들 말로는 자손대대로 부귀가 끊이지 않을 무공단좌형(武公端坐形)의 명당이라 하지 않는가.

소래산 안내석을 지나면 좌측으로 소래산 등산길이 이어지면서 내원사(內院寺)가 나온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절인지 절 내력은 써 붙이지 않았다. 다만, 야외에 조성한 청동대불은 이방인을 낯설어하지 않고 환영해 주신다. 법당에는 옛것은 없고 모두 근대 것들이다. 중앙으로 석가모니불이 앉아 계시고 보살 두 분이 협시하고 있다. 지장보살과 북두칠성도 당신 집이 따로 있지 않고 대웅전에 함께 기거하고 계신다. 내원암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5분이 못되어 갈림길이 나온다. 한 길은 정상으로 향하고 또 한 길은 소래산 허리를 감아돌아 약수터로 향한다. 길 이정표가 있는데 내원암 320m, 정상 670m, 청룡약수 310m라고 적혀 있다. 이제부터 삼림욕이 시작되는지 소나무도 제법 많고 삼림욕을 설명하는 친절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산림욕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언제 하면 좋은지,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잘 적어 놓았다. 특히 피톤치드에 대한 설명도 도움이 많이 된다. 식물을 뜻하는 피톤(phyton)과 죽인다는 뜻의 사이드(cide)를 합친 말이라는데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는 물질이 되고 사람에게도 병원균, 곰팡이, 해충들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한다. 이제 약수터길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은 마애불을 향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허리를 감돌아 가는 평탄한 길이다. 주위에는 ‘늠내길’이라는 캐릭터 같은 길 안내판을 붙여 놨다. 예쁘다. 그런데 늠내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아도 알 길이 없다. 후에 자료를 찾아 보니 시흥땅의 우리말 의미로 ‘넓은 땅, 뻗어 나가는 땅’이란 뜻이라 한다. 설명 한 자 붙여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 마른 계곡길에 나무다리를 설치하고 소암천교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잠시 후 청룡약수에 닿는다. 지자체가 생긴 후 어디를 가도 길도 좋아지고 환경도 좋아졌다. 이곳에도 각종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곳 길 안내판을 살피니, 지나 온 길 내원사 719m, 정상 950m, 마애상 350m라 한다. 마애상을 찾아 가는 길은 약간 고도를 높인다. 길에는 간간이 남산제비꽃이 길손을 맞는다.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남산제비꽃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윽고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불단이 놓여 있다. 그런데 막상 마애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강렬한 햇빛이 부끄러우신가 선각(線刻)이 흐릿하여 시선을 고정해야 그 모습을 드러내신다. 우뚝한 장군바위에 14m나 되는 고려시대 보살상(菩薩像)이다. 겨우 10년 전에 보물 1324호로 가치를 인정 받았다. 그 이전에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곳을 잘 아는 어느 분의 말씀에 암벽타기 훈련코스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다.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풍상에 깎이고 사람들 발에 밟히면서도 그 위엄은 변함이 없다. 저기 시흥을 내려다 보며 반야의 세계를 펼치고 계신다. 보관(寶冠)에는 연화문(蓮花紋)이 장식되어 있고 테는 당초문(唐草紋: 넝굴풀로 이어가는 문양)으로 둘러 장식적 효과를 냈다. 불암산 천보사 암벽 마애보살상의 형님 쯤 되는 분 같다. 고려시대 거대불상의 한 모습인데 안산군에 속했던 이곳에는 상당히 강력한 토호(土豪)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고려태조 왕건은 궁예의 중앙집권 통치에 반대하는 각 지역 토호세력을 규합하여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각 지역 토호세력의 힘은 막강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 유력한 집안의 후원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마애불을 조성했을 고려시대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니 세월이 초석마저 흩어버린 것인가.

길을 계속 감아돌아 200여m 가면 좌측으로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갈라진다. 제법 바위길이 위세를 보인다. 10여분 후, 이윽고 시야가 트이면서 정상석이 보인다. 소래산(蘇萊山). 채 300m가 안되는 낮은 산(299.4m)으로, 시흥시의 진산(鎭山: 主山)이라 할 만하다. 실록과 대동여지도에는 蘇來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는 蘇萊山으로 쓰고 있다. 시흥시의 지명설명 자료에는 ‘소라처럼 생겨서’ 소래산이 되었다 하기도 하고, 솔내(松川)에서 유래했다기도 하고, 지형이 좁아서(솔아서) 소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전설에는 660년 신라와 손잡은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래주(萊州)에서 출발해 이곳에 왔기에 소래(蘇萊)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헌종실록에 기록된 소래산은, “총융사 서필원(摠戎使徐必遠)이 아뢰기를: 인천(仁川) 소래산(蘇來山) 아래는 교장(敎場)을 설치할 만한데, 들으니 인평위(寅平尉)와 해숭위(海嵩尉)의 둔장(屯庄)이 그곳에 있다고 합니다. 본영에서 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부평(富平)에 또 병영을 설치할 만한 묵혀 둔 곳이 있습니다. 통진(通津)과 남양(南陽) 두 병영을 이 곳으로 옮겨 설치할 수 있습니다( 仁川蘇來山下, 可設敎場, 而聞寅平尉、海嵩尉屯庄在焉, 自本營可以換買。 富平又有陳荒處, 可設營之地, 通津、南陽兩營, 可移設於此兩地矣).” 이처럼 국방의 요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이었다. 옛 분들의 이런 혜안이 빗나가지 않아 소래산 성주산 주변은 국방의 요지가 되었다. 사방이 터진 소래산 정상 벤치에 앉아 주변의 급격히 발전해 가는 땅을 헤아려 본다. 수도권의 산업단지로 발돋움하는 지역들이 포진하고 있다. 땅의 아픔없이, 인간의 아픔없이 뻗어 나가거라. 북으로 성주산과 거마산이 보이고 서울외곽순환도로 위 소래 터널길도 보인다. 아스라이 보이는 그 길이 사람 마음에 상상력을 부른다.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그 곳에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항상 담겨 있다. 멀리 바라 보아도 그렇고, 그 길 위에 서도 그렇다. 사는 일이란 길 위에서의 일상들이니까. 정상을 뒤로 하고 북쪽을 향해 바위길을 내려 온다. 내원사 1210m, 성주산 2730m를 알리는 길표지가 서 있다. 20~30년쯤 되는 소나무가 많은 길을 지난다. 벤치에 앉아 과일 한 쪽 들려 하니 청설모란 놈이 먼저 알고 주변을 맴돈다. 그래 나누어 먹자. 소래터널 위를 철탑을 지나 국가시설물 펜스를 좌로 끼고 성주산으로 향한다. 흙이 너무 곱고 메말라서 걸음마다 먼지가 푸석거린다. 비라도 좀 내려 땅이 촉촉하면 좋은 길이었을 것을. 이윽고 부천 성주산(聖柱山)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 길은 한남정맥(漢南正脈)길이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이 힘차게 용틀임하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한 줄기가 분기하여 충청북도 내륙을 달리고 칠현산에 이르러 금북정맥과 갈라진다. 이어 안성 칠장산, 용인 문수산, 수원 광교산, 수리산, 부천 성주산을 거쳐 인천 계양산을 지나고 김포평야에서 나지막한 능선길을 만들다가 강화 앞바다 문수산에서 그 결(結)을 맺는 한강 남쪽 산줄기이다. 성주산(聖柱山)은 부천의 진산(鎭山)이 되며 비록 낮은(217m) 산이지만 그 맥이 닿는 곳은 속리산 천황봉으로 기운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산세가 부드럽고 인간친화적 산이라서 편히 누운 소의 모양을 취하니 와우산(臥牛山), 또는 그 아랫마을 이름을 빌어 댓골산이라 했다는데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이 자기네들 신사(神祠)를 이 산 아래 세우고 신성시(神聖視)하니 슬그머니 산이름도 성주산(聖柱山)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다행히 와우산의 이름은 고개에 남아 여우고개, 와우고개, 하우고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지지자료에는 ‘화오현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하는데 이는 ‘와우고개’에서 거꾸로 산이름을 붙인 것이니 재고할 가치가 없다. 와우고개를 향해 내려 간다. 길가에는 산책객을 위해 유익한 내용을 안내판으로 만들어 세웠다. ‘꽃의 비밀’에는 “꽃은 자손을 번식시키는데 필요한 생식기관”이라고 써 놓았다. 동물의 생식기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단풍은 왜 생길까?’라는 안내판은 순간 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지면 관계상 필자가 읽은 내용을 소개하지 못하니 자습 한 번 해 보시기를. 숲의 혜택이라는 항목에는 숲이 주는 혜택을 조목 조목 설명했는데 답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50조원의 효과를 발한다 한다. 오오 숲이여. 그 사이에는 들깨칼국수를 판다는 상혼도 끼어 있어 애교스럽다. 와우고개에 닿는다. 와우고개는 소의 목줄기인가? 잘록한 그 곳에 구름다리를 새로 만들었다. 개통기념으로 나를 모델 삼아 사진도 한 장 찍는다. 부천역을 향해 마지막 봉우리를 오른다. 부천역이 내려다 보인다. 그러면서 최근 20여년 사이에 일어난 신기한 일이 떠오른다. 부천 주변에 있는 성주산(聖柱山), 소래산, 노고산에서 성인이 난다는 500년 전 예언이 있다는 것인데, 이른바 격암유록(格菴遺錄)이다. 이름만 알려져 있던 이 책 필사본이 발견되고,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에도 존재한다며 해설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한 대목엔 ‘성주산이 삼재팔난이 들지 못하는 땅(聖山地三災八難不入處)’이라느니 ‘삼신성산은 어느 땅인고? 동해삼신은 역시 이 곳이구나(三神聖山何處地? 東海三神亦此地)’ 등의 글귀로 호기심 많은 이들을 혹하게 했다. 일부 술사들은 삼팔선을 미리 예견했다거나, 한문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대단한 예언서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선조 실록에는 격암이 미래 예측점을 쳤다는 이야기와 음택을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영조실록에는 역적모의한 자들을 국문하는데 남사고 비기(南師古 秘記: 이른바格菴遺錄)를 베껴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 술사들은 정감록이나 토정가장결이 위력을 떨친 것처럼 그 책을 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이 책이 신앙촌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뭔가 신흥종교에도 이용되었으니 비결(秘訣)에 약한 우리 모습을 보는 듯하다. 2007년 신동아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원고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60년대에 소사 신앙촌에서 쓴 책이 바로 격암유록이라는 충격적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 비기(秘記)에 기대어 마음 약한 우리 이웃의 혼을 팔려는 사람들이 있다. 성주산을 지나며 500년전 이 땅에 사시다 간 격암선생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성주산과 소래산은 그런 것 아니어도 이 땅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품어 주고 안식을 주는 산으로 돌아 왔다. 성무정(聖武亭) 활터를 지나 부천역으로 간다. 부천역 옆에는 서민들의 큰 재래시장이 있다. 막걸리 한 잔과 녹두전으로 소래산, 성주산과 이별을 고한다. - 이한성 동국대 교수 교통편 지하철 1호선 소사역 ~ 1번 마을버스 환승 ~ 시흥 내원사 하차 지하철 1호선 부천역 길 건너 ~ 버스 환승(31-1, 31-5, 31-7, 31-9, 37, 37-1, 38) ~ 아랫대야동 하차 ~ 1번 버스 환승 또는 15분 걸어서 ~ 내원사 앞 걷기 코스 소래산 표지석 ~ 내원사 ~ 갈림길(쉬어 가는 숲) ~ 청룡약수터 ~ 마애불 ~ 갈림길 ~ 소래산 정상 왕복 ~ 외곽순환고속도로(소래터널)위 ~ 국가시설물 펜스 우측길 ~ 성주산 갈림길 ~ 하우고개 구름다리 ~ 성무정 활터~ 부천역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함께 모여 서울 근교의 마애불과 문화유적지 탐방을 합니다. 3, 4시간 정도 등산과 걷기를 하며 선인들의 숨겨진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갑니다.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본지 Art In 편집주간)로 메일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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