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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의사 무시하는 미련한 환자들

의사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데, 젊은 의사만 좋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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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4호 박현준⁄ 2011.10.23 11:01:53

의사라고 하면 부를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세무조사라면 병원이 표적에 포함되기 십상이다. 물론 사회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돈을 많이 버는 병원도 있다. 그러나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던 성형외과도 이제는 “너무 많아 세일을 한다”는 웃지 못할 선전까지 하는 실정이다. 잘 된다는 성형외과들은 그들만의 상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내가 아는 성형외과에선 부인이 섭외 담당이다. 부인이 남편과 함께 룸살롱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아가씨들을 남편 옆에 앉히고 남편을 ‘잘 아는 성형외과 의사’로 선전해 룸살롱 아가씨들이 병원으로 오게 함으로써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성형외과에 못지않은 피부과도 “줄기세포 화장품이 피부를 젊게 해준다”며 과대광고를 해 돈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병 고치는 것은 컴퓨터 고치는 것과 다르다. 그런데도 개인병원에 들어섰다가 의사가 나이 많으면 “늙은 의사이니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면… 20여 년 전에는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는 개업을 해도 과거 같은 부귀영화(?)는 어림도 없다. 종합병원 봉급 수준만 벌어도 다행이다. 그렇다면 종합 병원의 봉급 수준은 어떤가? 대학병원을 보면 일반 대학 교수보다 다소 높은 편이지만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보다는 한참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고등학생이나 일반 대학생들이 의대에 들어오려고 안달일까? 이는 돈보다는 의술을 가지면 늦은 나이까지 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의사이신 우리 아버님이 예전에 “이대로 의사 수가 증가한다면 앞으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병 고칩니다. 저는 00에서 00과를 운영하는 의사 000입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한 5, 6년 전부터 선배들이 병원을 폐업하기 시작했다. 운영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운영만 되더라도 노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끌고 가려고 했는데 손해를 내면서 개업을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폐업한 의사들 중 일부는 보건소나 지방으로 내려가고 일부는 아예 취미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의사들도 있다. 나이가 든 의사들이 일을 그만두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요즘엔 심해지는 환자들의 잘못된 인식이 많은 작용을 한다. 환자들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도 “여기 의사 나이가 너무 들었으니 다른 데로 가자”고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 병 고치는 것을 컴퓨터 수리하는 일 정도로 생각해 젊은 사람이 더 유능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 나이 많은 의사들도 성형외과·피부과 신세를 져 젊어진 뒤에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인가? 의사는 가족이, 검찰은 본인이 좋다? 지금은 다소 상황이 달라졌지만 “의사는 가족이 좋고 검사는 본인이 좋다”는 얘기가 있다. 건강보험이 완전히 실시되기 전만 해도 병원의 수입은 좋았다. 개인 병원을 하는 의사들은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느라 고생을 해서 지치고, 대신 돈을 쓰는 쪽은 부인과 자식들이었다. 검사는 젊어서부터 ‘영감님’ 소리를 들으며 각 지방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대접을 받지만 봉급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전공의 시절 그리고 전임강사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만큼 휴일이고 밤도 없이 매일 매일을 보냈다. 우리 집사람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전공의 시절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오는데 밀린 잠을 자느라 정신이 없고 어린 애들이 울기라도 하면 신경질만 냈고, 그나마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다시 나가버리니 애들이 어쩌다 아빠를 보면 낯설어 울거나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고…. 소아과를 전공한다면서 아이가 이가 났는지, 걷기 시작하는지, 말은 하는지 전혀 무관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때는 섭섭해 “아이를 혼자 낳았냐”고 투덜대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어쩌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열나고 설사한다고 죽는 아이 아직 못 봤다”고 매몰찬 소리를 하기나 하고…. 소아과 전공의가 자기 아이들은 어떻게 크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바빴지만, 도약을 위해서는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도 못 느낄 정도가 돼야… 한 번은 아이가 설사를 심하게 하다 탈수 상태가 돼 나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핸드폰이 있는 시절도 아니어서 연락이 안 됐고 집사람이 혼자 아이를 병원에 입원을 시킨 일도 있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만 하루가 지나서야 나타나서는 미안한 듯 “아이가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는 다시 사라져 버려 어처구니없었다고 한다. 전공의 시절이 지나고 교수직에 올랐으나 그 시절이 내게는 더 부담이 컸다. 논문을 내야 하고 선진국에 뒤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탓에 이 시절이 내가 일생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시절인 것 같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일요일이고 밤이고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가족에게 나는 완전히 ‘외계인’이었다고 한다. 나만 그랬던 걸까? 어찌 보면 전공의 시절 그리고 조교수 시절까지 의사의 10여년은 가족들에게는 잃어버린 세월이기도 했으리라. 그러다보니 요즘엔 집사람이나 딸들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도 같다. 30년 이상을 살았는데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 집사람은 “그건 젊었을 때 그만큼 가족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도약을 해야 하는 시기는 긴장과 힘든 일의 연속이다. 더구나 의학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도 느끼지 못하는 시기를 모든 의사들이 겪는다고 생각한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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