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정말 많은 나라들이 있다. 각국에는 그 나라만의 언어가 존재하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문화는 그 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바탕이 되기에 국가 간에 문화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뜩이나 언어가 다르다면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없이 그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춤’이다. 프랑스 안무가 조엘 부비에는 이런 매력에 사로 잡혀 20년 넘게 춤을 춰왔다. 현대 무용계의 신화적인 인물로 불리는 그녀는 1980년 오바디아와 함께 ‘레스끼스’ 무용단을 창단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는 르아브르 국립안무 센터의 예술감독,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앙제 국립현대무용센터 원장을 역임했다. 부비에가 선보인 ‘쇼윈도의 춤’은 2008년 10월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대돼 현대아이파크몰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부비에는 국립현대무용단과 11월 5일과 6일 서울 극장 용에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왓 어바웃 러브’ 공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을 위해 부비에는 4월 방한해 무용수 오디션을 거쳐 35세 이상 무용수 4명을 포함해 총 16명을 선발했다. 연습할 때 무용수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지만 춤에 있어 언어의 장벽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부비에. 실제로 연습 현장에서 무용수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춤으로써 부비에와 소통을 이루고 있었다. 춤에 일생을 바쳐 살아온 부비에. 그녀가 지닌 춤에 대한 열정을 들어봤다. - 한국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국립현대무용단의 ‘해외 안무가 초청공연’에 초청돼 한국에서 ‘왓 어바웃 러브’ 공연을 선보이게 된 조엘 부비에입니다. 한국에 오게 돼서 너무 기쁘고 좋습니다. 지금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과 즐겁게 연습하고 있습니다(웃음).” - 한국에서 열리는 ‘왓 어바웃 러브’ 공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사랑은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죠. 현대 무용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주제로 잡았어요. 또 보통 현대 무용 공연에서는 젊은 사람들만 무대에 설 때가 많은데 이번 공연에서는 나이 많고 노련한 무용수들도 함께 등장합니다. 그들만의 표현 방식을 보여줄 수 있기에 더 좋은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소통의 장벽이 있었죠. 제가 요구하는 바를 바로 직접 전달할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한국 무용수들의 몸짓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받아 춤에 반영할 수 있었어요. 단체 무용이지만 그 안에 개개인들의 개성들이 녹아들어가 있다고나 할까요? 따라서 이번 공연은 결코 단조롭지 않을 겁니다. 또 어려운 점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한국인이 사랑에 대해서 표현하는 고정된 방식이 있어 유럽 사람들과 차이가 있더군요. 신선한 경험이었어요(웃음).” - ‘사랑’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진 고정된 표현이 무엇인가요? “유럽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다소 보수적·소극적이더군요. 한국 무용수들에게 연애편지를 써서 가져와 보라고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편지를 바탕으로 사랑을 행위로 표현하라고 했죠. 그랬더니 얼굴이 붉어지는 등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하지만 결코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약간 감춘 듯한 표현 속에 풍부한 감정이 혼합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를 안무에 반영했습니다.” - 예전에도 ‘사랑에 대하여’ 등 사랑을 주제로 한 춤들을 선보였는데 한국에서 선보이는 ‘왓 어바웃 러브’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합니다. 이전 작품들과 같은 맥락인가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새로 작업을 할 때마다 항상 사랑이 중심에 있었어요. 단순히 주제만 본다면 같을 수도 있죠. 하지만 ‘왓 어바웃 러브’에서는 사랑에 관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해요. 전작들은 제가 지닌 문화적 관점과 크게 차이가 없는 유럽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에 대해 다뤘죠. ‘왓 어바웃 러브’는 저와 문화적 차이가 있는 한국에서 한국 무용수들과 새로운 교류를 통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달라요. 한국 무용수들과 사랑에 대해 소통하고 이를 결합했기 때문에 보다 독창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한국에서의 작업은 제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을 배우기도 하고, 제가 지닌 관점과 생각을 가르쳐주기도 했죠. 교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 한국 무용수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아주 훌륭했어요. 한 달 넘게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자유롭고 훌륭합니다. 매번 감탄하고 있어요. 열정이 넘치는 무용수들이 특히 많더군요.” - 자신의 안무가 지니고 있는 특징이 있다면? “저는 항상 따뜻한 안무를 선보이려고 해요. 추상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미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지닌 감정의 복잡성, 욕망 등을 표현하는 것이 항상 제 작업에 있어 중점을 이룹니다. 인간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요(웃음).”
- 최근 현대 무용을 보면 이미지 영상을 사용하는 등 굉장히 다양하고 역동적입니다. ‘왓 어바웃 러브’에서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 차별화되는 점이 있나요? “이미지 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안무 자체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도 영향을 받았죠. 이번 공연에서는 깃털과 천 등을 사용하려고 해요. 하지만 매체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는 않고 최대한 안무를 많이 보여줄 것입니다. 또 무대에서 무용수들끼리 대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중간 중간 선보일 생각입니다.” - 항상 다뤄왔던 주제인 ‘사랑’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면? “사랑은 남녀노소, 동서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감정입니다. 이런 친근한 주제가 무용수들의 개성을 바탕으로 표현될 때 관객들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무대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는 기회도 됐으면 하고요. ‘아! 나도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들고 싶어요. 저는 모든 안무를 창작할 때 제가 가진 감정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안무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거든요. 무용수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개념과 느낌을 나누고 싶어요. 사랑에 대해서는 항상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웃음).” - 한국에서는 현대 무용이 대중적이지 않은 편인데 프랑스에서는 어떤가요? “프랑스는 현대 무용이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80년대에 젊은 안무가들이 새로운 형태의 안무를 하기 시작했는데 저도 그 부류에 속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접하면서 ‘현대 무용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린 지 오래됐어요. 신선하고 재밌다고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 현대 무용이 대중화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제가 예전에 백화점 쇼윈도에서 현대 무용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직접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이처럼 현대 무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도 현대 무용이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지우는 것이 필요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현대 무용을 하는 등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춤을 잘 추지 못하는 몸치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길을 가다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추세요. 규칙에 구애 받기보다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놔둬야 해요. 저는 프랑스에 돌아가면 전혀 무용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과 작업할 예정입니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작업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