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인 작업으로 한국적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우순옥(53) 작가가 설치와 드로잉, 영상으로 사색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을 11월 10일부터 12월 6일까지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에 펼쳐놓는다. 우순옥의 작업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보다 공간이나 시간처럼 비물질적인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구현하는 데 특징이 있다. 일상의 순간적 시간 혹은 먼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꿈 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형체없는 존재의 흔적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먼 동경의 대상에 대한 꿈과 상상력을 보여준 지난 전시에 이어 보다 사색적이고 시적인 은유의 공간을 구현한다. 작가는 “변화무쌍하며 덧없이 흘러가 부서져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귀한 본질은 불변하는 영원 같은 그 무엇으로 저편에 존재할 것”이라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삶에 대한 그리움, 윤회, 관계를 자극적이지 않은 오브제와 빛을 사용해 표현해 보았다”고 설명했다. 우순옥은 예술가로서 30년의 경력 동안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을 피했고, 덧없고 만질 수 없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해 왔다. 특정한 대상을 그리기보다는 늘 어떤 상태, 그 마음을 담아내려 한다. 그의 작업은 언어가 잡아낼 수 없는 ‘비움(emptiness)’의 상태이고, 언어 이전의 태초 상태이며, 흘러 사라져가는 현실의 그림자와 같다.
우 작가는 그림이 세상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거나 그 너머 진실을 담아내기 위한 그 무엇이 아니라, 마음 속에 이미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예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시회의 부제인 ‘잠시 동안의 드로잉’에서 잠시 동안은 일상의 순간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꿈 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드로잉에는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지난 전시 ‘달과 그의 친구들’에서 보여줬던 동경의 아름다운 꿈과 상상력은 ‘잠시 동안의 드로잉’에서 시적 은유의 산책으로 바뀐다. 우 작가는 그 동안 여러 작품과 글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사유,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세상에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말하듯, 근원적인 그리움에 우리가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도록 한다. 전시 문의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