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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권오을 국회사무총장 “열린 국회, 현장 국회, 소통 국회 등 변화 추구에 많은 노력 기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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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9호 심원섭⁄ 2011.11.21 13:50:38

“대통령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조항도 재협상할 테니 믿어달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굉장히 설득력 있어 보였다. 대통령이 특정 사안을 갖고 국회에 와서 여야 지도부에게 간곡히 부탁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됐으니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 국가적 사안이 있을 때 수시로 여야 지도부를 만나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권오을 국회사무총장은 지난 11월 15일 여야 지도부에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당부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했을 때 정문에서 영접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밝히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권 사무총장은 “재임하면서 특별히 후회스러웠던 점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공무원 인사 시스템을 완성시키고 싶었으나 고민하다 짧은 시간에 무리다 싶어 실행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국민의 정치 불신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일하는 시간이 적다. 본업에 시간이 제대로 할애가 안 됐을 때 국민들은 일 안 하고 논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사람 만나는 것은 2차, 3차적인 일이다. 법안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 본업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간의 10분의 1밖에 할애를 안 하니까 국민들이 볼 때는 일 안하는 걸로 생각한다. 본업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권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국회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면서 소감이 있을텐데…. “2010년 6월 임기 2년의 국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기분이 묘했다. 국회의원만 하다 보니 행정부를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꼭 한 번 행정 영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 살림과 업무를 책임지고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가 행정을 경험하는 데 제격이었던 것 같다.” -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는가. “나는 제25대 국회 사무총장에 취임하며 ‘열린 국회, 현장 국회, 소통 국회’를 모토로 내걸었다. ‘열린 국회’를 위해 주차장 시스템을 개선하고 방문자센터의 운영을 확충했으며, ‘현장 국회’를 위해서는 지역현안 해결을 위한 입법지원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또한 ‘소통 국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홈페이지 개선과 모바일 국회 등 다양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조용히 내실 있는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는 시설확충 같은 하드웨어의 변화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소프트웨어 개선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고서 실명제’를 시행해 입법 검토 보고서에 심의관이나 조사관 등의 실명을 기재하도록 했다. 또한 전결 권한을 대폭 하향 조정해 직원들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국회라는 직장이 편하고 좋은 곳이기보다는 자랑스럽고 보람 있는 직장이 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아울러 지방우대 발전정책의 하나로 지방 출신을 채용인원의 30%까지 채용하는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를 도입했다.” -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에도 적지 않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희태 국회의장이 국회부터 비정규직을 다 없애라고 지시해 그 이후 계약부터는 용역회사 대신 국회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비정규직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물론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 하는 것은 좋지만 기존 정규직 공무원들도 평가 시스템에 이어 퇴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겸비해야 한다. 이를 고민하다 짧은 시간에 무리다 싶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진입도, 퇴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 계급정년제, 나이정년제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 국회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어떤 직책인가. “국회 사무총장은 하기에 따라 참 매력 있는 자리다. 일단 일이 많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주로 보좌진이 일정을 짜는데 바쁠 때는 사람 만나는 것을 5분 단위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늘 사람 만나고, 보고받고, 결제하고, 의견 차이 줄이고, 결정해야 한다. 특히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를 대한민국 국회가 주최하게 되어 준비위원장을 맡은 까닭에 더욱 분주했다.” “3선 의원 출신 사무총장으로 의회 선진화에 기여한 것이 가장 큰 보람” - 본회의 중심에서 상임위 중심의 의회를 주장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국회의 입법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국민에게 실효성 있는 법안은 대부분 상임위에서 다루어지지만 우리 의회는 아직도 본회의 중심이다. 심지어 어떤 법안은 정당간 이해관계로 상임위에 상정조차 안 되고 4년이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는 법안이 많기 때문에 상임위부터 격전장이 되고,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법안자동상정제를 대안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6개월이든 1년이든 법안이 제출된 시점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단 상정을 하라는 것이다. 자동으로 상정해 표결로 가결을 시키든 부결을 시키든 아니면 유보를 시키든 결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원들도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정감사, 대정부질문 무용론도 주장한 바 있는데? “정기국회 동안 그래도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국정감사 때문이다.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 전반의 잘잘못을 따지고 바로잡는 과정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꽃이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국정감사에 대해 너무 부실하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현행 국정감사의 문제점은 감사기간과 사후조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국감은 20일간 563개의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물론 국회의원 전원이 1년 동안 준비해 국감에 임하지만 기간에 비해 해당기관이 과다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정기국회 기간에 이뤄지다 보니 예산안, 민생법안처리 등과 맞물려 실효성이 낮아지는 것도 문제다. 앞으로 임시회 기간 상임위별로 피감기관을 조정해 국감을 진행해 발견된 문제점에 대해 강력한 법적 사후조치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 대정부질문 무용론의 핵심은 ‘대정부질문을 하는 것이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숱하게 지적됐다. ‘의석을 지키는 의원이 몇 명 되지 않는다’부터 시작해 ‘대정부질문의 답변이 워낙 구렁이 담 넘어가듯해 구체성이 없다’는 등 많은 비판이 있다. 실제로 대정부질문을 할 때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빈자리 때문에 국회를 바라보는 신뢰가 떨어진다면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외국처럼 아예 화면에 비추지 않거나 아니면 출석의무조항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질의시간도 현재는 의원 1인당 15분씩 기계적으로 돌아가면서 하루에 약 12~15명씩 진행되지만 이를 각 정당에 시간총량제로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의석수에 비례해 3시간, 민주당은 2시간, 자유선진당은 1시간 등. 이렇게 하면 그 범위 안에서 의원 한 명이 나와서 혼자 질의를 하든, 10명이 나와서 질의하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야 실질적인 대정부질문이 가능하고 답변도 구체화될 수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대정부질문의 형식은 조금 바꿀 필요가 있지만 대정부질문 자체는 유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다.” - 정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구조에 대해 반대의견도 많은데?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당은 의회를 볼모로 정치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청간, 정당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회와 의원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결과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소통의 창구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니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과 국익에 저해가 되어 국민들이 정치 혐오감을 보이는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대다수가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정당 민주화라든가 공천의 투명성이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으니 의정활동에 한계가 많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기소신이나 국민여론보다는 당의 방침이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몸싸움도 이런 시스템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당과 당의 이해가 충돌될 때 소속원으로 나가야 하는 형태가 많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정책 활동에도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친다. 정책 활동보다는 정당의 주요 직책을 맡는 것이 대중에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즉 유명해지고, 인기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정당의 주요 직책을 맡아야 한다. 국회 활동보다는 정당 활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 정치풍토 중 하나다. 바로잡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예를 들면 국회의장이나 부의장은 언론에 잘 나오지 않지만 여야 원내대표들은 언론에 매일 나오다시피 한다. 국회상임위원장은 참 중요한 자리인데 언론에 잘 안 나오는 반면 정당 대변인을 맡으면 연예인만큼 TV와 신문에 자주 나온다. 그러므로 앞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과 의회가 정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할 것이다. 이런 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았듯이 기성 정당의 공멸이 초래될 것이다.” - 정당 공천제도 개혁에 대해 한 말씀 해 달라. “나는 어릴 때부터 정치를 꿈꾸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나름의 소신으로 원칙을 지키려 애를 썼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천제도 개혁이었다. 나는 한나라당에 참여하면서 초창기부터 당내경선을 주장했다. 지금이야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참여경선 등 경선 문화가 일반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에서 경선하자고 하면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발상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늘 주장했다. ‘세금을 내기 때문에 국민이 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처럼 당원들이 당비를 내니 당원들이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렇듯 정당이 왜 당원들에게 당비를 받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조차 무시되는 것이 당시의 대한민국 정당이었다. 당연한 얘기를 하는데도 이단아 취급을 당하면서 혼자 튄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앞서 당내경선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발 앞서 개혁을 외치고 싸워야만 했다. 그래서 혜택은 다음 사람이 보고 나는 싸움꾼으로 찍히고 심지어는 듣지 않아도 될 욕도 많이 먹었다. 공천제도 개혁의 기본방향은 정당이 각계각층의 이해를 반영하는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서민을 표방하는 의원들은 많지만 각 계층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다. 앞으로 비례대표를 통하든, 경선을 통하든 각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후보 발굴에 힘쓰고 이를 공천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 정치가 국민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거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 등 먹고 사는 일에만 매진했다. 당연히 정치 분야도 길 닦고 공장, 다리 만드는 일 등 하드웨어 개선에 주력했다. 나도 국회의원 시절에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내 고향, 내 지역에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한 예산 마련에 노력했다. 그렇게 다 함께 노력하고 살다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그러나 산업화, 민주화를 겪으며 고도성장을 하는 동안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부와 힘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성장과 분배 문제로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오늘날 정치는 사람, 소통, 분배에 제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또한, 기존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양극화를 줄이는 방안에 고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하고 서민이 따뜻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런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국민을 섬겨야 한다.” - 내년 총선에 경북 안동에서 출마할 생각인가? “당연히 출마한다.” - 경북 안동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안동은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등 가지고 있는 상징성 또한 크다. 이는 내가 정치를 하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이념이고 철학이다. 특히 안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자부하며 조선시대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옳은 소리를 하던 선비들 대부분이 살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망하자 집이고 재산이고 다 팔아서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난 사람들도 안동 출신이 많았다. 이것이 안동의 선비이고, 안동의 정신이다. 그 옛날 신분사회에서도 안동만큼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한 곳도 없다. 해방 전후 사회주의 좌익 운동하던 사람 중에도 안동 사람이 많았다. 나는 한국 정치에 필요한 도덕성의 원형은 안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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