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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음악 에세이]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귀재 앙드레 프레빈

미아 패로우·소피 무터와의 사랑으로 더욱 화제가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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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0호 박현준⁄ 2011.11.28 11:25:12

프레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2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여덟 살 때 유태인인 그의 가족은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갔다. 부친은 변호사였지만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으며 다섯 살 때부터 프레빈에게 음악과 피아노를 가르쳤다. 이후 프레빈은 학교 밴드에서 음악을 하고 개인 지도로 작곡을 공부했다. 이후 할리우드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삼촌 소개로 영화사에 취직해 영화 음악을 편곡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었다. 열여섯 살 때 그는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의 파티에 갔는데 그곳에서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에바 가드너를 만났다. 일곱 살 연상의 그녀는 미남이자 재주꾼인 프레빈에게 “나를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는데 순진한 프레빈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택시를 잡아주려고 했으며, 그는 “일생 동안 그날을 후회했다”고 고백했다. 영화음악으로 출발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오케스트라들은 그를 배척하기도 했지만 영국으로 건너가 스타가 되면서 미국으로 돌아와 지휘자·작곡가로 대활약 펼쳐 이처럼 프레빈은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영화음악에서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돈이 필요해 삼촌의 소개로 영화사에 들어가게 됐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해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뒀다. 그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 ‘지지(Gigi)’ ‘포지 앤 베스’ ‘마이 페어 레이디’ ‘당신에게 오늘밤을’은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특히 ‘지지’는 크게 성공한 영화다. 그 외에도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마이 페어 레이디’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삽입된 재즈 음악도 작곡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7년에는 휴스턴 심포니의 지휘자가 됐는데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유부남이던 그는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미아 패로우와의 열애설이 나돌면서 보수적인 휴스턴에 머물기 어려워져 패로우와 그는 런던으로 떠났다. 그리고 1970년부터 11년 간 런던 심포니를 지휘했다. 두 사람은 1970년에 결혼해 세 자녀를 낳고 세 명의 고아를 입양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에서 온 여덟 살의 순이도 있었다. 영화음악 일을 하면서도 프레빈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오케스트라는 그가 영화음악 출신이라 하여 잘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서른여덟 살이던 1967년에 휴스턴 심포니 지휘자로 런던으로 건너갔으며 영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코미디 프로에까지 출연해 영국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훌륭한 지휘자이자 텔레비전의 대스타가 된 것이다.

그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피츠버그 심포니도 지휘했는데 그곳에서도 텔레비전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1985년부터는 LA 심포니를 지휘했으나 1989년에 핀란드의 젊은 지휘자 살로넨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그는 런던과 LA 심포니와 많은 녹음을 했으며 클래식 음악도 계속 작곡했는데 그의 첫 번째 오페라 ‘욕망의 전차’는 1998년에 초연됐다. 그리고 두 번째 오페라 ‘짧은 만남’은 2009년 휴스턴 오페라가 초연했다. 패로우는 1979년 그와 이혼하고 우디 앨런과 연인이 됐다. 프레빈은 1982년에 네 번째 결혼을 했으나 자신의 바쁜 연주 생활로 부부 사이가 멀어져 2002년에 이혼했고 이어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안네 소피 무터와 결혼했다. 1963년생인 무터는 열세 살에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한 후 승승장구 하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으면서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금발 바이올린니스트가 됐다. 그러나 음악 애호가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2006년에 이들이 우호적인 이혼을 한 뒤에도 아직까지 함께 연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프레빈이 여덟 살에 입양한 순이는 한국에서 온 고아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패로우의 오랜 연인이자 유명한 영화감독 겸 배우인 우디 앨런이 패로우가 입양한 딸 순이와 결혼함으로써 할리우드 영화계에는 또 한 번의 언론 폭탄이 터졌다.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우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순이와 남매지간이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매부가 된 아버지의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버지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런 풍파에도 불구하고 미아 패로우는 총 네 명의 자녀를 낳고 입양된 아이 열한 명의 어머니 역할을 훌륭히 잘 해냈다. 그녀는 또한 선배 오드리 햅번이 그랬듯이 아프리카에서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일하면서 많은 봉사활동을 했다. - 이종구 박사 (이종구심장크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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