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우리가 의사를 꿈꾸면서 의예과에 입학했던 시절, 80명의 학생들 중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 몰려다니곤 했다. ‘이상하고 특별한 연세 의대생’이라고 불리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것 같지만 한없이 그리워지는 명칭이다. 사귀던 여학생과 헤어지자 인생이 끝났다고 ‘북풍’이라는 시를 읊으며 헤어짐을 안타까워했던 친구. 지금은 없어진 교외선을 타고 놀러가면서 술에 잔뜩 취했던 친구는 최근 오랜 투병생활에도 지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열심히 의술의 길을 걷고 있다. 항상 철학자 같은 인상으로 곱슬머리를 긁적이던 버릇이 있던 친구. 머리가 비상해 내가 항상 부러워했던 그는 같은 동기 여학생과 일생을 함께 하고 있다. 그가 보스턴에 있던 시절 그의 집을 방문해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흘러간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마치 어제 같다. 우리들 중 가장 뚱뚱해 “야, 돼지야”로 놀림받던 친구는 4학년 때 산부인과 임상실습 중 ‘직접’ 분만침대 위에 올라 주무시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지붕 고친다며 지붕에 올랐다가 떨어져 몇 달간 사경을 헤맸다니 버릇에도 내력이 있는 듯하다. 성이 변 씨인 그는 자기 아들을 변비라고, 설 씨인 내 딸을 설사라고 이름지어 둘을 결혼시키자고도 했다. 그러면 변비-설사로 궁합이 잘 맞는 부부가 될 거라고. 공부할 때 항상 “어, 허벌나다”를 연발하던 친구는 낚시에 관한 허풍이 대단했다. 최근에는 골프에 몰두해 동창회 골프 대회에서 부부가 상을 독차지하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 친구, 나이 60 넘어서 얼굴에 있던 점 수백 개를 뺐다는데 과연 미남이 됐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의예과 시절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으며 이제 곧 증손자를 보게 될지 모르는 친구는 우리 무리 중 가장 애처가다. 나와 함께 같은 과를 지망했으나 내가 밀려나자 자신도 그만둔 의리있는 친구도 있다. 아들딸 이름을 ‘변비와 설사’로 지어 궁합을 맞추자던 친구는 산부인과 임상 중 분만침대에 직접 올라 자다가 떨어지더니 미국에선 지붕에 오르다 또 떨어지고… 미국에 갔다가 돌아와서 몇 년 전 재혼을 해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친구는 그 덕인지 우리들 중 가장 젊어 보인다. 이 친구는 중학교 때 탁구 선수였으며 대학에 와서도 테니스 선수로 발군의 실력을 보였는데 요새는 골프에 빠져 있다. 우리 중에서 가장 특이하게 이상 실천을 강조했던 친구는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실천해 의사의 길을 뒤로 하고 정외과로 전과를 했다. 전과 1년 만에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기록을 세우고 외교관의 길을 걸어 유엔 사무차장, 유엔대사 등을 역임했다. 얼마 전 KBS TV의 ‘글로벌 성공시대’에 그의 일생이 방영돼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어줬다. 이렇게 모두 삶의 길은 다르지만 우리들 중 절반은 미국에서, 나머지는 우리나라에서 대학 교수로 또 외교관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젊은 시절 함께 외치던 이상적 삶에는 못 미쳤을지 몰라도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려운 세월을 헤쳐 나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의대에 입학할 무렵에는 중-고교 시절에 테니스, 야구, 농구, 탁구 등 다양한 운동을 했던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으며 음악에 전념했던 학생들도 있었다. 요즈음 복고풍이 불면서 다시 뜨고 있는 세시봉 핵심 멤버였던 친구도 같은 반에 다녔다. 성장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독립심이 우리들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된다. 세월이 흘러 휴대폰을 길거리, 엘리베이터, 학교, 교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의 전부가 돼버린 요즘 세대. 공부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들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반항적이기도 해 앞날을 걱정스럽게 만든다. 너무나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에 부응못한 일부 젊은이들은 자살이라는 길을 택하기도, 부모에게 질책을 듣기 싫어서 성적표를 조작하기도 한다.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며 노력하는 흔적을 별로 보이지 않고, 막연히 부에 집착하고 쉬운 일만 찾는 젊은이들…. 우리의 교육 현실과 부모들의 과한 욕심이 만들어 낸 부작용이다. 졸업한 지 40년 가까이 지나면서 의업의 길이 바쁘기도 했지만 사는 곳도 태평양으로 갈려 있어 친구들을 만날 기회는 드물었다. 그래서 두 세 명이라도 모이면 밤새워 학생 때의 추억으로 함께 돌아간다. 어느덧 정년이 코앞에 와 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은 자신들이 미국으로 갈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한국이 몰라보게 발전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좋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갔다. 요새는 또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교육 때문에 미국에 갔다면서도 또 그곳에서도 과외에 열을 올리는 한국 부모들이 있으니 조급하고 극성스러운 욕심이 계속 문제가 되는 듯싶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은 “교육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니 한국의 교육 환경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의 평준화, 대학 자율성의 축소 등이 한국 교육의 위축시킨 이유라는 지적도 그들은 빼놓지 않는다. ■의사들이 ‘더 큰 병원’ 추천하는 진짜 이유 “의사라고 다 아는 게 아냐” 환자도 알아야 우리가 의학교육을 받던 시절 본과 1학년부터 3학년 2학기까지는 거의 강의를 받았다. 그것도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4시 반까지, 토요일은 11시 반까지…. 졸음은 의례 찾아왔고, 자다가 걸리면 야단맞기 일쑤였다. 어떤 교수는 아예 강의실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강의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거의 20개에 가까운 과목 즉, 내과와 외과, 소아과, 방사선과 등을 모두 자세하게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과 대학으로 말하자면 화학공학과, 전기공학과, 섬유공학과 등 전 과목을 함께 배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미래에 어느 과를 전공하든 모든 과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너무 어렵고 상세하게 가르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신없이 배운 과목들로 의사 시험을 보고 나면 그 내용은 거의가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병명과 요점 그리고 각 과의 주된 내용만 알아도 충분한데…. 최근 강의 시간이 다소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강의가 거의 전등을 끄고 파워포인트로 하는 것이어서 학생들의 잠을 재촉한다. 학생 시절 나는 전공의를 마치면 그 과목의 교과서 한 권은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공의를 끝내고 나니 천만에 말씀! 전문의가 되면서부터가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소아심장과 전문의지만 심장학 이외에 신경학, 내분비학, 신생아학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심장 환자에게 다른 증세가 보이면 같은 소아과라도 해당 전문의에게 보낸다. 하물며 다른 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의학이 발전한 만큼 분야도 매우 세분화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내과심장학에도 심부전, 심장 전기생리, 심초음파 등 여러 분야로 나뉘었고 그 분야마다 전공 지식이 다 필요하다. 응급 환자가 중소 병원에 갔을 때 진료를 못한다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의사라면 모든 분야를 다 알 거라고 착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의 어떤 과에 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대충 예약을 했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다시 진료를 처음부터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주치의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 자신이 아는 분야는 치료해 주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는 관련 전문 의사에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주치의사를 말한다. 물론 지금 가정의학 전문의가 있긴 하지만 아직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힘들 때 의논하고 쉽게 각 분과로 연결이 되는 제도…. 이를 위해서는 보험 제도를 개선하고, 의사들이 개방적으로 변하는 등 많은 과제들이 해결돼야 할 것이다. 모든 학문이 융합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분화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지 때문이다. 우리 몸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여러 과가 협진해야 최선의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