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생 시절 당시 외과의 원로 교수 한 분이 암에 대한 강의를 하시다가 갑자기 “인간은 참 알 수가 없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얘기인즉슨 얼마 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50대 여성 한 분이 외래로 찾아와서 자신이 10년 전 간암 진단을 받고 가망이 없다는 판단 아래 퇴원했는데 시간이 가도 죽지를 않고 이제 10년이 돼서 다시 찾아 왔노라다는 것이었다. 10년 전의 기록이 미미하게 남아 있어 확인해 본 뒤 다시 검사를 해 봤다. 정상 소견이 나왔다. 10년 전만 해도 의학이 초보 단계에 있었고 기록도 자세했다고 보기 어려워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전임이 된 80년대에도 위와 같은 사례를 볼 수 있었다. 1980년 중반 40대 의사가 위암 3기 진단을 받고 부인과 함께 운영하던 병원을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골프에 전념했다.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했다고 한다. 세월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어느덧 5~6년이 지났는데 전혀 악화되는 증세도 없고 오히려 식욕이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병원을 다시 찾은 결과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거의 프로 수준까지 골프 실력이 높아졌고, 지금은 병원과 골프를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암을 이겨낸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프로가 방영된 적이 있다. 암 진단을 받고 산 속으로 들어가 자연식을 하면서 암이 치료됐다는 등의 인터뷰와 상황이 소개됐다. 우리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근무하는 심장혈관병원은 암센터와 인접해 있다. 나는 가운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므로 내가 의사인지 알기 쉽지 않다. 암 센터의 외래를 지나다 보면 “이 병원에 아무리 다녀도 고생만 하고 낫지를 않는다. 강원도의 요양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생나무 뿌리 등으로 식사를 하고 삼림욕을 하면 암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더라”고 말하며 환자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암 진단 뒤 고통 잊으려 골프만 쳤는데 어느덧 암은 없어지고 골프실력만 늘었으니…. 오진으로 암 진단 뒤 ‘사망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는 등 등 현대의학은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 이들은 또한 “필리핀에 유명한 도사가 있는데 그가 당신의 몸을 2~3일 치료하면 바로 암세포가 당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소리도 한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인 환자들에게서 돈까지 빼앗아 내려는 참으로 파렴치한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를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나친 욕심을 내고 그 짧은 생 속에서 서로 싸우며 살아간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신중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 “혹시 암인지도 모르겠습니다”가 환자에게 주는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확인된 말만 해야 의사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잘못된 의사의 판단으로 절망하고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에서 척추암 선고를 받은 중년의 남자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서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미국의 암 병원에 소개해 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미국 병원 측에서도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확진된 것을 다시 재검할 필요가 있느냐고 난색을 표하는 것을 “환자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우겨 재검을 받게 한 적이 있다. 유언까지도 다 남긴 이 환자는 우리나라 병원에서 확진 받은 뒤 6개월 만에 미국에서 재검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소홀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놓칠 수 없는 부분을 소홀히 하면서 한 사람에게 반년 이상 죽음에 직면한 고통을 준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지금도 가끔 일어나고 있다. 의사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현대의학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의사의 소임이다. 죽음의 판정을 받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말한다. 죽음의 공포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그리고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부터는 작은 일에 감사하고 남을 돕고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했지만 그 마음이 1년을 채 가지 않더라고…. 의료계 40년을 보내면서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기적은 따라오는 것이지, 밀치고 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왕좌왕 하지 않고 정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병을 치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건강진단에서 “건강” 판단 받았어도… “이상 무” 판정받은 차도 며칠 뒤 고장날 수 있어 의학의 길에 들어서 전공의 시절까지 합하면 36년째가 된다. 이조 시대라면 벼슬에서 물러난다는 파과(64세)에 이른 나이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전공의 시절, 이어 당시만 해도 크게 뒤쳐져 있었던 소아 심장학을 배우려고 일본, 미국 등으로 객지 생활을 하며 숨차게 지내던 전임강사, 조교수 시절….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채 거들먹거리고 환자들에게 퉁명하고 불친절하게 대했던 시절 등 한 고개를 넘고 나서부터는 연세의대 교수라는 자긍심을 갖고 달려왔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의학에 대해, 아니 내가 종사하는 분야에 대해 확신을 잃어가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 같은 병이라도 환자에 따라 치료 과정 중의 반응, 예후 등이 모두 달랐다. 마치 모든 사람의 손금이 다르듯이…. 내가 전공의 시절 선생님께서 아침에 회진을 도시다가 한 환자를 보시고는 “이 환자 잘 지켜봐라. 어찌 예후가 안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봐도 혈액 검사 결과도 좋고, 진찰 소견에도 이상한 것이 없는데 뭘 잘못 아셨나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래도 인턴에게 붙어서 잘 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날 밤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일이 있었다. 나의 아버님께서도 내과 의사셨는데 언젠가 “환자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오랜 경험에 의한 육감일 것이다. 많은 환자를 대하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감으로 환자의 상태를 느끼게 된다. 나도 같은 심장 환자지만 때로는 무언가 불안한 요소가 보이는 환자가 눈에 띈다. 의학은 수학처럼 하나 더하기 하나가 반드시 둘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경험을 더욱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요즘 건강진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암을 조기에 진단해 많은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되고, 증세가 겉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병을 발견함으로써 조기 치료가 가능해졌다. 건강진단에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 누구나 안심한다. 그러나 건강 판정을 받은 사람이 몇 개월 뒤 암 판정을 받고 나서는 건강진단을 해 준 병원에 항의하는 사태도 생긴다. 이는 건강진단이란 현대 의학의 발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자동차도 정기검진을 받고 얼마 안 가서 이상이 생기기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은…. 의학 교과서가 “그럴 수 있다”고 쓰는 이유 현대의학이 많은 발전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그리고 새로운 질병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들마다 진행과정, 증세, 결과가 다 다르다. 의학 교과서에서는 질환을 설명할 때 ‘~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럴 수 있다’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100%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며, 이 확신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을 그 분께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의학, 그래서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는 희-로-애-락 등이 교차하는 뒤안길의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