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커피를 잘 만드는 사람이 제안하는 ‘커피를 대하는 자세’는 어떤 것일까. “한국인이 김치 먹을 때 묵은지, 겉절이, 총각김치 등을 모두 구별하잖아요? 커피도 그렇게 봤으면 좋겠어요. 아마 이탈리아 사람이 김치를 처음 먹는다면 한국 사람이 커피 마실 때처럼 먹을 걸요?” 국가대표 바리스타 출신이자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최지욱 대표의 말이다. 그는 2005-2006년 한국 바리스타 국가대표를 맡은 실력파 ‘커피장이’다. 2006년에는 세계 라떼 아트 챔피언십에서 2위에 올랐으며, 2010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는 선발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하루 10잔 이상씩 커피를 마셨다는 그를 그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만났다. - 언제 바리스타를 시작했나.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 11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커피 산업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스타벅스가 99년도에 들어왔으니, 거의 초창기부터 커피 관련 일을 했다고 본다.” - 국가대표로 세계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바리스타이면서, 동시에 사업가인데? “내가 만든 커피를 많은 사람들이 맛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또한 커피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은 현실을 보고 적정 가격에 커피를 판매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건 나의 원칙이다.” - 바리스타들이 커피의 미세한 맛을 잘 구분하는 게 신기하라. 타고난 미각이라도 있는 것인가? “바리스타 입맛을 타고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본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했다. 성적은 꼴찌에 말도 안 듣고. 부모님 속도 많이 썩여드렸을 거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이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라”고 하시더라. 좋아하는 걸 찾다 보면 계속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공부가 제일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들은 짧은 시간에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끊임없이 궁금해 한다. 바리스타도 마찬가지다. 커피는 굉장히 많은 변수를 갖고 있는 음료다. 바리스타로서 꾸준히 안정적인 맛을 낼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거다. 좋은 커피를 선별할 수 있는 눈을 먼저 가져야 한다.” - 커피의 품질과 맛을 가르는 요소는 뭔가? “우선 생두가 커피 맛의 관건이다. 나도 좋은 생두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찾은 생두는 잘 볶아야 하는데, 너무 약하거나 강하게 볶으면 안 된다. 표현하고 싶은 맛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선 일정하게 볶을 수 있어야 한다. 물의 온도와 종류도 영향을 미친다. 칼슘이 들어간 물과 마그네슘이 들어간 물, 알칼리가 없는 물이 모두 다르다. 또 커피를 내릴 때 물과 얼마나 접촉돼 있었느냐를 비롯해 커피 입자의 굵기, 로스팅 시간도 중요하다. 같은 지역 생두지만 등급이 별로 안 좋은 걸 샀다거나, 2010년에 수확된 커피를 써야 하는데 2008년산 묵은 콩을 썼다거나 이런 변수에 따라 맛은 달라진다. 또 한 가지,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한다. 요즘 시대가 좋다 보니 해외여행 한번 안 가봤다는 사람 없다. 유럽에 배낭여행 가서 한 잔 마신 카푸치노가 그렇게 맛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정작 이탈리아에서 맛있는 커피를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커피의 맛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순간의 내 심리상태, 함께 먹는 사람, 흘러나오는 음악, 날씨 등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다.”
- 소비자마다 취향이 다를 텐데, 최 대표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는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맞춰 커피를 만드나? “대어를 낚으려면 떡밥이 좋아야 한다. 지금 중고생들은 5~10년 뒤면 20대 중반이다. 그들이 우리의 잠재 고객층이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들에게 지금부터 쓴 커피를 주면 절대 싫어한다. 쓴 커피에 우유, 크림, 초콜릿, 시럽을 넣어 ‘달고 맛있는 커피야’라며 줘야 한다. 이 고객들이 1년만 지나면 크림을 거북하게 느끼고, 다시 1~2년 지나면 우유가 싫어지고, 시간이 더 지나면 아메리카노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메리카노가 연하게 느껴지는 단계까지 간다. 어릴 때 누구나 가요를 듣지만, 중학생 땐 팝, 고등학교 땐 락을 듣는 것처럼 무언가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근원적인 것들이 궁금해진다. 결국 그 이전에 나왔던 하드락이나 재즈, 클래식까지 듣게 된다. 커피도 첨가물이 들어간 걸 먹다 보면 점점 ‘이전의 것’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디오피아의 특정 지역에서 나는 커피, 하와이 코나에서 나는 커피,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따져가며 점점 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 한국인들은 커피의 신맛이나 강한 맛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분석도 있던데? “최근 커피 트렌드가 ‘신맛이 안 나는 커피’는 아니다. 커피는 기본적으로 신맛, 단맛, 쓴맛, 바디감(무게감), 네 가지 맛을 다 갖고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 특정 맛이 두드러질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커피들은 신맛이 많이 난다. 여기서 말하는 신맛을 ‘레몬에 가까운 신맛’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떫은 느낌이 나는 신맛, 레드와인처럼 무거운 신맛, 화이트와인처럼 가벼운 신맛, 오렌지처럼 달달한 신맛, 레몬처럼 톡 쏘는 신맛 등 종류가 다양하다. 커피 생두 하나만 가지고도 신맛을 판단할 수 있지만,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맛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만큼 커피는 기술적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분야다.” - 비싼 커피일수록 좋은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 커피 품질은 회사의 색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값싼 커피라고 해서 품질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비싼 커피라고 해서 맛있을 거라고 단정 짓는 건 금물이다. 호텔 커피는 굉장히 비싸다. 그만큼 탁월하게 좋은 재료를 쓰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대신 호텔은 좋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가? 서비스 값이라고 보면 된다.” - 그럼 커피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나? “커피의 원가가 200~300원밖에 안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좋은 김치를 만드는 사람에게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만데…’라고 시비를 걸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커피를 만드는 요소들을 감안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의 원가는 700~800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컵, 빨대, 캐리어 등 재료는 끝이 없다. 원가를 전체 매출 중 30% 정도로 보는데, 서비스업종의 특성상 보통 인건비가 20%를 차지한다. 그 외 임대료 20%, 기타 전기세와 잡비를 합치면 5%. 매달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면 그중 25%인 250만원 안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소리다. 순수익으로 남는 건 생각보다 크지 않다. 가격은 그런 과정 속에서 결정된다.” - 그래도 커피전문점마다 가격이 너무 다르니 소비자들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보통 수입된 커피 전문점이 비싸다. 또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은 광고비가 많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측면이 있을 거다.” -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산업의 향후를 전망한다면? “현재 한국의 커피 붐은 일종의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이 있으면 어느 순간 감소도 있을 거다. 한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커피 로드샵이 많다는 얘기다. 장사가 안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가게들이 많을 거다. 점점 집에서 몇몇 도구를 갖춰 놓고 일상적으로 원두커피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커피숍은 단순히 커피를 즐기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응접실 개념이 크다. 지인과 함께 편안한 공간을 찾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 소비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보통 소비자들이 원두커피를 집에서 즐기려고 할 때, 이미 갈아져 있는 것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원두는 가는 순간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콩알 상태로 사서 즉석에서 갈아 마시는 게 최고다. 그거 말고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없다. 커피전문점에서 즐길 때는 매장의 콘셉트와 바리스타의 실력을 봐야 한다. 여기저기를 다양하게 찾다 보면 자기 입맛에 맞는 커피를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생각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저렴한 값에 좋은 커피를 많이 팔자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커피와 관련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후자를 가난한 나라의 커피농장에 살집과 학용품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최 대표는 “커피 사업을 하면서 나 자신이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커피 소비국은 대개 잘 사는 나라지만, 커피콩 생산국은 대개 빈국이다. 현재 그의 회사 임직원들은 월급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가난한 나라의 커피농장을 지원하고 있다. “베푸는 만큼 돌아오는 것 같아요. 아까워하지 않고 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