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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쁜 엘리트끼리 뭉쳐 ‘더 크게 먹는’ 게 한국 시스템?

명문고에서 벌어지는 커닝·돈봉투 회오리 그리는 연극 ‘모범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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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3호 김금영⁄ 2012.02.27 11:11:26

사랑을 주제로 한 가볍고 자극적인 소재의 공연들이 넘쳐나는 대학로 연극가에서 ‘나쁜 엘리트’를 주제로 고교에서 벌어지는 점수 경쟁과 돈바람 등을 그린 연극이 꾸준히 공연되고 있어 나름 주목을 받고 있다. 2월 3일부터 4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되는 ‘모범생들’이다. 2007년 초연된 연극 ‘모범생들’은 명문 외고 3학년 학생들이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커닝을 계획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지이선이 극본, 김태형이 연출을 맡았고, 김대종, 김대현, 김종구, 박정표, 이호영, 정문성, 홍우진, 황지노 등이 출연한다. 연극은 사회의 엘리트층으로 성장한 명준, 수환과 그들의 동창 종태가 반장이었던 민영의 결혼식에서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고3 시절을 추억한다. 평소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명준과 수환은 커닝을 모의한다. 중간에 이를 알게 된 운동선수 출신 종태는 자기도 끼어달라고 한다. 이미 똑똑할 만큼 똑똑한 엘리트들이 더 큰 걸 먹으려 모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커닝 작전은 아무것도 아닌 반전이 터져 나온다. 반장 민영이 지녔던 출석부 속에서 선생님께 시험지 유출을 청탁하는 돈 봉투가 나오는 것이다. 학생들끼리의 커닝 정도가 아니라 ‘큰집’으로부터 시험지 전체를 통째로 빼내려는 더욱 큰 스케일의 스캔들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반 전체 아이들이 커닝 계획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계획은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살만한 사람들’이 더 욕심을 부리고, 그래서 모든 사람의 가슴을 치게 만드는 작금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부조리, 비리는 이렇게 한국의 학교 시스템을 통해 일찌감치 뿌리내리는 것일까? 이런 걸 가르치자는 게 한국의 학교 시스템인가? 라고 묻게 만드는 연극이다. 배우들은 교복과 양복 사이를 오가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책상은 자체 발광하며 자석의 힘을 이용해 붙고 떨어지면서 요지경을 연출한다. 단순히 철없는 고등학생들의 커닝 사건을 다루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 그들만의 사회 안에서 계급을 만들고, 인생이 이미 결정난 것처럼 승리자와 패배자를 나누는 모습이 오싹하다. 소위 모범생이라 불리는 명문 외고 3학년 학생들을 통해 한국인이 갖고 있는 위선 의식, 겉과 속이 다른 모양, 그리고 열등감과 강박관념을 쿨한 척, 유머러스한 척, 세련된 척 풀어내는 모습을 그린다. 또한 이 연극은 학생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는 욕망이 과연 그들 스스로의 것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인지,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과연 떳떳한지를 묻는다. 학생끼리, 또는 학생이 선생까지 끌어들여 커닝하고 답안지를 유출시켜 크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건, 한국 사회의 동작원리와 동일?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연극 ‘모범생들’에는 꾸준히 출연해온 개근 배우들이 있다.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도 참여하는 배우 김대종은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며 “결혼하고 나서 힘든 시기에 출연한 첫 작품이었다. 초연 멤버들이 대학 동기여서 함께 공감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 이호영 또한 “초연 때는 수환 역을 맡았는데 이번엔 명준 역을 맡았다”며 “나이가 들다 보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도 좀 달라진 것 같다. 생활이 힘들 때도 문득 생각나는 행복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모범생 역할에 몰입해 연기하는 배우들의 실제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배우 홍우진은 극 중 모든 능력을 지닌 이른바 ‘엄친아’ 반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역할과 자신과의 ‘싱크로율’에 대해 그는 “난 반장을 한 번도 못해봤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이어 “형이 모범생이었는데 공연을 보러 와서 모범생도 아니었던 애가 모범생 연기한다고 웃더라. 나도 출석 부르는 장면 때 해본 경험이 없어 떨리더라”며 “이질감이 있긴 했지만 에너지를 쏟아 연기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창시절 모범생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들의 열연은 모범생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에는 모범생이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명준과 수환은 극 중 종태에게 “우리는 모범생이니까 어른들은 우리가 말하는 걸 믿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이 규정지은 모범생은 무엇인가? 극 중에서는 공부 잘하고 말썽을 안 일으키면 모범생이라 칭해진다. 하지만 단순히 공부만 잘하면 모범생이라 할 수 있는가? 사회의 진정한 모범생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극 중 내내 이들은 던져준다. 또한 자신이 모범생이라 주장했던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 들어갔을 때 구성하는 소위 엘리트층이라는 것도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반문한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공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공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볼만한 소재를 공연에서 다룬다는 점에서는 흥미롭다. 단순히 웃고 즐기고 나오는 공연이 많은 가운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골칫덩어리(?) 연극 ‘모범생들’에게 더욱 눈이 가는 이유다. 불량학생이 대본 쓰고 모범생이 연출하면? 연극 ‘모범생들’의 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 인터뷰

- 2007년 초연 이후 올해 새로 연극 ‘모범생들’을 올리는 기분은? 지이선 “공연에 남자들만 나와서 대본을 남자가 썼다고 많이들 생각한다.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안 하려고도 했는데 공연을 보니 하기 잘한 것 같다.” 김태형 “오랜만에 연극 ‘모범생’을 다시 하게 돼 기쁘다. 이 작품은 내가 연극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줬던 작품이다.” - 초연과 달라진 점은? 지이선 “대본 일부가 수정됐다고 들었는데 막상 공연을 보니 일부가 아니라 많이 수정됐더라. 김태형 연출에게 대본을 주면서 해보고 싶은 대로 맡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초연을 본 관객들은 많이 바뀌어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난 지금 대본도 좋다. 초연보다 직접적, 건조적으로 표현된 부분들이 있다. 지금 공연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 극 중 마지막에 이르러 옷장이 등장하고, 학창시절로 회귀하는 장면은 무엇을 뜻하는가? 김태형 “극의 마지막 부분에 다시 등장하는 학창시절 모습은 대본에선 재시험으로 돌아간 영준의 악몽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건 해석하기 나름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재시험일 수도 있고, 어른이 돼서도 변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영준이 느끼는 좌절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옷장에 똑같은 옷들이 가득 담겨 있는 장면은 이번 공연에 새로 등장했다. 무대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고급 주택의 드레스룸 사진을 봤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 삽입했다.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모습이 느껴졌다.” - 실제 본인들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 지이선 “모범생이 아니었다. 주로 학교에서 보면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애들 있지 않느냐.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엔 동네 아파트 옥상에서 담배도 피웠다. 그런 거친 생활을 경험해서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는 데 어렵지 않았다. 여고생의 이야기를 다뤘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김태형 “난 상위 0.3%였다. 10년 동안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과학고와 카이스트대학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때도 꼭 숙제를 하고 놀러나가는 타입이었다. 중2 때부터 약간 탈선의 길을 걷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웠다(일동 웃음). 반장도 계속 했다. 그런데 과학고와 카이스트대를 다니며 나보다 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연극을 하게 됐다(일동 웃음). 그나마 내가 모범생이었기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배우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에 도움도 줄 수 있다. 1점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열망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배우들이 이해 못할 때가 있는데 난 학창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해를 도왔다. 만약 어떤 목표를 위해 에너지를 쏟으며 노력한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극 ‘모범생들’의 관람 포인트는? 김태형 “솔직히 연극 ‘모범생들’이 남성보다 여성 관객들이 더 많다. 배우들이 잘생겨서 그런 것도 같다(일동 웃음).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과 배신 등에 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로맨틱하고 달달한 공연의 연출을 많이 맡았었는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공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 ‘모범생들’의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학벌주의로 비롯된 사회의 부조리함 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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