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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정된 이미지’ 딛고 새 영역 찾아나서는 배우 김혜정

“제 분신 복길엄마, 저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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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4호 김금영⁄ 2012.03.05 10:47:21

배우에게 어떤 이미지가 각인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매우 부담스런 사태이기도 하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맡는 역할에 제한이 생기고, 이미지 변신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 경력 초기에 강렬한 이미지가 박힌 연기자들은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때 이미지 탈피가 힘들었다”고 종종 고백한다. 이른바 ‘복길이 엄마’로 널리 알려진 배우 김혜정(51) 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식어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 타이틀에 대해 그녀는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 ‘복길이 엄마’는 기업의 트렌드마크처럼 나를 말해주는 일종의 브랜드”라며 “수많은 연기자들 가운데 확실히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점에서는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혜정은 1981년 MBC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년)’ ‘삼국기(1992~1993년)’ ‘장희빈(2002~2003년)’ ‘역전의 여왕(2010~2011년)’ ‘신기생뎐(2011년)’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 그녀의 대표작은 ‘전원일기(1980~2002년)’다. 무려 20여 년 동안 방송된 이 작품에서 김혜정은 복길이(김지영 분) 엄마로 살아왔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꼭 복길이 엄마가 뜰 정도로 이 이미지는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김혜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복길이 엄마가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2009년 상명대 연극학과에 편입학해 다시 학업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또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해 서울 국제마라톤, ESPN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연극 ‘나도 아내가 있다’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그녀에게는 대중이 잘 모르는 낯선 얼굴도 많았다. - 배우 김혜정 하면 ‘복길이 엄마’를 빼놓을 수 없는데, 20대 젊은 나이에 나이 든 역할을 맡아 속상하진 않았나요? “일부러 하얀 피부를 검게 분장하고 나이 든 모습을 보여야 해서 어린 마음에 속상하기도 하고 불만도 있었어요. 젊고 화려한 역할에 관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어떤 역할을 오래 한다고 해서 제가 그 역할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복길이 엄마 속의 김혜정을 봐주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그랬기에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는 점이 기뻤어요. 특히 ‘전원일기’를 보던 30~50대들이 나라 경제를 세우면서 복길이 엄마에서 자신의 엄마 이미지를 봤기에 더 애착을 갖고 아껴주신 것 같아요. 저도 복길이 엄마를 만나서 행복했어요(웃음).” - 복길이 엄마 말고 당시 하고 싶었던 역할이 있었다면? “사실 ‘전원일기’에서 복길이 엄마 연기를 할 때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면서 여러 연기를 했어요. 그런데 워낙 복길이 엄마의 인상이 깊어서 그런지 다른 역할로 나온 모습은 잘 기억 못하더라고요(웃음). ‘삼국기’에서 선덕여왕 역할도 했고, 미니시리즈에서 여변호사 역할도 했어요. 다만 복길이 엄마 역할이 너무 유명했던 거죠(웃음).” -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나요?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면? “배우는 제 꿈의 일부였어요. 온전히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신문사의 논설위원도 되고 싶었고, 예전에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을 때는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직업도 갖고 싶었어요. 방송국 아나운서도 되고 싶어 대학교 1학년 때는 교내 방송 아나운서도 했어요. 당시 엔지니어가 없어서 제가 직접 기계도 만지고 음악도 선곡하고 원고도 써서 학생들이 학교에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마치곤 했어요. 아나운서실도 청소하고, 교내 축제 때 시 낭송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죠. 그런데 그 때 제 모습을 본 교수님들이 방송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어요. 당시에는 미스코리아를 뽑듯 방송국의 지방 계열사에서 1, 2차 예선을 치르고 이어 서울로 올라와 본선을 치르는 식으로 공채가 진행됐어요. 교수님들과 주변 사람들이 신청 서류를 구해 줘서 MBC 탤런트 공채 시험에 응모하게 됐어요.” -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건방진 게 아니라 왠지 제가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웃음). 운명적인 힘에 이끌린 것 같아요. 배우는 제 숙명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제가 연기를 전공한 게 아니기에 첫 작품에 출연할 때는 많이 힘들고 떨리기도 했지만 선배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제겐 모든 작품들이 다 소중해요. 어떤 작품이 가볍고 무겁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전 연기를 할 때 열정을 다해 몰입하기 때문에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든 편이에요. 드라마 ‘신기생뎐’에서는 몸속에 여러 신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아내 역할을 맡았었죠. 정말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작품이 끝나고 났는데도 공황 상태에 빠져서 힘들었어요. 그 역할에서 다시 제 생활로 돌아오는 데 한 6개월 걸린 것 같아요. 그만큼 열심히 작품에 임했죠(웃음).” - 요즘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 배우가 있다면? “이게 나쁜 점이라고 해야 할지…. 연기를 안 할 때는 다시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저를 백지 상태로 비워놓으려고 해요. 그래서 쉴 때는 드라마를 거의 안 봐요. 어떤 드라마를 봤을 때 어떤 캐릭터가 저도 모르게 제 안에 각인될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를 비우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요즘 트렌드를 알아야 대중과 소통하고, 다른 배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린 연기자들이 너무 연기를 잘 해요. 자기 관리를 치열할 정도로 잘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 점을 높이 사고 싶어요. 다만 너무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아쉬울 때가 있어요. 앞으로는 저를 포함해 한국 배우들이 내적으로 보다 확고해져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저도 기대된답니다(웃음).”

- 지난해 연극 ‘나도 아내가 있다’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는데…. “TV만 나가다가 연극 무대 위에 서면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어 부담스럽죠. 그래서 자기 단련을 열심히 했어요. 연극 출연할 때 한강을 10km 달리면서 체력을 단련하기도 하고, 대본도 정말 열심히 봤어요. 관객들도 TV에서 자세히 본 적이 있는 배우라 탤런트 출신 배우에 많은 관심을 갖고요. 저는 특히 40~60대 팬이 많은데,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을 가질 때 관심을 보이면서도 확 다가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감사하고 어떻게 보면 귀엽기도 했어요. 또 더블 캐스트로 공연하는 줄 모르고 제가 출연한다고 무작정 공연을 보러 와준 팬들도 있었는데, 한결같이 너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웃음).” - 연극 무대의 매력은? “연극 무대는 정말 소중한 곳이에요. 우리가 보통 TV 리모컨만 누르면 가수와 연기자들을 바꿔 가면서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관객들이 직접 시간을 내서 찾아와주니 너무 고맙죠(웃음).” - 요즘 관심 가는 연극이 있나요? “기회가 닿으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공연보다는 신선한 창작 공연 위주로 해보고 싶어요. 제 나이 세대가 겪는 정신적-사회적인 문제들이 담긴 연극을 해보고 싶어요. 자식들을 다 대학에 보내고 가정적으로도 안정이 됐지만 정신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잃는 주부들이 많아요. 이런 주부들의 마음을 담은 연극에 출연해보고 싶어요.” - 2009년 상명대 연극학과에 편입해 다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인문학적 사고 체계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공부라는 것은 혼자 하려고 해도 쉽지 않고요. 젊고 진취적인 교수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싶었어요. 사고를 재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어요. 토크 프로그램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데 작가가 써주는 원고만 보고는 제대로 대화를 이끌 수가 없어요. 질문의 답변이 주제와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을 때 제자리로 돌이켜 오는 게 진행자의 몫이거든요. 전반적인 의식이나 사고 체계에 새로운 지식을 주입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죠(웃음).” -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고통스러웠지만 4.5 만점에 4.36을 받아 차석으로 졸업했어요. 학생들이 절 엄마처럼 따라줬고요. 같이 밥도 먹으면서 ‘내가 고쳐야 할 점이 뭐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어요. 한 번은 제가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너희도 열심히 하라’는 식으로 설교를 했다며 적당히 공부하시라고 학생들이 그러더라고요(웃음). 배우이기에 학교 생활을 더 열심히 했어요. 이름만 걸어 놓고는 수업을 빠지는 연기자 학생들에 대한 이미지가 교수님들에게 팽배해 있었거든요. 제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배우 김혜정에게 사랑이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랑이 남녀 간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봐요. 큰 틀에서 봤을 때 사랑은 나눔과 공유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쌓는 모든 순간들이 사랑의 시간인 거죠. 제가 가진 에너지를 함께 나누고 상대가 슬퍼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이런 모든 것들이 사랑 아닐까요? 사랑이라는 게 꼭 먼 곳에 있어서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것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전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웃음).” - 또 도전해보고 싶은 역이 있나요? “전 어떤 배역이 배우를 규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역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역을 맡고 싶어요. 그게 배우의 길 아닐까요?(웃음) - 앞으로의 계획은? “살아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우로서 제 자신을 움직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충전 기간을 많이 가진 것 같아요. 다시 드라마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여러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항상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늘 있는 그 자리에서 기쁨 넘치는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웃음).” 인터뷰 내내 항상 웃는 얼굴로 앞에 앉은 사람까지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김혜정의 매력은 배우로서의 열정과 따뜻한 인간다움인 것 같았다. 연기를 할 때마다 역할에 빠져 무아지경이 된다는 그녀는 새로운 배역에 빠질 준비가 돼 있다. 김혜정이 어떤 색다른 모습으로 다시 대중들을 만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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