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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경제불평등은 어떻게 아버지를 죽이나

‘세일즈맨의 죽음’ 번안한 연극 ‘아버지’의 이순재·전무송·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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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5호 김금영⁄ 2012.03.12 15:13:03

뉴욕에서 힘들게 영업사원을 하는 63세 윌리 로먼은 장거리 출장을 갔다가 집에 돌아온다. 오랜만에 두 아들이 집에 와 있지만 변변한 직장 생활을 못 하는 큰아들 비프와 언쟁만 벌인다. 다음날도 힘겨운 하루를 보낸 윌리 로먼은 평소 꿈꾸던 대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내용이다. 80년 전 물 건너 얘기지만 2012년 한국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인과 자본주의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경제 붕괴의 공포는 한국에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공황 직전에 미국 경제는 재벌의 끝 모를 비대화로 극심한 양극화를 겪었다. 한국의 재벌 문제도 현재 마찬가지이며,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청년실업, 88만원 세대, 노인 세대의 방황 등이 극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초연된 이래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러 번 공연돼 왔다. 이번에는 ‘아버지’라는 새 제목으로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돼 4월 6~7일 부산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과 4월 13~24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 특히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아버지 역할을 도맡아온 배우 이순재와 전무송이 더블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이번 공연의 번안과 연출은 1996년 한국 연극계에 대중 연극 바람을 일으킨 ‘어머니’를 연출했던 김명곤이 맡는다. 2012년 한국의 불평등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정치, 사회적인 해결책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주겠다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의 브랜드 가치가 큰데 제목을 ‘아버지’로 굳이 바꾼 이유는? 김명곤 “‘아버지’라는 타이틀 아래 ‘세일즈맨의 죽음’ 원제를 같이 소개합니다. 세일즈맨이라는 단어를 한국 현대의 아버지 상으로 쓰기엔 좀 이질감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좀 더 현실감 있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원작의 새로운 한국 버전이라는 의미도 추가할 겸 해서 아버지라는 제목을 썼습니다. 원작이 갖는 아버지의 비극과 고통을 부각시키자는 의도도 있고요.” -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에 이어 ‘아버지’에도 출연하는 소감은? 이순재 “제가 1979년에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했어요. 그 때는 여운계 씨가 제 아내 역을 맡았는데 번역된 그대로 공연했어요. 그 당시엔 솔직히 극본을 잘 이해 못했어요. 원작에는 환경에 대한 개념도 나와 있고, 여러 경제적 위기도 다루는데 직접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거든요. 저도 모르고, 관객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연이 이뤄진 거죠. 그러다 2000년도에 드라마 촬영을 하나 끝내고 석 달 정도 쉬는 기간이 있었는데 이 때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아쉬움이 있었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시 하고 싶었는데 마침 또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때는 원작을 그대로 살리자고 해서 2시간 40분 풀 공연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 2012년도에 ‘아버지’를 보여주게 됐습니다. 한국 상황에 맞게 바꾸다보니 더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가 커요. 이번에도 아버지 역을 맡았지만 늘 의욕은 새롭습니다(웃음).” 전무송 “이번 연극 ‘아버지’를 통해 제가 아버지 역할을 5번째 맡습니다. 제가 드라마센터에서 연극 수업을 받을 때 무대에서 활약하시던 이순재 대선배와 공동 캐스팅돼 영광입니다. 저는 1986년 처음으로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했는데 당시 극 속 아버지가 꼭 제 아버지 같았어요. 말썽을 피우면 혼내면서도 아들의 성공을 바란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연기했어요.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을 떠올리며 연기하려고 해요.”

- ‘아버지’와 ‘세일즈맨의 죽음’ 차이는? 김명곤 “‘세일즈맨의 죽음’은 제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할 때 깊은 감동과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예전에 이순재, 전무송 선생이 출연한 공연도 봤어요. 30여 년 간 마음에 둔 작품을 이번에 하게 돼 너무 기쁩니다. 원작은 1930년대 당시 미국 자본주의의 꽃이었던 세일즈맨을 소재로 한 비극이에요. 이 이야기를 현대판 한국 아버지 이야기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1년 정도 고민하고 각색했어요. 아서 밀러가 1940년대 미국 자본주의에 들이댔던 비판적인 의식이 현재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퇴직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몸부림치잖습니까. 나이 30이 넘어도 자립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가 요즘 흔해요.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엄마, 아들, 딸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를 기반에서부터 뒤흔드는 이슈인 가족의 해체, 청년실업 문제 등을 이 공연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세일즈맨’과 ‘아버지’의 아버지 역할에 차이가 있나요? 전무송 “본질적으로 전달하자는 의미는 같아요. 다만 좀 걱정되는 건 ‘세일즈맨’의 대사가 자꾸 연상돼 방해된다는 것이죠.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도 생기고요. 기존의 역할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어요.” - 연극 ‘아버지’ 이전에 연극 ‘돈키호테’에서 독특한 역할을 맡았는데… 이순재 “돈키호테는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중심인 생소한 작업이었어요. 경험해보지 못했던 분야라…. 희화적-과장적 표현이 많았죠. 더 나이가 들면 대극장에 설 기회가 없을까봐 도전했는데 대극장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서 하려니 힘들었어요(일동 웃음). 다행히 연극 ‘아버지’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 보다 내면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 이 시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이순재 “전 아버지라기보다 이제 할아버지인데…(일동 웃음).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1위가 ‘아! 좀!’이더군요. 귀찮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죠. 요즘 아버지는 가련해요. 과거엔 수익의 주체였는데 점점 위상이 추락하고…. 한국 부모나 미국 부모나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의무와 고뇌는 같다고 봐요. 주변에서 우리가 늘 보는 캐릭터입니다.” 전무송 “예전에 제 아버지는 장남인 제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많이 했어요. 어느 시기까지는 제가 공부를 잘했는데 반항기 오면서 싸움도 하고 다녀 실망을 안겨드렸어요. 그때마다 아버지가 마음 아파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제게 영향을 끼쳐요. 아버지는 절대로 누구에게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다정다감했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저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웃음).” - 배우 이순재, 전무송과 함께 하는 연극 ‘아버지’의 연습 과정은 어떤가요? 김명곤 “너무 행복합니다. 연배가 있으시다보니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훨씬 진하게 드러나요. 아버지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속속들이 꿰뚫고 있어 연습하면서 이렇게 하자고 제안도 많이 하세요. 그리고 항상 연습 시간에 제일 먼저 오세요. 한 40분 정도 일찍 가도 연습실에 벌써 와 계시더라고요. 젊은 배우들이 큰일났죠(일동 웃음). 그리고 오자마자 대본을 체크하면서 젊은 배우들에게 연극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죠. 열정이 대단하세요(웃음).” -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순재 “우리 연기의 시작은 연극입니다. 1960년도에 TV가 생기면서 드라마에 출연하다보니 그동안 연극에 소원했지만 항상 제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출연하고 싶었던 연극 ‘아버지’에 출연하게 돼 너무 기쁘고 전무송 씨도 함께 해 굉장히 든든합니다.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정도로 열심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전무송 “연극이 끝날 때 박수를 받으면서도 밖에 나오면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후회가 남곤 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번에 연극 ‘아버지’를 통해 만회할 기회를 얻어 기쁩니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현 시대에 듬직하면서도 애잔함을 자아내는 단어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 어깨가 쳐지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이들이 어떤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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