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에서 최고의 도읍지는 어디일까. 무려 3개 왕조가 명멸한 왕도가 있다. 신라 천년 사직의 경주도 아니고, 백제의 애환이 서린 부여도 아니고, 조선이 숨 쉰 서울도 아니다. 역사와 신화가 혼재된 익산이다. 금강과 만경강을 젖줄기 삼아 넉넉한 호남평야를 품고, 노령산맥을 배경삼은 익산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의 중심이었다. 마한을 호령한 맹주국인 목지국의 중심인 이곳은 고조선의 고도이고, 백제의 수도이고, 고구려의 꿈이 서린 (소)고구려의 도읍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개 왕국의 수도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2012년 3월에 익산을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고도보존지구로 선정했다. 앞으로 10여 년간 이 도시들은 문화유적 복원과 보존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천년 도읍지인 경주, 백제인의 고향 부여를 뛰어넘는 익산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 한국사 최고인 2000년 왕도, 3개 왕조의 스토리가 숨쉰 익산을 알아본다. 고조선의 마지막 도읍지 고조선의 준왕은 BC 194년에 위만에게 왕검성을 빼앗긴다. 나라를 잃은 준왕은 배를 타고 남하, 익산에 고조선 왕국을 다시 세웠다. 준왕은 나라의 방어를 위해 해발 430m의 미륵산에 1800m에 이르는 견고한 돌로 된 성을 쌓았다. 돌화살촉, 포석환 등이 발굴된 미륵산성의 규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3,900척이고 높이 8척으로 기록돼 있다. 2011년에는 익산 인근인 완주 신풍 유적지에서 준왕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2세기 무렵의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방울인 청동 간두령 2점을 비롯해 세형동검과 철제 도끼, 토기 등 초기 철기시대 유물 20여 점이 출토된 것이다. 준왕의 고조선은 훗날 백제에 병합된다. 백제 중흥의 수도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했다.’ 일본에서 발견된 중국 육조시대의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정관 13년(639, 무왕 40년) 기록에 백제가 익산으로 천도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왕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익산에는 왕국의 수도 유적과 유물이 다양하다. 이곳에서 발굴되는 기와의 수부(首府) 표기는 왕궁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미륵하생신앙을 바탕으로 강력한 백제를 꿈꾸었던 무왕은 산성과 왕궁을 짓고, 왕실사찰인 제석사지를 세우고, 국찰인 미륵사를 건립했다. 왕궁은 기가 모아지는 말굽형태의 지세에 자리한 기획도시다. 4단 석축으로 조성한 남북 490m, 동서 240m 규모의 장방형으로 현재 40여개의 건물터 등이 발굴됐다. 고구려의 꿈을 꾸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 운동에 힘겨워했다. 그래서 고구려 유민으로 백제 세력을 견제하는 안을 생각했다. 670년에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을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익산의 금마에 정착시킨 뒤 고구려왕에 봉했다. 이 때 고구려국에 합류한 세력은 안승이 이끈 4천여호,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를 따르는 763호 3543인, 한성 유역의 투항민, 검모잠의 부흥군, 평양 인근의 주민, 전쟁포로 7천여 명 등 수 만 명에 이르렀다. 고구려국을 선포한 안승은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독자 외교로 잃어버린 왕국의 재건을 도모했다. 고구려가 14년 동안 일본에 9차례의 사신 파견 등 나라의 기틀을 다져가자 위협을 느낀 신라는 안승을 경주로 불러들였다. 이에 안승의 사촌인 대문이 중심이 돼 신라와 일전을 겨뤘으나 패배했다. 백제 땅에 세워진 고구려는 684년 무왕이 어린시절 마와 금을 캤던 오금산성(익산토성)의 함락과 함께 짧은 15년의 생을 마감했다. 신화의 고향, 계속되는 역사 익산은 유적지형 고도이다. 부여나 공주가 박물관형 고도인데 비해, 백제 유일의 궁터가 있는 익산은 유적지형 고도인 셈이다. 왕궁 터에서는 다양한 금제, 유리공예품과 함께 공동화장실터도 발굴됐다. 길이 10.8m, 깊이 3m의 대형 화장실은 현대와 비슷한 첨단 배수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왕국의 곳곳에는 신화가 여전히 계속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미륵사지 석탑에 숨은 백제의 꿈, 무왕이 하늘에서 타고 내려온 천마의 말발굽을 바탕으로 조성한 궁성 정원,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선 남녀 인석의 애틋한 만남, 선녀가 베를 짜던 미륵산 선녀바위, 미륵사지 못의 신라장수와 백제왕녀의 슬픈 사랑가 등 다양하다. ‘무왕의 염원’을 실천하는 이한수 익산시장 “풍부한 유산 바탕으로 국내 첫 고대도시 복원”
이한수 익산시장의 가슴에는 백제 무왕이 자리 잡고 있다. 강력한 백제를 건설한 실천력,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 애민정신, 익산으로 천도해 새로운 세상을 연 결단력과 판단력을 배우고 싶어한다. 2006년부터 6년 째 시장을 하고 있는 그는 익산을 무왕시대처럼 역동적인 한국의 핵심도시로 육성할 꿈에 부풀어 있다. 많은 역사문화 유산, 시민의 높은 수준을 볼 때 전국 제일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익산에는 문화유산이 아주 많습니다. “익산은 준왕의 고조선 백제 (소)고구려 등 3개 왕조가 세워진 한국역사의 보고입니다. 숱한 유적과 유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 발굴 복원하고 널리 알려 한국을 넘는 세계속의 역사 문화도시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익산이 우리나라 고도보존지구 도시로 선정되었습니다. “고맙고 당연한 결과입니다. 앞으로 역사체험과 숙박을 함께 하는 국내 최초의 고대도시를 복원할 생각입니다. 올 해는 미륵사지 주변을 백제문화 체험교육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최근 유스호스텔 '이리온'의 개관으로 스테이형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습니다.” - 역사 문화 사업은 시장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시장이 된 후 매일 ‘무왕 정신'을 되뇌었습니다. 첫째가 백제 무왕처럼 강하고 잘사는 익산 건설입니다. 둘째는 무왕과 같은 시민의 무한 사랑입니다. 개인 욕심이 없는 순백의 색깔로 시민을 받드는 자세입니다. 셋째는 무왕과 같은 무한 아이디어입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정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수입니다. 무한 아이디어를 실천해 시민을 잘살게 하는 게 시장의 책무입니다.” - 익산은 종교의 고향이라고도 합니다. “익산에는 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4개 종교의 성지가 있습니다. 불교성지는 미륵사지는 물론 고려시대 창건된 숭림사, 원불교 성지는 중앙총부가 위치한 익산성지, 천주교 성지는 나바위성당, 개신교는 두동교회를 들 수 있습니다. 4대 성지순례를 통해 휴식과 안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 여성을 위한 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익산은 여성 친화도시 1호입니다. 시는 여성의 안심보육, 여성의 일자리 알선 등 다양한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2500명의 여성이 취업을 했습니다.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여러 단체에서 방문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강남구 수원시 등 27개 지자체 360여명의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 익산이 동북아 식품 수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익산에는 2015년까지 국내외 식품기업 145개, 민간연구소 10개 이상이 들어섭니다. 총 예산은 5535억이 드는데 약 4조원의 생산유발과 총 2만2000명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됩니다. 국제적인 전문 식품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 언론인 이상주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저자)